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장 임기 전 토지매입·허가 받았어도 현금청산 대상
사업자들 “분양도 임대도 안 돼…억울하다”

서울시 한 재개발 구역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시 한 재개발 구역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분양도 임대도 되지 않는다. 하루하루 이자 걱정에 피가 마른다.”

서울 한 노후 주택가에 10여 가구 규모 다세대주택을 개발한 A 사업자의 말이다. 문제는 그가 다세대를 지은 곳이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재개발 사업지로 선정되면서 발생했다.

이 주택은 오세훈 서울시장 임기 전부터 토지를 매입해 인허가를 진행한 곳이다. 그런데 서울시가 신통기획 구역 내 ‘재개발 지분 쪼개기’를 방지하기 위해 설정한 권리산정기준일 이후에 준공되면서 현금청산 대상이 된 것이다.

1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1차~3차 공모를 통해 선정된 서울시 신통기획 재개발 사업지 내 소규모 주택 중 권리산정기준일 이후 준공돼 현금 청산 위기에 놓인 사례가 15곳 안팎이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라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구역 내에서 아파트 분양권을 받기 위해선 권리산정기준일 다음날까지 소유권 등기 또는 사용승인을 마쳐야 한다.

일명 ‘재개발 딱지’를 여러 개로 쪼개기 위해 1채였던 단독주택 등을 허물고 그 땅에 구분 소유권이 여러 개 생기는 다세대를 신축하는 등의 행위를 억제하기 위해서다. 이 날짜를 넘겨 지어진 다세대 소유자는 대표 조합원 1명을 제외하면 아파트 분양을 받을 수 없는 소위 ‘물딱지’를 가진 것이 된다.

또 도정법 77조는 정비구역 지정 고시가 있은 날, 또는 시도지사가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정비구역 지정 전에도 기본계획 공람 공고 이후 일정 날짜를 권리산정기준일로 정할 수 있다.

통상적인 재건축, 재개발은 정비구역 지정일을 권리산정기준일로 한다. 서울시는 재개발 투기 방지를 위해 1차 신통기획 선정지의 권리산정기준일을 신통기획 공모일인 2021년 9월 23일로 정했다. 2차부터는 2022년 1월 28일로 일원화했다. 정비구역 지정일보다 훨씬 앞선 것이다.

그런데 신통기획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소규모 주택 사업자 일부는 해당 사업을 전격 추진한 오세훈 서울시장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토지 매입 및 건축허가를 마쳤다. 이 같은 주택들은 신통기획 재개발 지분을 쪼개려는 목적에서 고의적으로 개발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건물을 짓고 사용승인을 받기까지 1~2년이 걸리는 동안 권리산정기준일을 넘긴 탓에 현금청산 대상이 된 것이다.

피해 사업자들은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주택을 분양 받으려는 수요자나, 실거주하려는 임차인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주택을 분양 받은 투자자들도 손해를 보긴 마찬가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재개발구역에서 현금청산 당하는 부동산은 시세대로 제 값을 받지 못하는 데다, 신통기획 사업지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므로 실거주하려는 사람만 매수할 수 있어 거래가 더 안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 다세대주택 사업자는 “언제 재개발되며 청산될지 모르는 집이라고 하니 들어오려는 임차인도 없다”면서 “돈을 들여 집을 지어놨는데 현금이 전혀 들어오지 않으니 미칠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들 사업자들은 신규 건축현장에 한해 기존의 사용승인이나 소유권 등기일이 아닌 건축허가일을 권리산정 기준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통기획의 모태가 된 도심복합사업의 경우에도 과도한 권리산정기준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공고일에서 법 개정일로 권리산정기준일을 변경한 바 있다. 최근에는 착공 현장에 대해서 조합설립일 전까지 소유권이전 등기를 마치면 소유자의 분양권을 인정하는 추세다.

서울시는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권리산정기준일의 취지는 투기를 막고 원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예외조항을 두게 되면 결국에는 이를 악용하는 사례로 인해 향후 재개발 사업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권리산정 기준을 변경하는 데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