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대결서 형제측 승리로 통합 불발

임종윤 한미약품 전 사장(왼쪽)과 임종훈 한미약품 전 사장이 28일 오전 경기 화성시 라비돌 호텔에서 열린 한미사이언스 '제51기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임종윤 한미약품 전 사장(왼쪽)과 임종훈 한미약품 전 사장이 28일 오전 경기 화성시 라비돌 호텔에서 열린 한미사이언스 '제51기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한미약품그룹·OCI그룹 통합을 둘러싼 한미그룹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28일 경기 화성시 라비돌 호텔에서 열린 한미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임종윤·종훈 형제가 승리했다.

이날 주주총회에서는 창업주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주주제안한 이사진 5명의 선임 안건이 모두 통과했다. 임종윤·종훈 형제는 사내이사, 권규찬 디엑스앤브이엑스 대표이사와 배보경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기타비상무이사, 사봉관 변호사는 사외이사가 됐다.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 이우현 OCI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은 부결돼 OCI그룹과의 통합이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형제 측이 대부분의 안건에서 52% 내외의 득표로 의결권 과반에 달하는 지분을 모으는 데 성공하면서 주주제안 측 이사들만 모두 이사회에 진입했고, 결국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장악하게 됐다.

이번 주주총회 결과에 따라 한미사이언스 이사진 9명 가운데 통합에 반대하는 형제 측 인사가 5명으로 과반을 차지하면서 한미사이언스 이사회가 OCI그룹과의 통합을 취소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미그룹은 경영권을 쥔 창업자의 배우자 송영숙 회장과 딸 임주현 부회장이 추진하는 OCI그룹과의 통합에 대해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형제가 반발하며 경영권 분쟁을 벌여왔다.
한미약품 본사. 사진=한미약품
한미약품 본사. 사진=한미약품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주요 주주들을 대상으로 찬성파가 확보한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42.67%다. 반대파는 40.56%를 보유했다. 찬성파와 반대파의 지분 차이는 2.10%포인트에 불과했다.

창업주 가족과 이번 주총에 앞서 형제 지지를 사전에 밝힌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12.15%), 모녀 측 지지를 밝힌 한미사우회(0.33%)를 제외하고 이날 주총 의결에 참여한 소액주주 등 지분은 4.5% 정도로 파악된다. 이들 소액주주 대부분이 형제 측에 표를 몰아주면서 그 이전 2%포인트대의 격차를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지분 차이가 약 2%포인트로 초박빙이었던 만큼 주주총회 전날까지 '캐스팅 보트'를 쥔 소액주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임주현 부회장은 자사주 매입·소각 등 공격적인 주주친화 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임종윤·종훈 형제는 주주총회 전날 입장문을 내 "저희는 어머니 말씀처럼 철없는 아들들일지 몰라도 선대 회장의 경영 DNA를 이어가고 자랑스러운 아들들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 "법원의 가처분신청 기각 이후 한미사이언스 주가가 급락한 것은 현 이사진의 결정에 대한 주주들의 시장 평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형제는 최근 OCI와 통합 결정을 되돌리고, 1조원 투자 유치를 통한 바이오 의약품 수탁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등 현 경영진과 다른 미래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이들이 실제로 통합 결정을 번복하게 되면, OCI 측과 법적 갈등이 생길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날 오전 9시 시작할 예정이었던 주총은 의결권 있는 주식 수를 확인하는 과정이 예상보다 오래 걸리며 개회가 3시간 30분가량 지연됐다.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은 이날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주총장을 찾았던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은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한 표결 결과가 나오기 전 주총장을 빠져 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사이언스 주총 이후 OCI그룹은 "주주분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합 절차는 중단된다"며 "앞으로 한미그룹의 발전을 바라겠다"고 말했다. OCI그룹 측은 "향후 통합 재추진 계획도 없다"고 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