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보고 받고도 조치하지 않아 사망
법 시행 이후 최대 형량 나와

[법알못 판례 읽기]
경기도의 한 오피스텔 공사장에서 작업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기도의 한 오피스텔 공사장에서 작업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재판에 넘겨진 사업주에게 실형을 인정한 법원의 두 번째 판단이 나왔다. 앞선 ‘1호 실형’보다 높은 형량으로 법 시행 이후 유죄 판결이 나온 15건의 하급심 사건 가운데 최고형이 선고된 것이다.

이에 따라 ‘중대재해 리스크’에 대한 산업계의 불안감도 고조되는 한편 상급심 판단에도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법원은 대표이사가 회사 내 안전 문제를 전반적으로 방치한 사실을 지적했다. 안전점검에서 위험성이 확인됐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진행해 사망 사고가 발생한 만큼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중대재해 전문가들은 “기업이 안전점검에서 확인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실질적인 조처를 하지 않을 경우 양형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점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유족 합의에도 실형 선고

울산지방법원 형사3단독 이재욱 부장판사는 2024년 4월 4일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경남 양산시의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대표 A 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다만 A 씨는 법정구속되지는 않았다. 이 회사 소속 네팔 국적 근로자인 B 씨는 2022년 7월 14일 다이캐스팅(주조) 기계 내부를 청소하던 중 머리가 금형에 끼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조사 결과 해당 기계의 상·하단 안전문 방호장치가 파손되고, 인터록(안전 중단 장치)도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문을 열어도 기계가 멈추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사고 발생 전 업체로부터 안전점검을 위탁받은 대한산업안전협회는 기계 상태를 두고 ‘일부 장치가 파손돼 사고 위험성이 높다’는 보고를 여러 차례 회사 측에 전달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하지만 회사는 기계 상태와 관련해 별도의 조처를 하지 않았고, 사고에 대비한 매뉴얼도 마련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유해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등의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은 점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평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점 △중대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을 대비한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은 점 △안전보건 관계법령(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이행에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A 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고 발생 열흘 전까지 협회로부터 구체적인 사고 위험성을 지적받았음에도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며 “적절한 조치가 있었다면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은 비록 사고 직후 업체 측이 유족과 신속하게 합의하고 시정조치를 마쳤다고 하더라도 집행유예로 선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 씨와 함께 기소된 법인에 벌금 1억5000만원을, 안전관리 담당 총괄이사 C 씨에겐 금고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산업안전중점 검찰청인 울산지검이 관할인 울산·양산 지역에서 기소한 첫 사건을 다룬 것이다.

“위험 발견 시 즉시 개선해야”

이번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된 사건 중 두 번째 실형 사례다. 이 사건에 앞서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14건의 유죄가 선고됐지만 실형이 나온 사례는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을 확정받은 한국제강 사건이 유일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다소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동종 전과로 벌금형을 여러 차례 선고받았던 한국제강 사건을 제외하면 모두 집행유예가 나왔던 데다 형량 또한 조항에 명시된 형량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한 중대재해 전문 변호사는 “개선 요구를 보고받고 조처하지 않았고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안법이 함께 적용돼 죄질이 나쁘다고 본 것 같다”면서도 “유족과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징역 2년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5조에서 정한 ‘안전보건 관계법령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위반’을 재판부가 인정한 것도 새로운 점이다. 앞서 유죄 판결이 나온 14건의 하급심 판결 중 이 의무 위반이 적시된 사례는 9번째로 기소된 D 철강업체가 유일했다.

지금까지 안전보건 확보 의무 이행 여부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안전과 보건 확보 의무’를 규정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각호의 의무들이 주로 문제가 됐다.

법무법인 율촌 중대재해센터 관계자는 “현장에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확인하고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신속하게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안전점검이나 근로감독에서 지적받은 사항은 반드시 적시에 시정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개선 여부 및 개선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체계를 갖출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돋보기]
삼표그룹도 재판 시작…첫 그룹 총수 기소 사건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자의 안전·보건을 확보하도록 경영책임자에게 의무를 부과한 법이다. 경영책임자가 이를 지키지 않아 근로자가 사망하는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도급이나 용역, 위탁의 경우 원청업체가 협력 업체 직원에 대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까지 부담하도록 했다. 이 법은 2022년 1월 27일 50인 이상 사업장에 먼저 적용됐고 2023년 1월 27일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이 법을 다루는 첫 판결은 1년 3개월 만에 나왔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형사4단독 김동원 판사는 2023년 4월 6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온유파트너스 대표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온유파트너스에는 벌금 3000만원을 부과했다. A 씨는 법정구속은 피했다. 이 판결은 검찰과 피고인 모두 항소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온유파트너스와 A 씨 등은 경기 고양시의 한 요양병원 증축 공사 현장에서 하청 노동자가 추락사한 사건으로 2022년 11월 말 기소됐다. 사망한 노동자는 안전대 없이 5층 높이에서 공사용 앵글을 옮기다가 추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재판부는 “A 씨 등이 안전대 부착 및 작업 계획서 작성 등 의무 중 일부만 이행했더라도 사망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근로자의 사망 사고에 대한 형이 확정된 경우 사업장 명칭을 공표하도록 한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9월 온유파트너스의 중대재해 발생 사실을 관보와 고용부 홈페이지에 처음으로 게재했다. 회사 입장에선 법 시행 이후 첫 중 재해 발생 기업으로 공표되는 불명예를 안은 것이다.

재벌 총수가 기소되는 사례도 나왔다. 의정부지법 형사3단독(정서현 판사)은 2024년 4월 9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 등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다.

피고인 출석 의무가 있는 정식 재판인 만큼 정 회장이 직접 법정에 출석해 관심을 끌었다. 정 회장 등은 2022년 1월 29일 삼표산업 양주 사업소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3명이 토사에 매몰돼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안전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만에 사고가 발생해 ‘1호 사고’가 됐다.

검찰은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규정상 실질적이고 최종적 권한을 행사하는 경영책임자가 정 회장인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지난해 3월 31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정 회장을 불구속기소했고, 이종신 삼표산업 대표이사 등 임직원 6명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정 회장 측은 공판 첫날 “피고인은 법에서 언급하는 안전 경영책임자가 아니며 법에서 요구하는 안전보건 체계 의무를 다했고, 안전보호 관리체계 구축 미이행과 이 사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 안 되며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