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용감한 군인을 가진 나라 [김홍유의 산업의 窓]
미국은 1871년 6월 평양감사 박규수가 ‘제너럴셔먼호’를 불사른 보복 공격으로 전함 다섯 척을 한반도에 출동시키고 강화도 초지진에 해병대를 상륙시켰다. 바로 우리 역사에서 신미양요(辛未洋擾)라고 불린 사건이다. 이때 미 해병대는 부상당한 병사가 항복하기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병사도 있었고, 스스로 매장되려고 죽음을 가장한 병사도 있었다. “찔러 죽여 달라고 손짓하는 그들을 보고 우리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한 미군 장교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그토록 강인하고 용감한 전사들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라고 전하고 있다.

미군과 마주 선 조선군의 실체는 접근이 쉽지 않은 절벽 위 요새에서 수백 문의 대포로 무장한 1000여 명의 정예군이다. 하지만 선 자세로 1분에 1발 쏘는 조선의 화승총과 엎드린 자세로 1분에 10발 이상 쏠 수 있는 미국의 레밍턴 소총의 대결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조정에서 확인한 아군 전사자는 53명, 부상자는 24명이었다. 하지만 미군 측의 기록을 보면 조선군은 350명, 미군 3명 전사, 9명 부상이다. 한마디로 예견된 조선군의 대학살이었다.

신식무기로 산업화된 군대와 산업화되지 못한 군대가 마주칠 때 발생하는 익숙한 모습이다. 조선군은 임진왜란 때 사용한 화승총과 잘 맞지 않는 대포, 그 초여름에 아홉 겹 솜으로 두른 갑옷을 입고 전투에 임했다. 반면 미군은 레밍턴 소총에 정교한 대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선은 신미양요 이후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鎖國)을 더욱 강화하였다. 무엇이 세계에서 가장 용감한 군인을 가장 비참하게 만들었는가? 아무리 용감한 군인을 가진 나라라 하더라도 잘못된 역사의 앞에 노출될 경우 그들의 죽음은 헛된 것이다. 세계사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조선의 역사는 너무 끔찍했다. 급기야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억압과 착취 과정을 겪은 후 해방을 맞이하지만, 남북한 극심한 혼란으로 전쟁마저 발생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북한의 잔혹성을 잊은 순진한 남한 대학생들은 통일 회담을 주장하면서 판문점까지 행진하기로 하는 등 혼란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한 세대 만에 한강의 기적을 만들면서 인류의 변곡점을 헤쳐나온 우리의 근대사다. 변곡점을 마주한 역사의 흐름이 바람을 거슬러 올라갈 때는 파국을 맞이하지만, 순풍으로 나아갈 때는 혁신적 성과가 발생한다. 이제 우리는 뭔가 수상한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경제학자 로빈 핸슨은 세계경제의 규모가 이전보다 2배 증가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추산한 결과 홍적세(Pleistocene)의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22만4000년, 농경 사회에서는 909년이, 그리고 산업 사회에서는 6.3년이 걸렸다. 하지만 앞으로 발생할 새로운 인류의 변곡점에서는 “세계경제의 규모는 2주일마다 2배씩 늘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한다.

새로운 인류의 변곡점은 디지털 혁명이다. 1년 동안 책 200만 권, 영화 1만6000편, 블로그 포스트 300억 개, 신제품 40만 개가 쏟아진다. 세계 최대의 택시 회사인 우버에는 택시가 한 대도 없다. 세계 최대의 콘텐츠 회사인 페이스북은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다. 세계 최대 숙박업체인 에어비앤비는 호텔 하나도 없다.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인 실체는 바로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디지털 혁신이다. 우리는 르네상스를 연 유럽의 콧대를 꺾었으며, 그토록 우리에게 참담한 패배를 안겨준 일본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것이 우리의 반도체이며 디지털 제품이다. 다시 한번 당당하게 역사 앞에 마주 서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가장 용감한 군인을 가진 나라답게 용감하게 역사를 마주 대해야 한다. 또다시 우물쭈물 역사 앞에서 방향성을 잃어 과거로 회귀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감을 상실한 채 어두운 패배 의식 속에 몸을 숨기기보다는 혁신의 길목에서 당당하게 미래로 나아가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인다. 이것이 가장 용감한 군인을 가진 국민이 새롭게 시작되는 22대 국회에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 (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 전 한국취업진로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