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여소야대’, 민주당 동의 없이 규제완화 법안 통과 어려워
PF 위기 ‘옥석 가리기’에 한목소리, 부실현장 구조조정 시작될까

[스페셜 리포트 - 총선 이후 한국 경제 어디로]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적용 대상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신도시 내 시범삼성한신 아파트 등이 보이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적용 대상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신도시 내 시범삼성한신 아파트 등이 보이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의대정원 증원, 대파 논란 등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많은 이슈가 부상했다. 그럼에도 부동산만큼 다양한 주제에서 지속적으로 뉴스를 장식한 정책, 공약은 없었다. 이번 총선은 물론이고 지난 선거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그만큼 부동산은 내수경기와 민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분야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무엇보다 ‘규제완화’에 초점을 맞췄다. 부동산 시장 안정화가 목표였다. 매달 증가하는 지방발(發) 미분양 물량과 장기화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건축비 상승이 건설부동산 경기를 크게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라경제를 휘청이게 할 수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등에 대처하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만으로 건드릴 수 없는 게 세법이다. 시행령이나 지자체 조례 개정 등으로 손댈 수 없는 영역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제21대 국회에서 여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의석수는 114대 158로 여당이 야당의 협조 없이 단독 법안 통과가 불가능했다.

의석수가 더 벌어진 지금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초 민생토론회를 통해 직접 밝힌 일명 1·10 대책에 포함된 재건축 패스트트랙 등을 비롯해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으나 법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각종 정책들의 앞날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정부 운신의 폭은 더욱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경기에 가장 큰 변수는 금리와 유동성이지만 이미 차갑게 식은 심리를 되돌릴 개발 호재와 세제완화 정책은 추진동력이 급속히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말 태영건설이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을 신청하며 표면화한 PF 문제는 여전히 리스크로 남아 있다. 일부 부실사업장을 정리하는 문제에 대해선 여야의 의견이 수렴돼 가는 가운데, 이들이 보는 문제해결 방식은 엇갈린다. 개발공약은 한뜻, 실현 가능성이 문제
지난해 말과 올해 1월 9일 각각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후계획도시 특별법’과 ‘철도지하화 특별법’은 총선 전 지역 현안을 건드린 대표적인 입법으로 통한다. 그렇기에 여야 합의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특히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은 1990년대 입주해 재건축 연한인 30년을 넘겼지만 평균 용적률이 200%에 달해 현행 기준하에서 재건축 사업성이 나오기 힘든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신도시에 재건축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법안으로 등장했다. 이 때문에 처음 추진할 당시부터 ‘1기신도시 특별법’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여야 간 조율하는 단계에서 택지조성사업 완료 후 20년이 지난 100만㎡ 이상 택지까지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이에 서울 목동, 수서, 상계 등까지 총 51곳 103만 가구로 대상이 확대됐고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기준을 더 완화해 대상을 108곳 215만 가구까지 늘렸다.

이뿐 아니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메가시티 등까지 여야 관계없이 발을 걸쳤다.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이 원조라고 서로 내세우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기존 GTX-A·B·C 연장계획은 물론 내년 중순 나올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새로 포함될 GTX-D·E·F 노선안까지 급하게 발표됐다. 이에 대해 민간 재원 75조원을 비롯해 비용 130조원이 든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각 지역 후보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개발 공약에는 ‘네 편 내 편’이 없었던 것이다.

이 같은 지역개발은 야당의 찬반보다 공약 실현을 위해 필요한 막대한 재정 지출이 가능하냐의 문제로 보인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2008년 총선 때는 한창 뉴타운이 이슈였는데 그 당시에도 민주당 후보들이 뉴타운을 찬성한다고 나섰다”며 “뉴타운도 부동산 경기가 꺾이며 해제된 곳이 생긴 것처럼 잘나가던 개발 호재도 비용이나 경기침체 문제로 실현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 정부 때 도입한 규제, 완화 어려워
부동산 부양책 곳곳서 브레이크 걸릴듯 [총선 끝 경제는④]
그러나 야당이 압승함에 따라 정부 의지만으로 실현이 어려워진 정책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규제완화 대책 중에 새로 꾸려질 국회 통과가 필요한 정책은 재건축 패스트트랙,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폐지, 실거주 의무 폐지, 지방 준공 후 미분양 구입 시 1가구 1세대 특례 적용 등이다. 윤 대통령은 2월 21일 울산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기준을 20년 만에 개편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폐지는 정부가 당장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는 않지만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폐지 필요성을 언급한 상태다.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성남 분당을)와 심재철(안양 동안을) 후보 등도 재초환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또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및 양도소득세 중과도 정부·여당 내에서는 폐지 쪽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재초환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 폐지, 취득세와 양도세 중과는 각각 지방세법과 소득세법 개정이 필요하다.

정치권과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중 그나마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은 정책은 재건축 패스트트랙과 개발제한구역 규제완화다. 재건축 패스트트랙은 안전진단 통과 과정을 건너뛰고 정비구역 지정과 조합설립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안전진단은 사업시행계획 인가 전까지만 완료하면 된다. 이 또한 재건축 사업을 촉진하는 일종의 개발공약인 셈이다.

이에 대해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공사비 급등, 고금리 등으로 어려워진 재건축 시장 상황에선 단순히 인허가 절차를 단축해주는 것보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등을 통해 사업성을 높여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초환 폐지나 세제완화 법안 통과는 어려울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기존 정책방향과 맞지 않는 데다 이 같은 규제 대부분은 집값이 한창 오르던 문재인 정부 당시 도입됐다. 일각에선 정치권 특성상 야당이 집권하던 시절 자신들의 실수를 자인하는 듯한 결과를 낳을 수 있어 해당 규제완화에 협조하기를 꺼릴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지방세법과 소득세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었다. PF 사업장 ‘옥석 가리기’는 필연적
다만 양당 모두 “이제는 PF 사업장에 대한 옥석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점에선 같은 방향성을 보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3월 21일 금융, 건설업계와 간담회 자리에서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4월 PF 정상화 방안을 외부에 공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진작에 투명한 방식으로 부실 사업장을 걸러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금융기관이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도록 하는 방식의 ‘땜질식 처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위기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과 박상우 국토부 장관이 “현재 PF리스크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4월 위기설’을 일축한 것과 대비된다. 최근 워크아웃 실사를 진행 중인 태영건설이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등 시장 상황은 여의치 않다.

김우철 더불어민주당 국토교통 수석 전문위원은 “지방 미분양 현장이나 국토부 내부 관계자들을 직접 접해보면 상황이 알려진 것보다 매우 심각하다”며 “우리 당이 이미 제안한 대로 지방 미분양 주택을 정부가 직접 매입해 공공임대 등으로 공급하는 방식과 같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문위원은 “시장에 유동성이 쏟아지던 문재인 정부 당시 도입된 규제는 상황이 달라진 지금 시점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는 있겠지만 현재 문제시된 지방 미분양에 대한 수요가 얼어 붙은 상태이므로 세제 완화만으로 PF 위기를 해소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