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와 도요타의 연초 이후(5월 8일 기준) 주가 상승률이다. 올해 상반기 도요타는 ‘전기차 열등생’이란 오명을 비웃듯 전기차 시장의 선두주자 테슬라를 압도했다. 1년 전만 해도 하이브리드에 집착하다 전기차 시장에서 뒤처진 열등생이란 평가를 받은 도요타였다.
지금은 다르다. 전기차 시대를 열며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테슬라는 성장세가 둔화되며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반면 전통의 내연기관 자동차 제조사들이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이 중 도요타는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4년 연속 업계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는 “도요타가 맞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물론 엔저 현상의 수혜가 포함된 실적임을 감안해도 1분기 세계자동차 시장의 성장을 이끈 것은 도요타가 강점이 있는 하이브리드차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는 테슬라와 전 세계 탈엔진 바람에도 수소연료차를 고집하는 도요타,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도요다 아키오 회장의 자신감“아무리 전기차 전환이 진행되더라도 시장점유율의 30%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70%는 하이브리드나 수소전기차, 수소엔진차 등이 차지할 것이다.”
지난 1월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회장은 한 비즈니스 행사에 참석해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엔진차는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의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에도 전기차 시대가 언젠가는 도래할 것이란 시장의 프레임을 깨는 발언이었다. 앞서 블룸버그는 2040년엔 전기차 점유율이 신차의 75%를 차지하고 도로 위 승용차의 44%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자동차업계 리더의 자신감은 이 회사의 포트폴리오에서 나왔다. 전 세계 하이브리드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도요타는 최근 하이브리드차 판매 호조에 힘입어 4년 연속 세계 신차 판매량 1위를 지켰다. 5월 8일 이 회사가 발표한 2023 사업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실적은 사상 최대였다. 영업이익은 5조3529억 엔(약 47조883억원)으로 전년도보다 96.4% 늘었다. 5조 엔대 영업이익은 일본 기업으로도 처음 달성한 실적이다. 순이익도 매출도 각각 전년보다 101.7%, 21.4% 급증하며 역대 최고를 경신했다.
호실적의 배경에는 하이브리드와 엔저가 있다. 엔저에 따른 연간 실적 상승 효과과 더불어 도요타는 최근 전기차 시장이 충전 인프라 부족과 비싼 가격 등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수요 증가세가 둔화하는 ‘캐즘’의 상황이 겹치며 어부지리의 기회를 얻었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 중 풀하이브리드 기술을 갖춘 곳은 도요타(일본), 혼다(일본), 현대차·기아(한국), 르노-닛산(프랑스·일본), 포드(미국) 등 5개사가 꼽힌다. 이 중 왕좌는 도요타다. 2023년 기준으로 세계 하이브리드 차량 시장에서 60%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도요타는 지난 1분기 글로벌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차를 99만 대나 팔았다. 혼다와 현대차·기아도 풀하이브리드 기술을 앞세워 전기차 캐즘이 낳은 빈틈을 공략, 호실적을 자랑했지만 ‘왕좌’ 도요타의 전략은 좀 더 강성했다.
다른 회사들이 하이브리드차에 발을 걸치고 전기차로 가는 미래를 선택했다면 도요타는 전기차 대신에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차, 수소차 등에 집중했다. 전기차로 전환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시점에도 하이브리드와 수소차만 고집해 ‘전기차 외딴섬’이란 비판도 받았다. 작년 도요타의 전기차 판매량은 약 2만4500대로 테슬라(약 131만 대)와 폭스바겐(약 57만 대), 현대차그룹(약 37만 대) 등 경쟁자에 비해 초라한 수준이다.
