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국가는 미사일 기술통제체제(MTCR),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수출관리규정(EAR) 등 각종 규제에 따라 엔진 관련 기술이전과 수출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어 기술 확보 자체가 쉽지 않다.
천문학적인 비용,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기계공학의 총합으로 불리는 항공엔진은 자본과 기술의 진입장벽도 매우 높다.
자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항공강국을 꿈꿔온 중국도 자체 전투기 기술이 없어 20여 년간 러시아 엔진을 베끼고 역설계하며 항공엔진 개발에 수십 년을 쏟아야 했다. 전쟁 속에서 꽃 피운 엔진 기술…미·영·프가 80% 차지
전 세계 항공엔진 시장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CFM인터내셔널, 미국 P&W, 영국 롤스로이스홀딩스PLC, 프랑스 사프란이 전 세계 시장의 약 70~80%를 차지하고 있다. CFM은 GE와 사프란이 50대 50 합작투자로 설립해 사실상 GE가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항공엔진 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육성하며 해외 기술이전을 막는 방식으로 독과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 3대 엔진 제작사인 GE, P&W, 롤스로이스는 1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수차례 전쟁에서 군용기 엔진을 제작한 경험을 토대로 세계 최강의 기술을 꽃피웠다.
GE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1878년 설립한 전기조명회사를 모체로 탄생했다. 1917년 GE는 4200m가 넘는 로키산맥 파이크스 정상에서 터보슈퍼차저를 장착한 350마력의 리버티 항공기 엔진을 성공적으로 시연하며 미국 정부와 항공 관련 첫 계약을 체결했고, 1942년 미국 최초의 제트엔진으로 불리는 I-A 엔진(1250파운드 추력)을 개발했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 GE의 항공기 엔진 기술은 미 공군의 표준이 됐다.
GE가 1946년 개발한 J47 엔진은 한국전쟁으로 수요가 폭증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제트엔진이다. 1950년대까지 3만5000대 이상이 생산됐다.
1960년대에는 미 공군이 세계 3대 수송기 중 하나인 C-5 갤럭시를 개발하면서 탱크와 같은 군수물자와 장비를 싣고 5000마일 거리를 800km/h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엔진이 필요해졌는데 이때 GE는 세계 최초의 고바이패스 터보팬 제트엔진인 TF39를 내놓았다. TF39는 4만 파운드의 추력을 발휘하지만 연료 소비를 25%나 줄일 수 있다. GE는 1974년 프랑스 사프란과 50대 50 합작투자로 CFM인터내셔널을 설립, 세계 항공기 엔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군과 연합군이 펼친 ‘사막의 폭풍’ 작전에 참가한 항공기의 절반 이상이 GE의 엔진을 사용했다.
2003년과 2004년 이라크전쟁에 참전한 항공기의 80% 이상에 GE는 엔진을 공급했다. GE는 일찍이 항공기 엔진 기술력을 기반으로 해양, 산업용 엔진시장에도 진출했다.
GE의 비행기 엔진인 GE CF6-6을 개조한 LM2600 엔진은 29개국 이상의 해군 함정에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500기 이상의 민간 항공기 엔진이 운용되고 있으며 1500기 이상의 GE 군용 엔진이 F-5 제공호, F-15K 슬램이글, KUH 수리온 헬기, 울산급 호위함, 이지스 구축함 등 한국군이 운용 중인 항공기 및 함정에 채택돼 운용 중이다. 공중전 치르며 비약적 발전
롤스로이스는 럭셔리카로 유명하지만 세계 2위 항공기 엔진의 명가이기도 하다. 1906년 맨체스터에서 전기기사 헨리 로이스와 런던의 귀족 출신 자동차 레이서 찰스 롤스의 사업 합병으로 설립됐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정부의 요구로 항공기 엔진사업에 뛰어들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의 Bf-109, Ju 87의 전투기와 구소련의 미그-15 전투기에 엔진 기술을 건네준 흑역사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창공의 야생마로 불리며 크게 활약한 P-51 머스탱 전투기는 엔진 교체로 역사적인 전투기로 거듭났다. 미국의 노스아메리칸이 영국에 판매하기 위해 제작한 P-51 머스탱 초기형은 앨리슨 엔진을 달고 있었다. 야생마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공중전에서 지지부진했으나 롤스로이스의 심장(멀린 엔진)을 장착하면서 훨훨 날기 시작했다.
