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신성장전략 특별 기획 : 리빌딩 수출 코리아]
부산 신항 4부두 야적장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
부산 신항 4부두 야적장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
글로벌 시장에서 수출 강국 한국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 경제 성장을 떠받치던 국가 기둥 산업들은 중국 등 신흥강자들과의 경쟁 심화로 주도권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보호무역주의, 환경규제 확대로 글로벌 교역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로 국내 상장사들의 약 70%가량이 수출 기업임을 감안하면 수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의 수출은 반도체와 중국에 편중돼 있어 수출 시장과 품목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정 품목과 국가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대외환경 변화로 인한 수출 충격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의 연간 수출액은 전년 대비 7.5% 감소한 6324억 달러에 그치며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미·중 패권 경쟁의 희생양이 된 셈이다. 글로벌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수출시장 경쟁력은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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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영자총협회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6대 국가첨단전략산업(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미래차·바이오·로봇)의 수출 시장점유율이 2018년 8.4%에서 2022년 6.5%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6대 첨단산업 수출 총액 중 69%(1285억 달러)로 수출 규모가 가장 큰 반도체의 수출 부진이 한국의 점유율을 끌어내렸다. 특히 같은 기간 한국의 반도체 수출 시장점유율은 하락(13.0→ 9.4%)하고 대만은 상승(11.2→ 15.4%)하며 한국과 대만 간 점유율 순위가 역전됐다.

하상우 경총 경제조사본부장은 “최근 각국의 강력한 지원 속에 글로벌 기술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를 비롯한 우리 첨단산업의 수출 시장점유율이 약화되고 있다”며 “고위험을 무릅쓴 채 장기간의 투자·연구개발로 기술력을 확보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첨단산업 특성을 감안해 규제완화, 투자·R&D 세제 지원 확대와 같은 대책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수출이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특정 품목·국가에 편중된 수출구조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부는 2027년 세계 수출 5강이라는 비전 아래 올해 7000억 달러라는 도전적인 수출 목표를 내놓았다. 초격차 기술 확보, 생산능력 확충 등을 위해 반도체 1200억 달러 이상, 자동차 750억 달러 등을 총력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수출 주력산업의 ‘리빌딩’이 시급하다.

천수답처럼 글로벌 경기 회복만을 바라보기보다 수출구조를 다변화하고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 성장의 근간이 된 반도체, 2차전지, 자동차, 방산, 조선·철강·석유화학, 바이오 등 수출 주력산업이 처한 위기와 기회 요인 분석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점검해봤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3년 2월 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3년 2월 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① 반도체


한국의 대표 수출 품목인 메모리 반도체는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2018년 29.1%를 기록하는 등 수년간 세계 수출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해왔으나 이후 2위로 밀려나 2022년에는 18.9%까지 하락했다. 반면 중국은 2019년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수출 시장점유율 27.2%로 1위를 차지한 이후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은 국가대항전으로 확전되고 있다. 미국, 일본, 대만 등은 규제 해소와 자금 지원을 통해 반도체 주도권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쟁국들이 정부의 강력한 지원으로 반도체 산업의 제조역량을 끌어올리고 있어 한국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국 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보조금 정책을 펴고 있는 미국은 삼성전자에만 60억 달러(8조원) 이상의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세액공제 확대, 국가산업단지 조성, 인력 양성 등 간접 지원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수출입 구조 및 글로벌 위상 분석’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에서 반도체 핵심 생태계 육성과 주도권 장악을 위해 보조금 지원 및 혁신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며 “정부 반도체 육성 사업의 조속한 실현을 위해 경쟁국 대비 여전히 부족한 투자 인센티브와 보조금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틈바구니에 낀 한국은 경쟁자들의 추격을 저지하고 반도체 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하기 위해 초격차 기술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양분하고 있는 가운데 생성형 AI 시대 본격화로 HBM 수요가 늘고 있는 점은 기회 요인으로 분석된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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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2차전지


2차전지 수출은 2017년 50억 달러를 돌파한 뒤 가파르게 성장해 2022년 99억8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100억 달러에 육박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98억3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6% 감소했다.