그러나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수년간 전기차 전환에 뒤처져 있다는 일각의 비판을 반박했다. 그는 하이브리드와 수소차 등 다른 가능성에 지속 투자하며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종국엔 기업과 고객, 환경에 모두 올바른 방법이었음이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자동차 업계 종사자들 중 ‘조용한 다수’는 전기차를 유일한 선택지로 갖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중략) 전기차가 정답인지는 불명확하다.”(2022년 12월)
“세상은 마침내 (전기차의) 실상을 깨닫고 있다.”(2023년 10월)
도요다 회장의 발언은 사실상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는 테슬라를 향한 공세였다. 지난 2020년 11월 7일 도요다 회장은 “테슬라는 자신들의 레시피가 미래의 표준일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도요타가 가진 것은 진정한 주방과 요리사”라며 “주가에 있어서 우리는 지고 있다. 하지만 제품에 관해서는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풀 메뉴가 있다”고 말했다. 이때만 해도 양사의 관계는 뛰는 도요타, 나는 테슬라였다. 테슬라의 전 세계 판매량은 도요타 판매량의 3.4%에 불과했지만 2020년 당시 양사의 시가총액은 2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뉴욕거래소 기준으로 테슬라의 시총은 한화 약 446조4714억원으로 도요타의 218조2686억원을 압도했다. 도요타 주가가 1450~2100엔대에서 바닥을 기고 있을 때 테슬라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향해 달렸다.
도요다 회장은 이를 갈았다. 주가는 지고 있지만 가솔린 및 하이브리드 등 ‘풀 메뉴’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도요다 회장의 절치부심은 실적과 주가에 반영됐다. 현재 양사의 시총은 크게 좁혀진 상황이다. 5월 8일 기준으로 테슬라가 약 773조원, 도요타는 512조원이다. 여전히 테슬라가 우위에 있지만 2배 이상의 압도적 차를 4년 만에 큰 폭으로 좁혔다. 연초 이후 도요타 주가는 27.9% 상승한 반면 테슬라 주가 하락률은 28%를 웃돌았기 때문이다.
도요다 회장은 올초 “전 세계에 전기 없이 사는 인구가 10억 명에 달한다”며 “값비싼 자동차를 만들어 이들의 선택권과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건 답이 아니다”라고 테슬라를 향한 일격을 날렸다. 모건스탠리의 애널리스트 애덤 조나스도 (전기차 열등생이란 비판과 관련) “도요타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전기차 업계 공멸의 길로?반면 ‘천슬라’(2021년 주가 1000달러 돌파, 이후 액면분할)로 이름을 떨치던 테슬라가 고꾸라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12월 말이다. 2023년 한 해에만 약 120%가량 폭등했던 테슬라는 작년 12월 28일 장중 35만2198원을 기록한 뒤 급격한 하락세에 빠져들었다.
전기차 시장의 캐즘에 더해 2024년 테슬라가 최대 경쟁사인 중국의 비야디(BYD)에 막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란 분석이 주가를 끌어내렸다.
비야디는 지난해 4분기 테슬라를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을 기회로 올 들어 더욱 공격적이다. 소형 전기차 값을 1280만원(9700달러)까지 낮추며 출혈경쟁을 불사하고 있다. 1만 달러 미만의 전기차가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급량도 무자비하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주요 항구는 중국산 전기차 재고가 쌓이며 ‘주차장’이 되고 있다고 표현했다. 중국의 저가공습에 테슬라의 성장은 주춤했다. 주가 하락에 기름을 부은 건 1월 25일 테슬라의 4분기 실적 발표였다. 지난 3분기에 이어 매출과 주당순이익(EPS) 모두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 매출은 1년 전보다 3% 증가하는 데 그쳤다. 폭주 기관차 같았던 테슬라가 3년여 만에 마주한 가장 낮은 매출 증가율이다. 이마저도 자동차 부문 매출로 한정하면 성장률은 1%에 불과했다.
테슬라는 올 한 해 전망에 대해 “2024년 자동차 판매 성장률은 2023년에 달성한 성장률보다 눈에 띄게 낮아질 수 있다”고 예고했다. 테슬라 측은 “내년 하반기 생산 예정인 보급형 신차 개발에 집중하면서 올해 수익성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으나 원인은 명확했다. 전기차 생태계를 집어삼킨 ‘황소개구리’ 중국과의 치킨게임이다.
글로벌 투자사인 모닝스타 리서치의 세스 골드스틴 애널리스트는 “테슬라가 전년 대비 50% 또는 30∼40% 성장하는 시기는 2024년에는 없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현지 매체에서는 ‘M7’으로 불리는 뉴욕증시의 대표적 기술주 목록에서 테슬라가 빠져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일각에선 테슬라를 넘어서 전기차 업체가 공멸 위기를 맞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미국의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초 “테슬라가 계속해서 가격 인하 정책을 쓸 경우 전기차 업체는 공멸할 것”이라며 “결국 전기차 업체가 피바다가 될 것”이란 경고를 던졌다.
