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표에서 물음표로 뒤바뀐 전기차 전망
곧 사라질 것이라던 하이브리드 인기 치솟으며 전기차 대체재로 각광
전문가들 "최소 4년은 하이브리드 강세 이어질 것"
‘느낌표’가 순식간에 ‘물음표’로 바뀐 모습이다. 주춤해진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는 많은 의문을 양산하고 있다. “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라는 확신에 찬 전망들은 최근 더 이상 찾기 어렵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전기차 시장의 성장은 둔화되고 있다. 여전히 비싼 가격, 인프라 부족 등이 전기차 확산에 발목을 잡으며 ‘전기차 회의론’이 불거지고 있다.
전기차를 대신해 친환경차 시장의 ‘총아’로 떠오른 건 하이브리드다. ‘가성비’와 ‘환경’을 모두 갖췄다는 재평가가 이뤄지며 인기가 치솟고 있다. 일부 차종의 하이브리드 모델은 품귀 현상까지 빚어질 정도다.
전기차가 친환경차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시기가 언제일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전기차의 봄’이 오기 전까지 당분간 ‘하이브리드 강세’는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르노코리아는 2013년 말 SM3 Z.E.란 모델을 선보였다. 말로만 듣던 전기차가 한국 시장에 처음 출시된 것. 이후 한동안 전기차 하면 SM3 Z.E.를 떠올리는 사람이 꽤 있었다. 르노가 한국 전기차 시장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르노코리아는 얼마 전 한국에서 전기차를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전기차 판매가 크게 줄어든 것이 원인이다. 조에, 트위지 등 그간 판매하던 전기차 모델을 모두 단종하는 대신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놓을 계획이다. 올 하반기에도 하이브리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오로라를 출시한다. 르노코리아 관계자는 “당분간 전기차 판매를 중단하고 2026년께 한국에서 전기차 판매를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도 전기차 확대와 관련한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새로운 전기차 모델보다 기존 주력 차종의 하이브리드 버전 출시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해외에서도 전기차 증산 방안 계획을 수정했다. 현대차는 전기차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판단해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지을 계획이었다. 최근 이 계획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조지아 공장에서) 전기차 외에도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를 함께 생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빠르게 늘고 있는 하이브리드 수요를 따라잡기 위한 대책으로 보인다.
전기차 인기가 주춤해지며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그 틈을 파고 들며 주가를 올리고 있다. 하이브리드는 갑작스럽게 수요가 급증해 품귀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글로벌 시장의 전년 동기 대비 판매 증가율을 보면 하이브리드가 16%로 전기차(14%)를 앞질렀다.
한국의 올해 4월 자동차 수출액이 68억 달러(9조2548억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도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 하이브리드 수요가 급증한 덕분이었다. 하이브리드 수출액은 전년 대비 55% 증가한 10억6000만 달러(1조4426억원)을 기록하며 자동차 수출 증대를 견인했다.
전기차가 친환경차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로 가는 중간 지점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확고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곧 전기차 시대 온다고 했는데…이 같은 전기차의 부진은 그간 쏟아졌던 전망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2022년 전기차의 미래는 장밋빛 일색이었다. 하루가 멀게 주행가능 거리가 늘고 충전속도가 줄어드는 등 빠르게 진화하는 전기차 성능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한국에서는 전기차 구매 열풍이 불었고 연간 판매 대수가 처음 10만 대를 돌파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전기차 시대’가 오고 있다는 보고서들이 시장에 쏟아졌다. 정부도 이에 맞춰 내연기관차 퇴출 계획을 내놓기까지 했다.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현대차, 르노코리아뿐 아니라 수많은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도 전기차로의 전환 계획을 미루기 시작했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도 내연기관차 퇴출 시기를 늦추는 상황이다.
