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경상북도 봉화군 낙동강 최상류의 산속에 위치한 영풍 석포제련소 전경.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경상북도 봉화군 낙동강 최상류의 산속에 위치한 영풍 석포제련소 전경.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고려아연과 경영권 분쟁 중인 영풍그룹이 또 다른 악재를 만났다. 영풍의 핵심 사업소인 석포제련소의 환경오염 방지 시설 미비로 2개월간 가동을 멈출 위기에 놓였다. 계속되는 환경오염 문제와 잇따른 근로자 사망 등 안전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고법 제1행정부(곽병수 부장판사)는 지난 6월 28일 영풍 석포제련소가 경북도를 상대로 낸 조업정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석포제련소는 2019년 오염방지시설을 거치지 않은 폐수 배출시설을 설치·이용한 사실 등이 환경부에 적발됐다. 당초 행정처분은 조업정지 4개월(3개월 30일)이었으나 행정협의조정위 조정에 따라 2개월로 감경됐다.

이에 영풍 측이 해당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1심 재판부의 원고 청구 기각으로 패소한 바 있다. 판결이 확정될 경우 영풍은 2021년 10일 조업중단에 이어 다시 두 달간 조업을 중단해야 한다.
3월 20일 (주)영풍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 별관 앞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들이 영풍 석포제련소 운영 중단 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월 20일 (주)영풍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 별관 앞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들이 영풍 석포제련소 운영 중단 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밥 먹듯 환경법 위반…‘2개월 조업정지’ 현실화

석포제련소는 영풍문고로 잘 알려진 영풍그룹 소유의 아연 생산 공장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아연 생산량은 단일 공장 기준 세계 4위 규모다. 지난해 영풍의 제련 부문 매출은 1조5400억원으로 전체 매출(3조7617억원)의 약 41%를 차지했다.

영풍그룹은 1970년 일본 도호아연의 기술을 이전받아 낙동강 최상류인 경상북도 봉화군에 석포제련소를 설립했다. 석포제련소는 1급 발암물질인 카드뮴 오염수를 낙동강에 불법 배출하는 등 낙동강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환경부의 전신인 환경청이 1975년 환경위생국으로 개편되며 환경오염과 공해문제를 관리하기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미미하고 환경법도 정립되지 않은 시기에 설립돼 50년 넘게 중금속 물질을 배출해온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석포제련소는 폐수 0.5톤 불법 배출 혐의(물환경보전법 위반) 등으로 적발돼 2021년 11월 51년 만에 처음으로 10일간 조업을 중단한 바 있다. 당시 조업정지 처분의 여파로 석포제련소는 8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한 번 가동을 멈추면 조업중단 기간뿐 아니라 가동중단 전 준비기간, 재가동 이후 복구 기간도 필요해 생산 차질이 빚어지며 매출에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외신에서는 두 달간 조업정지가 결정될 경우 손해액이 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환경과 안전 관련 제재가 이어지며 지난 1분기 공장 평균 가동률은 64.7%에 그치고 있다.

석포제련소의 환경 관련법 위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석포제련소는 아연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각종 중금속과 유해물질을 배출한다. 유해물질이 유출되지 않게 관리해야 하지만 석포제련소의 노후 설비와 오염방지 시설 미비로 인해 그간 유해물질이 인근 토양과 하천으로 흘러들어가 환경오염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석포제련소는 지난 10년간 환경 관련 법을 120여 차례 위반했고 그로 인해 90차례가 넘는 행정처분을 받았다. 2021년 중금속 발암물질인 카드뮴 오염수를 낙동강에 수년 동안 불법 배출한 것이 드러나 환경부로부터 과징금 281억원을 부과받았다.

2019년에는 대기오염물질 측정대행업체와 공모해 2016년부터 3년간 대기오염물질 농도 값을 배출 허용 기준의 30% 미만으로 조작해 1868건의 기록부를 허위로 발급받은 혐의로 석포제련소 임원이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사진=영풍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사진=영풍
잇따른 중대재해에도 오너일가 처벌 대상 제외

국정감사에서도 단골손님이다. 2014년 석포제련소 인근 초등학교 부근의 토양에서 카드뮴 농도가 기준치를 2배 이상, 아연의 경우 6.8배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나 소환된 것을 시작으로 10년 동안 국감장에 8차례나 불려나왔다.

환경 관련법 위반으로 환경부와 지자체의 행정처분을 수차례 받으면서도 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어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대구지방환경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석포제련소 오염 면적이 축구장 100개 규모에 이른다”며 “정화된 내용은 오염면적의 3.9%밖에 안 된다. 대한민국 최고의 송이 산지인데 석포 지역에 송이가 안 날 정도”라고 질타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도 “이 회사는 환경법 관련해서 위반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오염물질 측정자료 수치를 조작하는 등 악랄하다”며 “조업정지에 해당하면 조업정지, 허가 취소에 해당하면 허가 취소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석포제련소는 2022년 12월 환경오염시설허가에 필요한 허가배출기준과 허가조건을 최대 3년 내에 이행하는 것을 전제로 환경부로부터 조건부 통합환경 허가를 받아 운영 중이다.

