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바레와 자유[김홍유의 산업의 窓]
최근 한 스포츠 스타가 일본풍 주점과 관련하여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일이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이 든다. 아직도 음식과 언어에 대한 편견이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결코 플러스 요인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주식인 쌀 중에 아키바레라는 품종이 있다.

아키바레는 1955년 일본 농업시험장에서 개발된 벼 품종이다. 우리가 주로 먹는 끈기 있는 품종은 자포니카종이며, 월남 쌀이라고 부르는 푸석푸석한 밥맛을 내는 종은 인디카종이다. 최근 연구에는 논에서 자라는 벼의 원산지가 양쯔강이라는 설도 있다. 어찌 되었든 벼는 중국에서 한반도로, 다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파된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아키바레 쌀은 우리가 전해준 벼를 일본이 품종 개량하고, 우리가 되받아서 다시 개량한 쌀이다. 과연 이 쌀은 어느 나라 쌀인가?

아키바레는 일반 벼 종류와는 다르게 푸른 빛을 띠며 이삭은 많지만, 알이 적고 밥맛은 좋다. 우리말로는 추청미라 부르고 이천 등 중부지방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1969년 일본에서 도입하여 50년 동안 재배한 품종이다. 어린이들이 많이 즐기는 돈가스도 있다. 돈가스는 프랑스에서 유래되었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이 철저히 자국에 맞게 바꾼 음식이다. 즉 화혼양재(和魂洋才)의 대표적 사례다. 화혼양재는 근대화 전략으로 일본의 정신에 서양의 기술을 덧대어 또 다른 일본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돈가스는 프랑스 요리 코틀레트(cotelette)가 원형이며 송아지(cote)나 양, 돼지의 등심 뼈를 잘라 만드는 요리다. 따라서 돈가스는 송아지 대신에 돼지 ‘돈’과 자르다의 일본말 ‘가스레쓰’에서 ‘가스’만 따온 말이다. 단어만 화혼양재를 한 것이 아니다. 돈가스는 요리 자체를 전부 화혼양재로 만들었다. 기존 원형을 변형한 것으로는 송아지에서 돼지고기로, 얇은 고기에서 두꺼운 고기로, 고운 빵가루에서 거친 빵가루로, 기름에 살짝 튀기는 방식에서 푹 담가서 튀기는 방식으로, 나이프 대신 젓가락으로 사용했으며,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든 것으로는 삶지 않은 양배추에 밥을 추가하였다. 돈가스는 카레라이스, 고로케와 더불어 일본 3대 양식(洋食)이 되었다.

수천 년 동안 내려오는 핵심 가치를 버리고 새로운 이민족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정말 힘이 드는 과정이다. 돈가스에는 1200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은 일본 풍습을 버리는 일이고, 사무라이의 상징인 ‘칼’이 푸줏간 칼로 변신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혁신은 오른팔을 자르는 일이고, 선택은 고난도 포기 행위다.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전체 인구 7%를 차지하는 사무라이들이 골치 아픈 계층으로 둔갑한다. 사무라이는 조선의 양반처럼 생업에 종사할 수 없다. 사무라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개혁에 동참하든지, 개혁에 저항하여 싸우든지 아니면 실직자가 되는 길밖에 없다. 1853년 6월 미국의 태평양함대 사령관 페리(Matthew Perry) 제독이 이끄는 4척의 함대로 결국 일본은 쇄국을 포기하고 요코하마를 개항한다. 요코하마를 통해 서구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실직된 사무라이는 목숨보다 더 신성한 칼로 돼지를 자르면서 기름에 튀긴 요리를 한다. 돈가스는 대표적 메이지유신 시대 음식이지만 사무라이의 슬픈 눈물이 깃든 음식이다.

자유는 영어로 ‘freedom’이라 하며, 한자로는 ‘自由’라고 쓴다. 스스로 ‘자’에 말미암을 ‘유’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글은 물론 한자로도 너무 잘 번역했다. 이 단어를 최초 번역한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이 서양 단어를 번역한 것을 우리와 중국이 차용한 것이다. 음식은 가장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며 그 시대의 세태(世態)를 반영한다. 그런 까닭으로 음식에는 어떤 가식도 없다. 그저 인간이 먹어야 하는 가장 원초적 수단일 뿐이다. 문자와 언어도 마찬가지다. 가장 효율적이고 실용적이 아니면 폐기된다. 우리가 외국어를 쓰고 싶지 않아도 실용성으로 인해 저절로 사용하게 된다. 먹는 음식과 단어마저 이념에 빠지면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힌 사회가 틀림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일본을 배척하려면 뼈를 깎는 혁신 없이는 굶어 죽든지 벙어리가 되어야 한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 전 한국취업진로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