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갑자기 오른 자재비와 인건비 등으로 인해 건물 시공을 맡은 건설사와 발주처인 KT 간에 공사비 인상을 둘러싼 다툼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판교 신사옥 추가 공사비를 요구한 쌍용건설 시위가 신호탄이다. 양측 입장은 정확히 평행선을 긋고 있다.
여기에 KT가 원래 자산이던 전화국 부지 외에 다른 토지 매입에도 눈을 돌리면서 분쟁은 다양화하고 있다. 자회사 KT에스테이트가 강남 시행사업에 투자하면서 이미 새로운 갈등에 휘말린 상태다. 누가 ‘무단 점유’했나
최근 KT에스테이트와 라살자산운용이 공매에 나온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토지를 낙찰받은 후 갈등이 생겼다. 라살자산운용은 글로벌 부동산컨설팅 회사인 존스랑라살(JLL)의 계열사다. 사업 주관사는 라살이며 KT에스테이트는 지분투자를 통해 공동으로 사업에 참여한다.
해당 부지는 하이엔드(High-end) 오피스텔 개발이 추진되던 곳이었다. 브리지론 연장 수수료 문제를 둘러싸고 기존 시행사(와이에스씨앤디)와 토지매입 단계에서부터 브리지론 조달을 주선했던 메리츠증권 사이에 의견이 갈리면서 결국 기한이익상실(EOD)에 빠져 공매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감정가 2037억원에 달했던 토지 4필지(2040.9㎡)는 수차례 유찰된 끝에 약 1500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잔금 납부는 7월 말까지이며 납부 이후 소유권 이전 절차가 마무리된다.
그런데 낙찰자는 5월 말부터 해당 부지를 점유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기존 사업자가 잠가둔 잠금장치를 훼손하고 현장을 둘러싼 펜스 내부를 점유한 뒤 무단으로 새 잠금장치를 단 상태다. 와이에스씨앤디는 6월 초 금융주관사인 KB국민신탁을 통해 이 사실을 항의한 뒤 라살로부터 원상복구를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점유는 계속되고 있다.
경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무단 점유가 맞다”는 반응이다. 아직 법적으로 기존 시행자가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낙찰자라 하더라도 부지를 점유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KT에스테이트는 이미 새 토지주가 정해진 상태에서 기존 사업자가 현장에 컨테이너를 배치하는 등 점유하려는 행동을 보여 이에 대응했다는 입장이다. KT에스테이트는 “낙찰자의 권리확보를 위해 KB신탁에 통지하고 채권단을 통해 현장에 대한 관리 위임 허가를 받아 현장관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사업 수익 늘어, 확대일로 이번 사건으로 인해 KT에스테이트가 토지 매입부터 착수하는 ‘본격 시행사업’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동안 KT전화국 운영 및 개발로 노하우를 쌓은 데다 마침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로 역삼동 부지 같은 ‘알짜 땅’도 비교적 저렴하게 매물로 나오고 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사업을 좀 해보니 충분히 돈이 된다고 본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제 10년을 훌쩍 넘긴 KT의 부동산 사업 수익은 몇 년 사이 가파른 성장을 지속했다. 첫 시작은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통신기술의 흐름이 무선으로 완전히 넘어가면서부터였다. 기존 전화국 업무가 급감하자 KT는 지역마다 ‘알짜’ 입지를 차지한 전화국 부지를 활용할 방안을 찾았다.
KT는 2010년 8월 부동산 매매, 관리, 임대업을 주로 하는 지분 100% 자회사 KT에스테이트를 설립한 데 이어 이듬해 자산관리를 위한 투자운용사를 차리기도 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전국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띠며 사업도 순풍을 탔다. 부동산 경기가 정점이던 2021년 KT는 강동 전화국(KT강동지사)과 용산 전화국(KT용산타워)를 매각했다. 한창 ‘강동 SK리더스뷰’가 들어서고 있는 강동 전화국 부지는 1521억원, KT용산타워는 2255억원에 팔렸다. 이들 부동산은 10여년 전 KT가 출자하며 설립한 부동산투자법인(KT 출자 지분 32.18%)에 유동화했던 자산으로 2021년 매각금액은 각 출자기관에 배당됐다.
KT에스테이트 역시 송파 전화국 부지에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신사 전화국 부지에 ‘안다즈 서울 강남’ 등을 개발했다. 이에 따라 실적도 오름세를 이어갔다. 2015년 3239억원을 기록했던 영업수익(매출)은 현재 두 배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 투자부동산 규모도 1조1131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볼멘소리도 나왔다. KT가 공기업 시절부터 보유하던 전화국 부지나 그동안 통신사업을 통해 축적한 자본력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사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토지 매입 작업부터 고금리의 브리지론을 조달해야 하는 기존 시행업계와는 사업 난이도에서 차이가 크다. 이번에 라살과 합작해 매입한 역삼동 부지도 관련 투자자 다수가 고금리 및 분양 시장 불황을 못 이기고 경공매에 나오길 기다리던 토지 중 하나다. 기존 개발사업에서도 건물을 지은 시공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2022년부터 인건비는 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자재·물류비가 급등하면서 원가가 30~40% 오르자 건설사들은 물가인상률을 반영한 추가 공사비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이들 건설사는 자재, 인건비 등에 대한 세부 내역서도 제출한 상태다. 쌍용건설은 KT 판교사옥 신축, 현대건설은 KT광화문 사옥 리모델링, DL건설은 데이터센터를 수주했다. KT자회사의 부동산 개발사업을 수주한 곳은 한신공영(KT에스테이트 부산 초량 오피스텔), 롯데건설(넥스트커넥트PFV 광진구 롯데캐슬 이스트폴) 등이다.
발주처인 KT와 KT에스테이트는 난색을 표했다. 이미 도급계약서에 ‘물가변동배제 특약’이 명시돼 공사비를 추가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먼저 나선 것은 쌍용건설이다. 지난해 10월 쌍용건설 직원들과 협력사 관계자들은 KT판교사옥 현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발주처와의 갈등을 표면화하지 않는 건설업계 관행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행보다. 이들은 물가인상률을 반영한 공사비 171억원 증액을 요구했다.
협상이 길어지자 KT는 올해 5월 쌍용건설을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KT는 이미 도급비를 조기 지불했으며 쌍용건설이 요구한 설계변경에 따른 추가공사비 45억5000만원 지급을 마쳤고 100일간 공기연장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KT는 “쌍용건설은 계약상 근거 없이 추가 공사비 지급을 요구하며 시위를 진행하는 등 KT그룹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훼손해 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KT는 상생협력 차원에서 쌍용건설과 원만한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에선 KT가 국토교통부의 건설공사 분쟁조정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아쉽다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KT가 시위에 나선 쌍용건설에 대해 본보기로 소송을 걸었다거나 프로젝트가 워낙 많은 상황에서 어느 한 시공사의 공사비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울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국토부 역시 대한건설협회의 ‘물가변동배제 특약의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에 따른 무효 가능성’ 질의에 대해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물가변동배제 특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고 회신한 바 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은 도급계약 내용이 “계약 체결 이후 설계변경, 경제 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아니하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 등에 한정해 무효화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일각에선 KT 내부에서 누군가 책임 지고 공사비 추가 지급을 결정하기 어려운 분위기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송 역시 우선 지급시기를 미루려는 목적이 클 것이라는 지적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공사들 모두 사업성 검토를 거쳐 사업을 수주하지만 이렇게 이례적인 원가 상승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건설사들이 어려운데 비해 KT가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냈다는 뉴스를 보니 씁쓸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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