수출 증가세가 꺾인 가운데 중국산을 중심으로 2차전지 수입은 빠르게 늘어 2차전지 무역수지 흑자도 줄고 있다. ‘배터리 순수출국’으로서의 위상 역시 점차 약해지는 모습이다. 2차전지는 전기차, 바이오 등과 함께 새로운 수출 동력으로서 큰 역할을 해왔지만 전기차 업계의 배터리 재고 조정 및 광물 가격 하락 등으로 수출 여건이 녹록지 않다.

수출액 100억 달러 관문을 넘지 못하고 상승세가 꺾인 이유는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 전기차 산업이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는 ‘캐즘(Chasm)’ 국면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해 북미, 유럽 등으로 해외 생산거점 가동을 본격화했고, 값싸고 성능이 좋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운 CATL 등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 심화도 수출 약화에 영향을 미쳤다.

배터리 3사는 초격차 역량 확보로 중국의 배터리 굴기를 넘어설 계획이다. 하이니켈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로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벌린다는 계획이다. 삼성SDI는 배터리 3사 중 가장 빠른 2027년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한다는 목표다. SK온은 2029년, LG에너지솔루션은 2030년 양산이 목표다.
LG에너지솔루션 오창공장에서 직원들이 LG에너지솔루션이 개발한 롱셀(Long Cell) 배터리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오창공장에서 직원들이 LG에너지솔루션이 개발한 롱셀(Long Cell) 배터리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③ 자동차


지난해 자동차 수출액은 708억7000만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도체 수출 부진 속에 자동차 수출이 15개 주요 수출품목 중 1위에 올라서며 한국 수출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특히 지난해 미국으로의 전기차 수출액은 59억1000만 달러로, 북미에서 조립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IRA 영향에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달성하며 각각 300억 달러 수출의탑과 200억 달러 수출의 탑을 나란히 수상했다. 지정학적 위기, 보호무역주의 심화,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위축 등 불확실한 대외 환경 속에서도 경쟁력 있는 전기차와 친환경차 라인업으로 글로벌 판매를 늘린 덕분이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 대응을 위해 국내 전기차 생산능력 확대에도 나섰다. 현대차는 울산공장 내 연간 20만 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 건설에 착수했고, 기아는 오토랜드 광명 내 전기차 전용 공장을 구축해 EV3와 EV4를 연간 15만 대 생산할 예정이다.

다만 올해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가 본격화하면서 지난 2월 친환경차 수출이 3년 2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SNE리서치는 올해 전 세계에서 총 1675만 대의 전기차가 등록되며 지난해보다는 낮은 19.1%의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전기차를 국내 공장에서 만들어 해외로 수출했지만 IRA 등 각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현지 생산을 위해 해외 생산 공장 확대에도 주력하고 있다. 전기차 수출을 담당하는 현대차그룹이 오는 10월부터 미국 조지아주의 전기차 전용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가동하면 전기차 수출은 더 줄어들 전망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이 2022년 10월 25일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기공식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현대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이 2022년 10월 25일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기공식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현대차
④ 방산


방위산업 수출액은 지난해 130억 달러 규모로 2년 연속 세계 톱10 방산 수출국에 진입했다. 173억 달러를 기록한 2022년보다는 감소했지만 질적 성장을 이뤄냈다는 평가다. 특히 폴란드 등 4개국에 머물렀던 수출대상국이 지난해에는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지역과 핀란드, 에스토니아, 노르웨이 등 유럽권역까지 총 12개국으로 3배 늘었다.

수출 무기체계도 2022년 6개에서 12개로 다변화했다. 올해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LIG넥스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방산업체들이 폴란드뿐 아니라 중동, 동유럽 등에서 수주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루마니아 정부와 1조원 규모의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맺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사우디아라비아에 4조2500억원 규모의 천궁-Ⅱ 10개 포대를 추가 수출하는 데 성공한 LIG넥스원은 추가 발주가 기대된다.

