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2년 8월 30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있는 삼성SDS 잠실캠퍼스를 찾아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2년 8월 30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있는 삼성SDS 잠실캠퍼스를 찾아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그룹 총수들이 값비싼 음식을 즐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비즈니스 미팅 때는 프라이빗룸이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 가지만 평상시에는 국밥과 육개장 등 평범한 음식을 더 자주 먹는다.

총수가 어디에서 무엇을 먹었는지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대외비지만 때로는 전략적으로 메뉴와 식당을 공개할 때도 있다. 총수들이 몰래 다닌 맛집은 어디인지, 음식에 얽힌 에피소드를 살펴봤다.

구내식당 찾고 육개장 대접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국내외 사업장을 방문할 때마다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2022년 삼성전자 기흥·화성캠퍼스를 시작으로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삼성SDS 본사, 멕시코 삼성전자 케레타로 가전공장 등을 연이어 방문했는데 직원들의 셀카 요청에 흔쾌히 응하며 구내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이 회장은 구내식당에서 직접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으며 라면, 떡만둣국과 비빔밥, 가마솥 황태곰탕 등 다양한 메뉴를 먹었다. 권위를 내려놓고 MZ세대 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행보로 호평을 받았다.

이 회장은 올해 1분기(1~3월) 총 7만1089건의 온라인 정보량을 기록해 국내 30대 그룹 총수 관심도 1위(데이터앤리서치)에 오르기도 했다.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이 회장은 지난해 말 대통령과 주요 그룹 총수들과 함께 방문한 부산의 한 어묵집에서 어묵 국물을 요청해서 먹는 소탈한 모습이 화제가 되며 어묵집 매출이 5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임직원들과 회식할 때 일부러 종로구 서린동 본사 주변의 식당을 찾는다. 2020년에는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종로 일대 상인들을 돕기 위해 사옥 주변 식당 6곳과 호프집 1곳에서 직원들과 회식했고, 내수 진작에 힘을 보태기 위해 일정 기간 매주 하루 구내식당을 닫아 직원들이 인근 식당을 이용하도록 했다.

2019년에는 직원 140여 명과 광화문 인근 국밥집, 을지로 한식주점에서 ‘행복토크 번개 모임’을 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2020년 12월 SK 유튜브 채널에서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보낸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회사 장기근속 직원 5명을 초대해 ‘수원식 육개장’을 직접 만들어 대접했다.

수원식 육개장은 건더기를 한데 넣고 끓이는 빨간 국물의 일반 육개장과 달리 맑은 육수에 고추기름으로 짜지 않게 양념한 파와 양지살을 따로 넣어 먹는다. 수원식 육개장은 최 회장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이 즐기던 음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9년 10월 28일 서울 광화문 '광화문국밥'에서 저녁 식사를 겸한 번개 행복 토크를 열고 구성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SK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9년 10월 28일 서울 광화문 '광화문국밥'에서 저녁 식사를 겸한 번개 행복 토크를 열고 구성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SK
된장찌개·곰탕·순댓국도 즐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호텔서울의 한식당 ‘무궁화’를 즐겨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한국과 일본 양국을 아우르는 경영 활동으로 한식과 일식을 자연스럽게 즐기게 됐다. 무궁화에서는 된장찌개 등 소박한 음식을 즐긴다고 한다.

2022년 한·미 정상회담으로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롯데호텔이 준비한 메뉴를 먹고 한국적인 맛과 특색을 담아냈다고 극찬한 바 있다. 이는 신 회장이 직접 고른 메뉴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식전 메뉴부터 식후 메뉴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접시를 비웠다는 후문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20년 1월 7일 롯데월드타워 내 구내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롯데지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20년 1월 7일 롯데월드타워 내 구내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롯데지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단골집을 찾아가는 내용의 그룹 유튜브 영상 속 박 회장의 모습. 사진=두산그룹 유튜브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단골집을 찾아가는 내용의 그룹 유튜브 영상 속 박 회장의 모습. 사진=두산그룹 유튜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소문난 한식 마니아다. 재계에 따르면 김승연 회장은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사옥 근처에 있는 명동 하동관의 오래된 단골이다. 직접 방문하면 수행원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곰탕을 포장해갈 때도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소탈한 성품을 반영하듯 평소 냉동삼겹살집, 국밥집, 칼국수집 등 오랜 역사를 지닌 저렴한 맛집을 즐겨 찾는다. 두산그룹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약수순대국의 오래된 단골로 확인됐다.