지속비행거리가 다른 전투기들에 비해 매우 길었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상공에서 이뤄진 연합군의 폭격 임무에 투입돼 폭격기들을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공중전에서 연합군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P-51 머스탱은 장대한 항속력과 긴 체공시간을 바탕으로 독일군 기체를 발견하면 끝까지 추격해 독일군의 영국 침공계획인 ‘바다사자 작전’을 포기하게 만든 주인공이다. P&W는 1925년 설립된 미국 항공기 엔진 제작사다. 미국의 대표 전투기 F-16, F-35, F-22 등이 P&W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1942년 개발한 J57 엔진은 미국 공군의 F-100, F-101, B-52 등에 탑재됐다. 민간 부문에서도 보잉, 에어버스의 상용 항공기에 장착하는 엔진을 개발, 공급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추력을 갖고 있는 P&W의 F119 엔진은 F-22 랩터 스텔스 전투기에 탑재되는데 수명이 4000시간에 이른다. F-22 랩터에는 F119 엔진이 2개 탑재되는데 개당 출력이 11톤으로 후부 연소기(애프터버너)를 켜면 18톤에 이른다.
이 때문에 초음속 순항을 할 수 있고 무연 기술을 적용해 연기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적의 레이더를 피해 적기에 접근할 수 있다. F-22 랩터는 강력한 엔진과 뛰어난 성능에 ‘외계인을 고문해서 만든 전투기’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돋보기] 한화·두산, 150조 시장 도전장
전 세계 주요국은 앞다퉈 항공 엔진 국산화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항공 엔진 국산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항공기 엔진을 만들고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그동안 세계 3대 항공 엔진 제작사로부터 설계 도면을 받아 부품을 만들어 조립하는 면허 생산을 해왔다. 지난 45년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작한 항공 엔진이 올해 4월 1만 대를 돌파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생산하는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에 탑재되는 F414 엔진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생산한다. 미국 GE의 라이센스를 활용한 면허생산 모델이기 때문에 수출 시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해외업체의 면허 생산을 넘어 전투기급 독자 엔진 기술 확보에 나섰다. 2030년 중후반까지 정부와 함께 KF-21 엔진과 동급 수준인 1만5000파운드급 첨단 항공 엔진을 개발해 글로벌 항공 엔진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인공지능(AI), 유무인복합운용 등이 요구되는 6세대 전투기 엔진 개발도 추진할 계획이다. 앞서 2019년 주요 고객사로 GE와 P&W를 보유한 미국 항공엔진 부품 전문업체 '이닥(EDAC)'을 3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두산에너빌리티도 항공 엔진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항공기 엔진 제작, 추진체 보조기 부품 제작, 정비와 판매 및 서비스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하며 무인기 엔진 개발을 본격화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설계, 제작 기술, 소재 기술 등 노하우를 항공용 엔진 개발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현재 국방과학연구소가 주관하는 ‘1만lbf급(엔진 출력 단위) 무인기용 가스터빈 엔진 개발’ 사업에 참여 중이다.
항공 엔진은 수명연한인 45년 동안 꾸준히 추가 공급이 필요한 소모성 부품인 만큼 시장 성장성이 높다. 600만개에 달하는 항공기 부품을 정비하고 수리하는 MRO(유지·보수·정비) 시장도 확대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모더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항공 엔진 시장은 2024년 829억6000만 달러(약 115조원)에서 연평균 6.06% 성장해 2029년 1113억2000만 달러(약 154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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