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3월 17일 수원 라마다프라자호텔에서 열린 하나은행의 ‘VIP 외국인 손님’ 초청 행사. 이 행사에는 태국, 베트남,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등 4개국 대상 VIP 외국인 근로자 손님 35인이 초청됐다.
3월 17일 수원 라마다프라자호텔에서 열린 하나은행의 ‘VIP 외국인 손님’ 초청 행사. 이 행사에는 태국, 베트남,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등 4개국 대상 VIP 외국인 근로자 손님 35인이 초청됐다.
“저 VIP 아닌데요. 보이스피싱 아녜요?”

하나은행의 외국인 근로자 마케팅팀 나리싸라 유디 과장은 최근 우수(VIP) 고객 행사를 위해 손님을 초청하는 과정에서 진땀을 빼야 했다. 태국, 베트남,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4개국 대상으로 해외 본국에 가장 송금을 많이 한 손님 35인이 초청 대상이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VIP 행사란 말에 난색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태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다가 2014년부터 하나은행에 합류한 유디 과장은 “VIP가 아닌데 왜 제게 전화를 걸었는지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았다”며 “은행을 빙자해 사기를 치는 게 아니냐 의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스리랑카 손님을 담당하는 우 디 따 대리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스팸이라고 생각해 바로 전화를 끊은 분도 있고 아파트 한 채 없는 내가 무슨 VIP냐며 보이스피싱으로 오해해 항의도 받았다”고 말했다. 외국인 인력 역대 최대, 지원 대상에서 VIP로
외국인 비율 5%…은행의 VIP 손님 된 ‘외국인 근로자’ [비즈니스 포커스]
지난 3월 17일 경기도 수원 라마다프라자호텔에서 하나은행의 ‘VIP 외국인 근로자 행사’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는 태국, 베트남,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4개국 대상 VIP 외국인 근로자 손님 35인이 초청된 가운데 준비과정에서 웃지 못할 사연도 나왔다. 은행의 VIP가 보통 ‘고객 자산가’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저임금 근로자가 다수인 외국인 근로자들이 VIP 행사 초청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행사를 담당한 외국인 근로자 마케팅팀의 김상봉 팀장은 “체류 외국인 250만 명 시대에 외국인 손님은 은행의 중요한 고객군이 됐다”며 “기존에는 지원 대상으로 보고 기부 행사 등을 마련했다면 이제는 한국에 같이 살아가는 동등한 근로자로 바뀌어야 할 때라는 시각에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VIP 행사를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나은행의 VIP외국인손님 초청행사
하나은행의 VIP외국인손님 초청행사
외국인 근로자는 은행의 주요 고객으로 성장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외국인 계좌 가입자 수는 2019년 말 496만5964명에서 2023년 말 571만1893명으로 15%(74만5929명)나 늘었다.

이들은 계좌 가입을 통해 급여 수령과 해외 가족 부양을 위한 해외 송금 등 금융거래를 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환 전문은행인 하나은행의 해외 송금 고객은 외국인이 24만 명으로 내국인(13만 명)의 약 2배에 달했다.

이들이 가져다주는 수수료 수익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난해 하나은행의 외국환 이익 중 외국인 근로자의 해외 송금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약 7.7%를 차지했다. 하나은행 측이 이번 행사에 초청한 외국인 근로자의 기준을 ‘송금’으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외환마케팅팀의 박민주 과장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 가운데 해외 본국에 송금을 가장 많이 한 손님들로 선정했다”며 “송금 금액을 기준으로 잡으면 행사의 취지와 달리 고액 자산가들이 후보에 오를 수 있어 송금 건수로 대상을 추렸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 초대된 35인은 한 달에 최소 2회 이상의 해외 송금을 이용한다. 많게는 주에 1회 이상의 송금을 하는 이도 있다. 박민주 과장은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당행을 꾸준하게 이용하고 찾아주는 손님이 진정한 VIP란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의 금융 업무는 단순히 주거래은행의 통장 개설 송금 업무 등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대출 업무부터 연말정산, 건강보험, 외국인 근로자 전용보험 가입까지 다양한 금융 활동을 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근로자의 대출 시장 규모는 약 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년보다 1.5배 늘어난 규모다.

저출산, 고령화 등 국내 인구구조의 변화로 외국인 근로자 수는 앞으로 더 증가할 전망이다. 올해 고용허가제로 ‘비전문 취업비자(E-9)’를 발급받아 국내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인력은 역대 최대 규모인 16만5000명으로 결정됐다.