한국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기존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늘리는 수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30조원 규모의 폴란드 2차 실행계약 및 추가 수주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올해 방산 수출 규모를 200억 달러까지 확대하고 수출 지원을 강화한다.

특히 방산 수출의 ‘협상부터 이행까지’ 전 단계에 걸쳐 범정부 차원의 원스톱 지원을 위한 ‘한국형 수출지원체계’를 구축한다. 2027년까지 세계 4대 방산 강국 진입 기반 마련을 위해 미래 글로벌 방산시장을 주도할 인공지능(AI)·우주·유무인복합·반도체·로봇 분야 5대 첨단 전략산업의 고속 성장도 지원한다.
현대로템이 납품한 K2 전차가 폴란드 그드니아 항구에 도착한 모습. 사진=현대로템
현대로템이 납품한 K2 전차가 폴란드 그드니아 항구에 도착한 모습. 사진=현대로템
⑤ 조선·철강·석유화학


조선·철강·석유화학산업은 글로벌 친환경 규제와 탄소배출량 저감 요구 확대에 따라 체질 개선에 한창이다. 지난해 선박 수출액은 219억7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0.9% 증가했지만 석유화학 수출액은 456억8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5.9% 줄었고, 석유제품은 521억6000만 달러로 17% 수출액이 감소했다. 철강 수출액은 352억1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8.4% 감소했다.

올해 조선업은 글로벌 탈탄소 흐름과 맞물려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등을 연료로 하는 차세대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요 증가로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철강산업은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과 수요 부진,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제도(CBAM), 미국의 청정경쟁법(CCA) 등 각종 무역장벽에 따른 대응이 수출 리스크로 부상한 만큼 탄소중립 기술 개발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시급하다. 포스코는 자체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인 하이렉스(HyREX)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7년까지 연산 30만 톤 규모의 하이렉스 시험설비를 준공하고 기술 검증을 거쳐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룬다는 계획이다.

석유화학산업은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자급률 증가와 대규모 증설로 인한 공급과잉 등으로 수출이 위축되면서 대중국 수출 중심 전략이 한계에 봉착했다. 석유화학업계는 대대적인 사업 구조조정과 함께 범용제품 중심에서 고부가·친환경 제품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사진=한국경제신문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사진=한국경제신문
⑥ 바이오


바이오헬스 산업은 지난해 수출액 133억5000만 달러로 전년(162억8900만 달러) 대비 18% 감소했다. 바이오헬스 산업은 최근 5년간 다른 산업 대비 높은 수출 성장률을 보였으나 코로나19 종식으로 인한 글로벌 제약시장 성장 둔화, 각국의 규제 강화 등으로 수출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정부가 2027년 바이오헬스 6대 강국을 목표로 하는 만큼 바이오헬스 산업의 수출 활성화를 위해선 국가 차원의 선제적인 지원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기술수출 실적은 20건, 7조9000억원(비공개 제외) 규모로 집계됐다. 전년 16건, 6조2559억원보다 약 26% 증가했다. 계약 건수로는 대웅제약이 중국 CS파마슈티컬과 섬유증질환 신약 후보물질 베르시포로신, 미국 기업 비탈리바이오와 자가면역질환 치료 신약 후보물질 등 4건의 기술수출 실적을 냈다.
2023년 3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신시장창출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2023년 3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신시장창출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지난해 3월 바이오오케스트라는 글로벌 제약사와 약 1조1050억원 규모의 공동연구 및 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가 미국 제약사 얀센과 역대 최대인 2조240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정부는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에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을 핵심 국정과제로 선정한 이후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한 데 이어 2616억원 규모의 K바이오 백신 펀드 1·2호를 조성했다. 1000억원 규모의 3호 펀드 조성도 추진 중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