[돋보기] 창업자의 맛집
이병철 삼성 창업자와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자. 사진=한국경제신문
이병철 삼성 창업자와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자. 사진=한국경제신문
이병철·신격호 입맛 사로잡은 파스타

라칸티나는 1967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다. 삼성 본사가 을지로에 있을 때 이병철 창업자가 즐겨 찾았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그가 즐겼던 봉골레 파스타, 안심 스테이크 등으로 구성된 ‘삼성세트’가 히든 메뉴로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자와 일본 와세다대 선후배 사이로 친분이 두터웠던 만큼 라칸티나는 신격호 회장의 단골집이기도 했다.

신 회장의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 한계를 넘어 더 큰 내일로’(2021)에는 라칸티나에서 두 사람이 호텔 건립 문제로 자주 만나 오찬을 가진 일화가 소개돼 있다. 삼성은 당시 장충동에 신라호텔을 건립 중이었고 롯데는 라칸티나 맞은편에 롯데호텔을 짓고 있었다.

신라호텔과 롯데호텔 건설현장을 함께 둘러보고 라칸티나에서 봉골레 파스타와 안심 스테이크를 먹곤 했는데, 이 회장은 놀라울 정도의 소식가였다고 한다.

“내가 부자라고 하루에 다섯 끼, 여섯 끼 묵지도 않아요. 보시다시피 보통 사람보다 덜 묵지요. 치아가 좋지 않아 질긴 고기는 씹지도 못해요.” 이 회장의 영향 때문인지 신 회장은 훗날 자신도 소식주의자가 되어 밥 한 공기에 녹차를 붓고 고명으로 명란을 올린 오차즈케로 간단하게 먹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신 회장이 밥값을 내려고 하면 이 회장이 손사래를 쳤다는 일화도 있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과 수펙스 김치. 사진=한국경제신문·워커힐 호텔앤리조트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과 수펙스 김치. 사진=한국경제신문·워커힐 호텔앤리조트
‘수펙스 정신’ 깃든 최종현의 김치

SK그룹은 김치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해외 유학 시절 김치에 관한 논문을 쓸 정도로 김치 사랑이 남달랐다. 무슨 일이든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최고의 김치를 만들기 위해 1989년 워커힐호텔에 김치연구소를 만들었다.

한식 표준화를 위해 “계절에 상관없이 맛이 똑같은 최고의 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최 선대회장은 워커힐호텔 셰프들에게 재료 배합, 숙성 온도, 숙성 기간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라고 지시했고 1997년 ‘수펙스(SUPEX) 김치’가 탄생했다. 수펙스란 영어 단어 슈퍼와 엑셀런트(super+excellent)의 줄임말이자 SK그룹의 주요 경영 철학이다. 인간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뜻한다.

수펙스 김치는 다양한 국제 행사 만찬에 오르고 있다. 중요한 국제 행사 자리에서 김치를 먹고 난 후 치아에 고춧가루가 끼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고춧가루를 곱게 갈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최태원 회장은 귀빈에게 수펙스 김치를 종종 선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주영 현대 창업자. 사진=한국경제신문
정주영 현대 창업자. 사진=한국경제신문
정주영, 헬기 타고 막국수집으로

정주영 현대 창업자는 현대 계동사옥에서 전용 헬기를 타고 전국의 사업장을 돌았다. 강원도에 갈 때 참새방앗간처럼 반드시 들렀던 곳이 양양의 실로암메밀국수와 송정해변막국수집이다.

정주영 회장은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나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낸 만큼 음식을 가리지 않았고, 식사량이 기본 2인분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울산 현대중공업, 현대차 공장을 방문할 때면 금강휴게소에 들러 갈비탕을 먹었다고 한다. 정 회장의 식사량에 맞췄기 때문에 금강휴게소 갈비탕은 다른 곳보다 푸짐한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정 회장은 중요한 행사 때 임직원들과 갈비탕을 즐겨 먹었다. 갈비탕은 현대차그룹의 창업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음식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회장에 취임한 2021년 10월 14일에도 그룹 임직원들의 점심으로 왕갈비탕이 나왔다.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은 진주 중앙시장에 있는 제일식당의 16년 단골이었다. 1년에 한 번씩 들러 육회비빔밥과 막걸리를 먹고 갈 정도였다. 항상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작업복을 입고 와 주변에서 오래도록 구 선대회장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경남 진주는 그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