이에 금융권은 맞춤형 금융상품·서비스도 늘려가고 있다.

시중은행 중에선 외국환 전문은행인 하나은행의 서비스가 눈에 띈다.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출신 국가와 다른 금융 환경, 언어 소통의 어려움, 주중 공장 근로 등으로 은행 방문이 어렵고 은행 업무처리에 장시간이 걸린다. 이 점에 착안해 하나은행은 2003년 8월 경기도 안산에 원곡동 외국인센터 지점을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 16개 영업점에서 일요일 영업을 하며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해당 영업점에는 외국어가 가능한 직원을 우선 배치해 언어 소통을 지원하고 있으며 특히 일요일에는 언어 소통을 지원하기 위한 각 국가별 통역을 담당하는 아르바이트 직원을 채용 운영함으로써 손님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우리은행도 안산에 외국인특화지점을 설치하고 김해·의정부·발안·광희동 외국인금융센터 등 4곳을 운영 중이다.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일요일에도 영업하며 중국,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등에서 온 외국인 직원을 배치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베트남어 등 10개 언어로 창구에서 이용할 수 있는 외국인 전용 콜센터를 운영한다.

이러한 외국인 전용 은행은 ‘커뮤니티’ 역할도 담당한다. 외국인 고객들의 금융거래는 물론 정보교환의 장이다.

은행은 외국인 전용 스마트뱅킹 앱도 운영 중이다. 하나은행은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해외 송금 전용 모바일 앱 서비스를 16개국 언어로 제공하며 우리은행은 지난해 11월 기존 외국인 전용 스마트뱅킹 앱인 ‘우리WON글로벌’을 개편해 17개국 언어로 지원하고 있다. 금융 취약층 교육까지 ‘ESG 현장’ 금융 시장에서 국내 거주 외국인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이들의 금융거래 환경은 여전히 문제다. 출신 국가와 다른 금융 환경, 언어 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금융사기에 연루되기 쉽고 불법 송금 등 불건전한 금융거래에 노출되어 있다. 김상봉 팀장은 “외국인들이 금융거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언어”라며 “언어에 취약하다 보니 사기를 당하는 일도 잦고 불건전한 거래에 휘말리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나서 국내 거주 외국인을 위한 금융 생활 안내 책자를 발간하는 등 금융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있지만 피해를 막기란 역부족이다. 이 틈을 채우는 게 바로 금융권이다. 국내 주요 은행들은 불법 송금 등 불건전한 금융거래의 피해를 막기 위해 국내 거주 외국인 대상으로 금융 교육을 실시한다.

하나은행의 외국인 근로자 마케팅팀도 건전한 금융 환경 조성을 위해 탄생했다. 국내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자사 상품을 홍보하는 것은 물론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에 들어올 때 금융 교육을 도맡아 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박민주 과장은 “E-9 근로자들은 2박 3일간의 필수의무교육을 받고 산업현장에 투입되는데 이때 우리 마케팅팀의 외국인 직원들이 대포통장의 위험성을 설파하고 보이스피싱의 위험을 안내하는 등 금융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하나은행 외환마케팅부 외국인근로자마케팅팀 김상봉 팀장, 우디따 대리, 나리싸라유디 과장, 박민주 과장. 사진=한국경제매거진 서범세 기자
(왼쪽부터) 하나은행 외환마케팅부 외국인근로자마케팅팀 김상봉 팀장, 우디따 대리, 나리싸라유디 과장, 박민주 과장. 사진=한국경제매거진 서범세 기자
김상봉 팀장이 이끄는 외국인 근로자 마케팅팀에는 태국, 베트남, 네팔,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등 총 11명의 현지 외국인 담당자가 있다. 각 나라의 손님들을 대상으로 기초적인 금융거래부터 한국 생활에 필요한 금융 조언까지 현지 적응을 돕는다. 태국 담당자인 유디 과장은 전국 각지에서 하루 50~60통의 문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통장 개설할 때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부터 금융사기를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묻는 연락도 많다”며 “현지 적응을 도울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국내 거주 외국인이 내국인과 동등한 금융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김상봉 팀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전체 인구의 5%를 다인종·다문화 국가의 기준으로 정하는데 우리나라는 올해 5%를 넘을 것으로 본다(2023년 9월 말 기준 4.89%)”며 “외국인 손님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만큼 외국인이라서 불편한 것 없이 똑같은 앱에서 똑같은 서비스를 누리는 쪽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