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대표의 질책 등 업무상 스트레스가 우울증세 악화시켜“
공단 측 항소 안 해 유족 승소

대표 폭언에 생 마감한 홍보대행사 직원···3년 2개월 만 ‘업무상 재해 인정’ [강홍민의 끝까지 간다]
홍보대행사에 근무하던 ㄱ씨가 정식 채용을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두고 유족 부모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 승소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는 2020년 10월 발생한 ㄱ씨의 사망사건에 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냈다.

재판부에 따르면, ㄱ씨는 사망 전날 자신의 상사에게 "낯빛이 좋지 않다" "정신질환이 있냐"는 등 반복적으로 질책을 받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ㄱ씨의 부모는 "자녀의 사망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공단은 "ㄱ씨가 업무상 사유로 사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거부했다.

행정소송을 제기한 유족은 재판에 앞서 "회사의 대표가 자녀에게 심한 질책과 폭언을 해 (자녀가) 정식 채용을 앞두고 해고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다"며 "이로 인해 자녀의 우울증이 급격히 악화했고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으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ㄱ씨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과 주치의 소견 등 증거를 바탕으로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ㄱ씨는 2017년부터 2020년 마지막 회사에 입사할 때까지 여러 차례 이직을 경험했고, 사건이 발생한 회사에서도 3개월의 수습 기간 후 채용을 조건으로 입사했다"며 "그로 인해 ㄱ씨는 이번에도 3개월 후 해고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상당히 느끼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상황에서 ㄱ씨는 대표로부터 여러 차례 질책을 들었고, 사망하기 전날에는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폭언을 들어 극심한 수치심과 좌절감 등을 느꼈을 것"이라며 "업무상 스트레스가 ㄱ씨의 우울증세를 크게 악화시켰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ㄱ씨가 생전 적은 일기장에는 "대표님의 말들이 자꾸 생각이 난다. 복기를 할수록 감정이 올라와서 힘들다"라며 "나도 일 잘하고 싶고, 안 혼나고 싶다"라는 내용을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공단 측이 항소하지 않아 ㄱ씨가 사망한 지 3년 2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유족의 승소가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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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