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한 아파트 공사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소재 한 아파트 공사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잠잠한 듯했던 아파트 하자 문제가 다시 부동산 뉴스를 들썩이게 했다. 전남 무안군의 한 신도시 아파트 사전점검에서 대규모 하자가 발견된 것이다. 이 사실은 이미 부동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하던 차였다. 해당 아파트를 짓던 시공사는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문을 내기도 했다.

결국 국토교통부가 나섰다. 국토부는 지자체 및 국토관리청, 국토안전관리원 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5월 22일에서 30일까지 6개월 이내 입주를 앞둔 신축 아파트에 대해 특별점검을 실시했다. 대상은 171개 단지로 최근 부실시공 사례가 발견됐거나 지난 5년간 하자판정건수가 많은 20개 건설사, 벌점을 많이 받은 상위 20개 건설사가 시공하는 현장이다.

이번 특별점검 대상에는 유명 브랜드 아파트로 알려진 대형건설사 현장이 다수 포함됐을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가 지난해부터 발표한 하자판정건수 상위권 건설사에 내로라하는 회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 1월부터 2023년 8월까지 누적 건수가 많은 건설사 20위권에는 일명 ‘1군 건설사’ 4곳이 있었는데 2024년 2월 누적 집계로는 5곳으로 늘었다.

건설 업계에선 통상 이 같은 유명 건설사 아파트에 하자가 적다고 알려져 있었다. 브랜드와 본사 이미지 문제로 현장관리를 꼼꼼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철근 등 자재를 속이는 사례도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에는 1군 건설사 사업지 중 ‘문제의 현장’이 늘었다. 민심이 악화하는 가운데 의아해하는 여론도 존재한다. 그동안 하자를 내지 않는다고 알려졌던 건설사들도 하자 논쟁에 휘말리게 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강남권 등 서울 핵심지역 재건축 단지에서도 하자가 대거 발견됐다.

이 같은 상황은 불과 몇 년 사이 발생했다. 최근 3~4년은 주택시장에 역사적인 호황이 지속되다가 하락기를 맞는 한편 코로나19 확산과 자재비 상승 등 유례없는 변수가 중첩된 시기였다. 주택사업을 확대하던 대형건설사들이 이처럼 예측하지 못한 상황 앞에서 현장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급증한 현장, 부족한 인력
지난 상승기에는 전국이 그야말로 ‘구석구석’ 올랐다. 아파트뿐 아니라 오피스텔, 레지던스(생활형 숙박시설)에도 수요가 몰렸다. 수도권 일부 레지던스 분양권은 수억원 웃돈이 붙어 거래되기도 했다.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나는 한편 정부의 규제 영향으로 투자자들이 비규제 지역 또는 아파트 대체 상품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대형 건설사들도 그동안 관심이 없던 지방 프로젝트나 오피스, 레지던스 시공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 같은 공사는 플랜트, 교량 공사 등에 비해 시공 난이도가 낮고 공사 위험이 적은데 비해 일단 분양하면 ‘완판(분양완료)’되니 실적에 큰 보탬이 됐다. 덕분에 이들 건설사는 사상 최대 수주액,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일찍이 ‘자이’ 브랜드를 특화해 주택사업 강화에 나섰던 GS건설을 필두로 현대건설, 포스코이앤씨(옛 포스코건설) 등 기존에 주택사업 비중이 낮았던 기업들도 주택 수주를 늘리기 시작했다. 자체 주택 브랜드 ‘힐스테이트’에 프리미엄 브랜드 ‘디에이치’를 더한 현대건설은 2022년 상반기에만 7조원 규모에 육박한 재개발, 재건축 사업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지난 상승기에는 대형 건설사들이 그동안 안 하던 지방 재개발, 재건축까지 다 싹쓸이했다”며 “그래서 중견업체들이 더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급증한 현장만큼 인력이 부족했다. 아파트 공정은 대부분 하도급으로 진행되며 본사에서 나온 현장소장 등 관리직이 이 하도급 업체의 시공 품질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그런데 본사와 하도급 양쪽에서 다 문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족한 본사 직원을 급하게 경력직으로 충원하면서 기존 인력들이 받았던 현장관리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는 것이다.