영풍은 조건 이행을 위해 1468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수립해 이행 중이다. 2022년에는 2025년까지 총 7000억원을 투자해 ‘오염 제로화’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봐주기 행정이라며 폐쇄를 촉구하고 있다.

영풍 관계자는 "석포제련소는 2021년 세계 제련소 최초로 무방류 시스템인 '폐수 재이용 시설'을 도입하는 등 대대적인 환경 개선을 실시하고 있다"며 "그 결과 2022년 말 정부의 통합환경허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전 분야에 있어서도 올해 조직과 인력, 예산,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보강해 안전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전불감증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석포제련소 제1공장 탱크의 모터 교체 작업에 투입된 하청업체 직원 2명과 원청 소속 근로자 2명이 아르신 가스 급성중독으로 1명 사망, 3명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해 지난 1월 박영민 영풍 대표와 배상윤 석포제련소 소장, 해당 하청업체 대표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아르신 가스는 비소가 산과 접촉할 때 발생하는 유독성 가스로 당시 작업자들은 장시간 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3월에는 인력업체로부터 공급받은 임시 일용직 노동자가 석포제련소 냉각탑 석고 제거 작업을 하던 중 떨어진 석고물질에 맞아 사망했다. 안동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1997년부터 지난 25년간 석포제련소에서 사망한 근로자는 모두 14명이다.

반복되는 사망사고와 산업재해로 업계에선 영풍그룹 오너일가가 권한은 누리면서 경영상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석포제련소는 재계 32위 영풍그룹의 주력사업소로 장형진 고문이 총수로 지정돼 있다.

올해 3월 기준 장 고문의 장남 장세준 코리아써키트 대표가 지주회사 (주)영풍 지분을 16.89% 보유한 최대주주다. 차남 장세환 전 서린상사 대표는 11.15%, 장녀 장혜선 씨는 11.15%를 보유하고 있다. 장 고문은 2005년 영풍산업이 최종 부도처리된 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여전히 실질적으로 그룹을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석포제련소는 2015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 중으로 현재 박영민 부사장과 배상윤 부사장이 영풍 대표이사와 석포제련소 소장을 각각 맡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더라도 장 고문 일가가 아닌 법인 대표와 소장 등이 처벌 대상이 된다. 장 고문은 상법상 무거운 책임을 지는 대표이사와 등기임원을 맡지 않아 책임 경영에서 벗어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영풍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이 2021년 제정 뒤 2022년부터 시행됐는데 영풍은 그 이전인 2015년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시간 전후 관계상 중대재해법 처벌을 피하려는 의도로 오너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영풍은 경영 선진화 측면에서 전문적, 체계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풍그룹 사옥. 사진=영풍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풍그룹 사옥. 사진=영풍
환경·안전 투자 ‘뒷전’…경영권 분쟁에만 몰두

시민단체들은 영풍 주주총회가 열린 지난 3월 20일 영풍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석포제련소 폐쇄를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처럼 석포제련소는 위험공정을 하청직과 일용 임시직에 맡기고 그들의 건강과 생명을 사지로 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영풍의 실질 사주는 장형진 고문이지만 노동자 사망사고로 인한 중대재해처벌법 등 모든 법적 문제를 서류상 대표가 책임지고 있어 반세기 넘게 영풍의 사회적 책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1698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영풍은 환경 리스크로 수익성이 계속 악화하고 있다. 영풍은 최근 5년간(2018~2022년) 환경 개선에 대한 비용 지출이 늘며 영업손실 합산 규모가 1371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고려아연으로부터 수령한 배당금 누적액은 3576억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장형진 고문의 아내와 영풍 3세들은 고려아연 주식을 꾸준히 매입하고 있다. 영풍 측의 고려아연 지분은 33%로 추정된다.

지난해 말 기준 영풍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영풍은 석포제련소의 환경 관련 충당부채로 약 2400억원을 설정했다. 이를 석포제련소의 토양정화와 통합환경 조건부 허가에 따른 제련 잔재물 처리 관련 비용에 투입해야 한다.

여기에 지난 3월 고려아연이 황산 취급 대행 계약 갱신을 거절하면서 영풍은 연간 40만 톤가량의 황산을 처리하기 위한 운송과 저장 비용이 늘어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영풍이 본업인 석포제련소의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환경과 안전에 대한 투자보다 경영권 분쟁을 위한 고려아연 지분 매입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