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00억원.
여의도를 대표하는 5성급 콘래드호텔이 기록한 최근 매각가다. 콘래드호텔은 원래 캐나다 브룩필드자산운용이 소유권을 갖고 있었다. 브룩필드자산운용은 콘래드 서울을 포함한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전체를 소유하고 있는데 최근 콘래드호텔만 분리해 매각을 추진했다. 다수의 입찰자가 경쟁한 끝에 투자운용사인 ARA코리아자산운용이 4000억원대 초반이라는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콘래드호텔은 올해 상반기 내로 거래가 종결될 전망이다.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소유였던 서울 명동에 위치한 4성급 티마크그랜드호텔(이하 티마크호텔)도 최근 손바뀜이 일어났다. 부동산전문자산운용사인 그래비티자산운용은 올해 3월 약 2000억원을 들여 이 호텔을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새 주인을 맞은 티마크호텔은 재단장 준비가 한창이다. 글로벌 호텔 체인 IHG호텔앤리조트 와 위탁경영을 체결하고 오는 9월 호텔 이름을 티마크그랜드호텔에서 ‘보코서울명동’으로 바꾸고 다시 손님을 맞는다.
최근 국내 호텔 거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매물이 등장했다 하면 바로 거래가 이뤄진다는 말이 나올 만큼 호텔에 눈독을 들이는 투자자가 많다. 수치로도 나타난다. 글로벌 종합 부동산 서비스기업인 세빌스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 호텔 거래 규모는 총 9185억원으로 집계됐다. 아직 한 해가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작년 연간 호텔 거래 규모(1조2232억원)의 75%에 해당하는 규모의 딜이 성사됐다.
내국인들 사이에서 ‘호캉스’ 열풍이 여전히 식지 않는 가운데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까지 늘어나자 국내외 투자자들이 한국 호텔산업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오는 족족 거래되는 호텔 특히 호텔업계에서는 이번에 콘래드호텔이 4000억원대에 거래된 것에 대해 놀랍다는 반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정도 값을 받았다는 것도 의외지만 입찰에 많은 투자자들이 참여한 것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고 전했다.
브룩필드자산운용이 지난해 말 콘래드호텔을 매물로 내놨을 때만 해도 매각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걸림돌은 ‘기부채납’ 조건이었다. 콘래드호텔을 포함한 IFC는 조성 당시부터 2104년이 되면 서울시에 모든 토지와 건물을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조건으로 건립됐다. 이런 리스크를 안고 있다 보니 과연 누가 이 호텔을 사겠냐는 의문부호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우선협상자가 된 ARA코리아자산운용 외에도 블랙스톤, 케펠자산운용 등 유명 외국계 투자운용사들이 대거 입찰에 참여하며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 것이다.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한국 호텔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음이 이번 콘래드호텔 매각 건으로 입증됐다”고 분석했다.
올해 3월 매각이 성사된 티마크호텔도 마찬가지다. 티마크호텔이 시장에 매물로 등장한 것은 약 5년 전인 2019년이다.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은 당시 이 호텔을 매각해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줄 계획이었으나 쉽게 거래가 성사되지 않아 곤욕을 치렀다. 티마크호텔의 경우 비즈니스 호텔이다 보니 내국인보다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 고객이었다. 문제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나타났다. 하늘길이 막히고 외국인들의 발길이 뚝 끊기게 되자 호텔에 선뜻 투자하겠다는 이들이 나타나지 않았고 매각은 수차례 무산됐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외국 관광객이 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호텔 실적이 눈에 띄게 정상화하면서 투자자들이 호텔 투자에 다시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티마크호텔은 올 3월 그래비티자산운용에 매각이 성사됐다.
급증하는 수요에 전망도 밝아 향후에도 주인이 바뀌는 호텔은 계속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스타로드자산운용은 경기도 광명에 있는 4성급 테이크호텔의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으며 한국투자부동산신탁은 최근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4성급 해운대 L7 호텔을, 키움투자자산운용은 서울 마포구의 4성급 호텔 신라스테이 마포 인수를 추진하는 등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호텔업계에서는 코로나19 종식 이후 호텔이 쉽게 짭짤한 수익을 낼 수 있는 ‘매력 자산’으로 평가받기 시작하며 거래가 활기를 띠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가장 큰 배경은 급격히 증가하는 호텔 수요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빠르게 늘어나는 점은 호텔업계에서 꼽는 가장 큰 호재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1년 코로나19 여파로 90만 명에 불과했던 외국인 관광객 수는 지난해 1100만 명으로 급증했다.
전망도 긍정적이다. 코로나19 동안 K팝과 한국 콘텐츠 등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관광객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호텔산업을 바라보는 전망도 긍정적일 수박에 없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내수 고객도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19 기간 해외를 나가지 못한건 내국인도 마찬가지다. 자연히 해외여행 대신 좋은 호텔에서 휴식을 즐기는 ‘호캉스’ 트렌드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 한 5성급 호텔 관계자는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호텔에서 휴식을 즐기기 위해 방문하는 내국인 수요가 여전하다”며 “여기에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외국 관광객까지 많아지다 보니 호텔 로비는 연일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호텔 가격도 훌쩍 뛰었다. 한국호텔업협회 등에 의하면 2020년 11만원으로 떨어진 평균 객실 가격(ADR)은 지난해 17만원까지 치솟았다. 통상적으로 호텔 가격은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 등락을 반복하는데 그만큼 호텔이 찾는 내외국인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ADR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로 인해 국내 호텔들은 지난해 역대급 성적표를 받기도 했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2023년 전년(222억원)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4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올렸으며 신라호텔은 사상 최대 매출(6347억원)을 기록했다.
한국 호텔의 가치가 빠르게 올라가면서 호텔 거래를 통해 단기간에 큰 차익을 거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투자자들의 돈이 호텔에 몰리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KH그룹이 대표 격이다. KH그룹은 2019년 약 5620억원에 그랜드하얏트 서울을 품에 안았다. 이후 2022년 특수목적회사(SPC) ‘한남칠사칠’에 이 호텔을 7300억원에 매각했다. 불과 3년 만에 2000억원 가까운 차익을 거둔 것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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