차이파이(Chi-Fi)가 ‘메이드 인 차이나’를 향한 편견을 깨고 있다. 차이파이는 ‘차이나(China)’와 ‘하이파이(Hi-Fi)’를 합친 말로 중국산 하이파이 오디오 기기를 말한다. 오랜 기간 저가, 저품질의 대명사처럼 쓰였지만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IBIS 세계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오디오 장비 제조 산업의 시장 규모는 287억 달러(약 38조4376억원)로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연평균 1.6% 성장했다.
차이파이의 세계 진출은 10여 년 전 ‘대륙의 실수’로부터 시작됐다. 대륙의 실수란 중국에서 만든 가품 혹은 저렴한 제품이 매우 높은 성능을 내는 것을 의미한다.
첫 등장은 2014년 ‘명기’로 소문난 젠하이저 IE80 모델의 가품이 유통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 일본과 독일 등의 기술 선진국들은 낮은 생산비와 물류의 용이성으로 중국 업체들에 제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발주를 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의 음향기기 제조사 젠하이저의 기술이 중국 생산 공장에서 유출됐다. 기술이 유출되자 중국에선 진품의 가품, 가품의 가품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했다. 이들 제품은 모두 젠하이저 IE80과 비슷한 실력을 뽐냈다.
젠하이저 IE80의 2014년 기준 최저가는 30만원이었다. 중국이 브랜드를 바꿔 만든 다른 모델의 가격은 2만6000원 수준이었다. 성능은 80~90%에 달했다.
이 사건으로 시작된 ‘대륙의 실수’는 점차 하이엔드 시장까지 넘보는 차이파이로 진화했다. 그간의 제작 노하우를 바탕으로 중국 기업들이 자체 브랜드를 달고 제품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차이파이는 저렴한 가격 대비 높은 성능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10만원 미만 스피커 중 ‘가성비의 제왕’으로 불리는 에디파이어 MR4, DAC/앰프의 끝판왕 ‘토핑’, 중국산 헤드폰으로 대표 격인 ‘하이파이맨’, ‘QCY’ 등 제품 범주도 넓다.
특히 헤드폰과 이어폰 시장은 중국 차이파이 제품이 휩쓸고 있다. 스태티스타는 중국은 기술에 정통하며 혁신적이고 저렴한 제품으로 세계 헤드폰 시장을 선도한다고 분석했다. 올해 중국 헤드폰 시장 매출은 41억 달러(약 5조4971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2024~2028년 연평균 성장률(CAGR)은 2.61%로 예측된다.
QCY는 저가형 이어폰 시장의 선두주자였다. 최근 내놓은 헤드폰 QCY H3 가격은 2만8000원에서 3만8000원 수준이다. 고급 헤드폰에 들어가는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탑재해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10만원대의 중가 무선 헤드폰과 블루투스스피커 시장에서는 앤커의 사운드코어, 원모어의 소노플로우 등이 높은 가성비로 한국과 미국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차이파이 기업들은 유럽이나 미국산이 자리 잡고 있던 하이엔드 시장까지 진입했다. 중국 유선 이어폰 대표적 브랜드는 ‘수월우’, ‘텐치짐’, ‘심갓’, ‘키위이어스’ 등이다. 중국 수월우 유선 이어폰의 가격범위는 입문용 6만원대부터 고급형 280만원대까지 넓게 형성됐다. 또 헤드폰인 하이파이맨 ‘아리아 오가닉’ 모델은 약 145만원에 달한다.
특히 국내 커뮤니티에선 중국산 유선 이어폰에 대한 반응이 남다르다. 약 4만~6만원으로 수십만원대 음향기기의 음질을 즐길 수 있어서다. 무선 이어폰과 달리 오디오 신호를 직접 전달해 음원 손실이 적다. 이러한 유선 이어폰의 특성과 중국의 가성비 있는 기술의 조합이 인기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라고 풀이된다.
음향기기 시장에서 핵심은 헤드폰 혹은 이어폰보다는 스피커와 앰프 시장이다. 중국은 헤드폰과 이어폰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스피커와 앰프 시장에서도 성장 중이다.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올해 중국 스피커 시장 매출만 124억 달러(약 16조5000억원)로 추산된다. 2024~2028년 예상되는 CAGR은 6.69%로 세계 시장에서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윤소희 인턴기자 ys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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