너무 빠른 속도로 전기차가 늘어난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족한 충전소, 비싼 수리비 등 각종 논란들이 일며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급격히 나빠졌다.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주를 이루며 ‘전기차 시대가 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회의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전망도 좋지 않다. 올해 들어 국내외 브랜드 할 것 없이 더욱 개선된 성능의 전기차를 가격까지 낮춰가며 선보이고 있지만 상황은 더 나빠졌다. 올해 1월에서 4월까지 전기차 판매량은 약 3만 대. 이 추세라면 연간 전기차 판매량은 다시 10만 대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전기차의 부진을 틈타 급부상한 모델은 전기차의 대체재로 각광받고 있는 하이브리드다. 지난해 연료별 신차등록대수를 봐도 가장 판매가 급증한 모델은 하이브리드였다.
전기차와 디젤 판매량이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전년 대비 판매량이 무려 10만 대나 증가했다. ‘하이브리드의 귀환’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하이브리드 전성시대 4년 이상 간다수년 전만 해도 하이브리드는 곧 도로 위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잠시 동안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가교’ 역할을 하다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가성비 측면에서는 디젤차에 밀리고 친환경 요소에서는 전기차에 치인 것이다. 이렇다 보니 2019년까지는 LPG보다 판매량이 낮았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이런 하이브리드에 대한 재평가가 이어졌다. 가성비와 친환경을 동시에 갖춘 모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신차로 하이브리드를 구매하는 이들이 급증했다.
판매량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올해 4월까지 내수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차량은 기아 쏘렌토였다. 쏘렌토는 1~4월까지 누적 등록 대수 3만6942대를 기록하며 한국 시장에서 베스트 셀링카에 올랐다. 하이브리드 모델이 선전한 덕분이었다. 쏘렌토 전체 판매량의 절반이 넘는 약 2만 대가 하이브리드 모델이었다.
쏘렌토 외에도 현대차의 그랜저, 기아 카니발 등도 전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하이브리드가 차지하고 있다.
한 딜러는 “일부 차종의 경우 디젤이나 가솔린 모델은 금방 받을 수 있지만 하이브리드는 1년 가까이 기다려야 할 정도로 품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하이브리드의 인기 요인은 편의성과 저렴한 유지비용을 꼽을 수 있다.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하이브리드는 연비가 월등히 높다. 전기차 못지않은 효율성을 자랑한다. 현대차 아반떼만 놓고 보더라도 가솔린 모델과 하이브리드 모델의 연비 차이는 최대 10km/L가량이 난다. 그만큼 유지비용이 덜 들어간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에는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하이브리드를 찾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특히 중동 정세 불안 등으로 고유가 전망이 연이어 나오면서 요즘 하이브리드를 더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향후에도 하이브리드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둘째는 편리한 친환경차라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환경을 생각해 전기차를 타지만 일일이 충전소를 찾아다니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 하이브리드는 휘발유를 넣으면 되기 때문에 일반 주유소를 찾아 편히 연료를 채울 수 있다.
하이브리드의 질주와 전기차의 부진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꼽히는 중국과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022년만 해도 두 국가의 전기차 시장 성장률은 모두 60%가 넘었다. 지난해에는 성장률이 반토막이 났다.
전기차를 바라보는 전망이 어떤지는 주식시장에서도 나타난다. 전기차의 아이콘인 테슬라의 경우 실적과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하이브리드에 집중했던 도요타의 실적과 주가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자연히 전기차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국내외 배터리 업체들의 실적과 주가도 힘을 못 쓰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아직 전기차 인프라 등을 고려했을 때 최소 4년 이상은 흘러야 현재 운전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며 “가솔린, 디젤 등을 선택하는 소비자들도 있겠지만 전기차의 좋은 대체재라고 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로 앞으로 더 많은 수요가 쏠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미래에 전기차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이견을 다는 이들은 없다. 김 교수도 “(전기차가 확산되는) 시기가 늦어질 뿐이지 반드시 전기차 시대는 온다”고 강조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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