영국 유력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또한 “테슬라가 되고자 하는 경쟁 전기차 스타트업 업체들의 처지는 더욱 딱하다”며 제2의 테슬라로 꼽힌 루시드모터스와 리비안, 중국의 리오토, 니오, 엑스펑 등 ‘빅5’ 전기차 스타트업들의 시가총액 총합이 2021년 말 기준 약 4000억 달러에서 690억 달러로 급락했다고 꼬집었다.
천하의 애플도 전기차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지난 2월 블룸버그통신은 애플카 개발 취소 소식과 함께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직원들이 AI 업무에 재배치되거나 구조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회사가 10년간 공들인 ‘애플카 프로젝트’의 중단은 현재 전기차 업계의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3라운드, 생존 전략 이제 다음 라운드는 캐즘의 시기 그 이후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시장 둔화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회의론이 확산하면서 당분간 하이브리드차의 인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내연기관 차량이 모두 공존하는 이 과도기가 자동차 업체들엔 시간을 벌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라는 점을 강조한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전기차 시대가 올지에 대한 의심이 피어나고 있지만 전기차 전환은 미뤄졌을 뿐 방향은 변함없다”며 “하이브리드가 벌어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기차 시대의 상위 업체 순위가 뒤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전략은 각기 다르다. 테슬라는 중국의 출혈경쟁으로 막힌 전기차보다 자율주행이란 더 큰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따지면 애플의 전략이다. ‘세계의 굴뚝’ 중국과 손을 잡았다. 중국은 테슬라의 두뇌(AI, 데이터)가 필요하고 테슬라는 중국의 압도적인 클러스터(산업집적단지)를 필요로 한다.
지난 4월 28일엔 일론 머스크 CEO가 중국을 깜짝 방문해 리창 국무원 총리를 만나며 하루 새 15.31%(전일 대비) 반등에 성공했다. 이번 방중에서 테슬라 상하이 기가팩토리에서 생산된 차종이 중국 당국이 요구하는 ‘자동차 데이터 처리 4항 안전 요구 검사 상황 통지(제1차)’ 검사를 모두 통과한 건데, 테슬라가 중국 시장에 적용하지 못한 완전자율주행 시스템의 도입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주주들의 믿음도 굳건하다. 국내에서 ‘돈나무 언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먼트 CEO는 “지금은 테슬라를 포기할 시기가 아니다”며 “향후 5년 안에 20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강세론을 내놓는다. 서학개미들의 사랑도 여전하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5월 7일 기준 국내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주식 1위는 여전히 테슬라로 107억 달러에 달한다.
물론 여기엔 전기차 산업에 대한 장밋빛 전망보다는 자율주행 시장을 주도할 테슬라에 대한 믿음이 따른다.
임해인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제 시장의 관심사는 전기차 그 자체에서 자율주행과 로보택시 시스템으로 옮겨갔다”며 “새로운 저가형 모델 출시는 소프트웨어가 적용될 수 있는 기반을 넓히는 요소로 작용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테슬라는 전기차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진정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머스크도 오는 8월 8일 테슬라의 로보택시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테슬라 주가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도요타의 전략은 완전히 다르다. 전기차 시장의 후발주자이자 하이브리드의 선두주자인 도요타는 자동차 시장의 미래가 여전히 엔진에 있다고 믿는다.
도요다 회장은 올해 2월 “엔진은 여전히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실질적인 수단으로서 역할하고 있으며 경영진은 나의 제안에 동의했고 도요타 내에서 엔진 개발을 새롭게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며 앞으로도 엔진을 만들 것을 강조했다. 그는 3대 7을 주장한다. 전기차 점유율이 30%, 나머지 70%가 하이브리드·수소전지차·내연기관차다.
이를 위해 도요타는 사실상 모든 종류의 친환경차를 계속 만들고 판매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기존 가솔린엔진과 영원히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수소를 연료로 하는 새로운 수소엔진차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전 세계 탈엔진 방향과는 완전히 상충되는 전략이다.
테슬라 대 도요타, 3라운드 승전보를 울릴 자는 누구인가.
고태봉 리서치센터장은 “누가 옳고 그르냐보단 친환경이라는 거대한 어젠다가 불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각 국가와 자동차 업체들이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할 건지에 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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