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는 프랜차이즈 커피의 격전지다. 우리에게 익숙한 스타벅스의 1호점은 시애틀에, 2019년 성수점을 시작으로 국내에 상륙한 블루보틀은 캘리포니아에 처음 문을 열었다. 블루보틀과 함께 미국 ‘3대 스페셜티 커피’로 묶이는 스텀프타운(Stumptown)과 피츠커피(Peet’s Coffee)도 캘리포니아에서 탄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매장 인테리어에 공을 들이고 높은 품질의 프리미엄 커피를 팔아 여유로운 커피 미식 문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정반대 전략을 취해 미국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 브랜드가 급성장하고 있다. 1992년 미 서부 오리건주에서 네덜란드계 미국인 형제가 창업해 2021년 9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더치브로스(Dutch Bros)’다.
특징을 꼽자면 저렴한 가격과 당도 높은 커스텀 메뉴, 쾌활한 직원들로 구성된 드라이브스루 커피 체인점이다. 국내 메가커피, 빽다방 등 저가브랜드와 유사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커피시장 내 경쟁이 치열한 미국에서 16~25세의 젊은층에게 인기를 얻으며 빠른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데는 특별한 비결과 전략이 숨어 있다.
- 성장 흐름은…상장 3년 만에 첫 흑자전환 더치브로스의 공동 창업자인 데인 보스마(Dane Boersma), 트래비스 보스마(Travis Boersma) 형제는 가업을 이어 낙농업에 종사하다 커피 사업에 뛰어들었다. 오리건주의 작은 도시인 그랜트패스에서 젖소 목장을 운영하다 1992년 정부의 규제로 위기에 놓인 것이다. 새로운 생계 수단을 찾는 과정에서 21세였던 동생 트래비스가 형인 데인에게 “달콤한 커피를 팔자”며 바닐라라테를 사주며 커피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이 더치브로스의 시작이다.
더치브로스는 창업 6개월 만에 하루 200달러(약 25만원) 이상 매출을 냈다. 그 이후로는 승승장구다. 2010년 이후 연평균 20% 이상 매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2021년 9월 상장 이후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238억 달러, 2020년 327억 달러, 2021년 497억 달러, 2022년 739억 달러로 매년 30~50%씩 매출이 증가했다. 작년에는 총 매출이 966억 달러까지 올랐고 상장 후 최초로 영업이익 4622만 달러를 기록하며 흑자를 냈다. 올해 1분기에도 이러한 흐름을 이어가며 2557만 달러 영업이익을 냈다.
흑자전환에는 매장 수 확대가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매년 평균 20개씩 늘던 매장은 최근 매년 52개씩 증가하고 있다. 2017년까지 200여 개에 머물던 매장 수가 2020년 441개, 2021년 538개, 2022년 671개로 늘었고 작년 한 해 동안에는 160개가 증가해 총 831개가 됐다. 또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텍사스 등에 100개 이상 매장을 여는 ‘서부 집중 전략’을 펼쳐왔으나 최근에는 미주리, 켄터키, 앨라배마 등 동남부 도시로도 뻗어가고 있다.
- 오리건주의 특징 때문에 탄생한 ‘드라이브스루’1994년 문을 연 더치브로스의 첫 매장은 드라이브스루 형태다. 트래비스 CEO는 2021년 뉴욕의 투자서비스 기업과의 인터뷰에서 “그때는 잘 몰랐지만 드라이브스루 매장을 선택한 것은 우리가 공략할 틈새이자 운명이었다”며 “놀고 싶은 사람들은 데크에서 쉬어가고 바쁜 사람들은 드라이브스루를 이용하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이들이 사업을 시작한 오리건주는 땅이 넓고 인구가 적어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 대신 자동차로 이동한다. 땅이 넓고 인구밀도가 낮은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매장을 늘린 것도 이 때문이다.
2023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90% 넘는 매장이 드라이브스루 형태이며 본사에서 매장과 부동산 구매 전략을 짤 때도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에 입각한다고 전했다. 매장은 14평에서 33평 사이인데 가장 넓은 매장에도 좌석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풍차 로고가 붙은 메인 숍 외에도 주문을 받고 음료를 제조하는 구역을 2개 이상 뒀다는 것도 타 드라이브스루 매장들과 다른 점이다. 고객이 드라이브스루로 진입하면 직원이 태블릿PC를 들고 다가와 메뉴에 대해 설명하고 주문을 받은 뒤 차량 동선에 맞춰 음료를 제공하고 ‘이스케이프 레인(Escape lane)’을 통해 편리하게 매장을 빠져나가는 구조다.
비즈니스 모델 덕에 더치브로스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도 피해갔다. 2021년 사업보고서에서 “드라이브스루 매장 모델 덕분에 동종 업계의 다른 기업이나 소비자들만큼 실질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경험하지 않았다”며 “전 세계적인 배송 지연으로 인한 물품 배송 문제를 제외하고 오히려 소비자 수요는 증가했다”고 했다.
- ‘사람’ 기반 성장…고객 사랑이 최우선 보스마 형제는 창업 초기 시내 한복판에 손수레를 끌고 커피를 판매하며 고객과의 관계 형성에 큰 의미를 두고 사업을 확장해갔다. ‘긍정적이고 사랑하는 삶’을 모토로 비틀스, 레드제플린의 신나는 음악을 틀고 손님들과 수다를 떨며 커피를 판 것이다.
트래비스 CEO는 영국의 광고 대행사 BBH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손님들이 들어올 때마다 레드카펫을 깔았다”며 “고객 충성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러한 초창기의 기억이 제게 가장 소중한 추억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모토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브로이스타(bro-istas·브로와 바리스타의 합성어)’라 불리는 매장 직원들의 모토는 ‘단골손님의 이름과 평소 주문을 기억한다’, ‘반려동물을 위한 음료를 준비한다’, ‘음료를 건넬 때 미소와 안부인사, 하이파이브를 함께한다’이다.
지난 2016년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직원들이 차에 탄 고객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사진이 제보돼 수십만 개의 ‘좋아요’를 받으며 화제가 됐다. 당시 직원은 단골 고객이 전날 남편과 사별한 것을 알고 동료 직원들과 나서 돈을 잡고 기도하며 힘을 보탠 것인데, 고객과의 친밀한 관계를 중요시하는 회사와 직원들의 태도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반응을 이끌었다. 브로이스타들과 매장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미리 검색을 통해 알아가야 주문 가능한 ‘시크릿 메뉴’ 또한 고객과 상호작용하는 마케팅 수단으로 꼽힌다. 더치브로스는 젊은층을 공략하기 위해 원두 본연의 커피맛보다는 다양하게 커스텀이 가능한 당도 높고 시원한 음료를 주력으로 한다. 다양한 과일주스, 탄산음료, 시럽 등을 활용해 개발한 80개 넘는 메뉴가 SNS에 공유되며 입소문 마케팅 효과를 얻었다.
임나영 인턴기자 ny92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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