하도급 문제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한국인 기술자가 부족한 가운에 한국인과 대화도 통하고 숙련된 중국동포 기술자들이 비자 연장을 위해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며 “그 자리를 다른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체해서 부실공사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도급계약을 통해 공사비가 정해진 상태에서 자재비와 인건비가 급격히 올랐다. 이에 건설사는 물론 최저입찰을 통해 공사에 투입된 하청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나마 현장인력이 출퇴근할 수 있는 수도권 대도시는 상황이 낫지만 근로자들 숙소가 필요한 지방 현장은 더 열악해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22년 하반기 금리인상이 본격화하고 부동산 경기가 식었다. 개발사업의 주체인 시행사부터 공사계약을 맺기 위해 책임준공확약 및 신용 보강을 제공한 시공사들이 차례로 위기를 겪고 있다. ‘분양만 하면 팔리던’ 시기에 시행사들이 돈을 빌려 고가에 토지를 매입했는데 막상 분양할 시기가 되니 미분양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자금난에 처한 하도급은 부실공사를 하게 되고 위기에 처한 본사는 현장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다수의 현장을 한꺼번에 운영하며 매출을 올리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것이 1군 건설사의 강점이었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전국 곳곳에 현장이 많은 것 자체가 이들 회사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도처에 깔린 ‘갑’, 품질에 악영향
‘시행’이 시공 품질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당시 시행을 맡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책임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해당 아파트의 설계 및 감리를 LH 전직 직원이 근무하는 사무소에 맡겼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건설업계에서 LH는 주택 공사비를 낮게 책정하고 구식 설계를 강요하는 등 ‘갑질’이 심한 것으로 알려져 기피대상이다.

최근에는 우후죽순 생긴 부동산 시행사와 재개발·재건축 조합은 물론 신탁사 문제까지 거론된다. 부동산 개발 시행이나 조합 방식으로 지어진 단지에서 발생하는 ‘자재 바꿔치기’나 ‘부실 업체 선정’ 등의 문제가 주로 시행사와 조합장 지명 업체 선정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요즘에는 강남권 아파트를 비롯해 고급 마감재를 쓴다고 홍보한 단지에서 이 같은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높아진 물가만큼 공사비 증액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마감재 수준을 낮춰 시공하게 된다. 토지 매입 단계에서부터 고금리 브리지론을 일으켜 사업을 시작하는 시행사 입장에선 공사비를 올려주기가 어렵다. 공사비 등 문제로 시행사와 마찰을 빚은 몇몇 대형 건설사가 다시 해당 시행사 현장 시공을 맡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업비 대부분을 부채로 조달하는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 구조상 공사기한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공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그만큼 수분양자들을 빨리 입주시켜 잔금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급하게 공사를 하게 되면 부실공사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검단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나 광주 재개발 아파트 붕괴사고는 철근 배치 후 부은 콘크리트가 채 굳기 전 상부에 토사를 쌓거나 추가로 층수를 올리는 등의 작업을 하다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이 지어지면 받아야 하는 준공승인 역시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아파트 품질과 관련 없이 설계도면대로 건물이 완성됐다면 지자체로부터 준공승인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매번 신축 아파트에 중대하자가 발생할 때마다 준공승인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지난해 12월 국토부는 층간소음 최저기준인 49데시벨(dB) 이하를 통과하지 못한 단지에 대해 준공을 불허하겠다는 대책을 내기도 했다. 현행 건축법에 따르면 준공이 아닌 사용승인만 받아도 입주가 가능하다. 다만 준공승인을 받아야 아파트 소유권 등기가 가능하다. 현재 무안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은 무안군에 “준공승인을 내선 안 된다”고 요구하고 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