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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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기습적으로 피습을 당했음에도 공화당 전당대회가 예정대로 개최됐다. “미국을 더 부유하게(MAWA)”, “미국을 더 안전하게(MASA)”, “미국을 더 자랑스럽게(MAPA)”, “미국을 더 위대하게(MAGA)”. 마치 트럼프 후보가 당선을 확신한 듯 2017년 1월 20일 취임사를 콘셉트로 삼았다. ◆ 가능성 커지는 Fed 개편안앞으로 본격화될 정책대결의 핵심인 경제 분야는 조 바이든 정부가 물가 잡기에 실패해 국민이 고통에 빠졌다는 데서 출발한다. 47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화한 이후 트럼프 후보는 물가안정 주무 부서인 중앙은행(Fed)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명해 왔다. 파월 의장에 대해서도 임기(2026년 2월) 이전에 교체할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해왔다.

더 주목되는 것은 Fed의 개편안이다. 트럼프의 재집권 시나리오인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 2025’에 나타난 Fed의 개편안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Fed 자체를 없애버리는 ‘폐지론’이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Fed 의장뿐만 아니라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위원의 임명권까지 장악하는 ‘시녀론’이다. 마지막으로 Fed의 양대 목표 중 ‘고용창출’을 빼고 ‘물가안정’에만 주력하겠다는 ‘축소론’이다.

문제는 Fed가 폐지되면 물가안정 책무는 누가 담당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 문제에 트럼프 진영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미국 국민이 당하는 물가 고통의 진원지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덤핑 수출’(디플레 수출이라 표현하기도 한다)만 잡으면 된다고 보고 있다.

중국의 덤핑 수출을 잡기 위해서는 Fed로는 안 되고 대통령이 전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실천 방안도 공화당의 전통인 ‘강한 달러화(strong dollar)’ 정책을 부활시키면 된다고 봐 이 또한 논리적이다. 중국 견제를 통해 MAGA 구상을 달성한다는 차원에서도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하면 실행 가능성이 높게 평가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물가가 오른 것이 주로 공급 측 요인인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진영의 달러 강세 정책은 효과적인 수단임에는 분명하다. 바이든 정부에서도 2021년 4월 이후 물가가 급등하자 ‘일시적’이라 판단하고 평균물가목표제까지 도입해 방관했던 Fed와 파월 의장 대신해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이 정책을 추진했다.

옐런 장관의 달러 강세를 통한 물가안정 정책의 실체를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원적 달러 정책(two track strategy)’이다. 대미국 수출 비중이 적은 유럽 통화에 대해서는 ‘달러 약세’를, 대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통화에 대해서는 ‘달러 강세’를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옐런 독트린’이라고도 불리는 이 정책은 달러 강세의 부작용인 수출둔화와 경기침체를 최소화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달러인덱스 구성 비중이 70%가 넘는 유럽 통화에 대해 달러 약세를 추구하면 달러인덱스는 올라가지 않는다. 실제로 옐런 장관이 이 정책을 추진할 당시 113∼114대까지 급등했던 달러인덱스가 최근에는 104∼106대로 움직이고 있다.

반면 미국 경제 최대 현안인 물가안정을 달성하는 데 옐런 독트린은 이미 주효한 것으로 평가된다. 2년 전 9.1%까지 치솟았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최근에는 3%대까지 떨어졌다. Fed의 금리인상 효과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코로나 이후 물가가 공급 측 요인에 기인한 것을 고려하면 총수요 물가 대책인 금리인상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탠트럼 현상 나오나문제는 아시아 국가다. 루빈 독트린 시대에서 주타깃국인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는 뼈아픈 외환위기를 겪었다.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해 옐런 독트린이 보다 강화된 형태로 추진되면 이번에 주타깃국인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는 루빈 독트린 시대보다 더 혹독한 시련이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이미 작년 11월 이후부터 국채금리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10년물 국채금리 기준으로 현재 2% 내외는 일본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경제 발전 단계가 오를수록 국가신인도가 높아져 국채금리가 낮아지는 점까지 고려하면 중국의 국채금리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처럼 정책과 시장 간 금리체계가 형성되지 않는 여건에서는 국채금리가 하락하는 것은 수급 요인 때문이다. 금리와 채권가격은 역비례 관계다. 국제금리가 떨어져 가격이 오르는 것은 공급이 감소하거나 수요가 증가하는 경우다. 하지만 중국은 국채 공급을 줄일 수 있는 재정 여건이 못 된다.

중국의 국채를 서방에서 사는 경우는 드물다. 세계 3대 평가사나 세계국채지수(WGBI) 등에서 중국이 평가 대상국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00%가 넘어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면 이미 테크니컬 디폴트에 빠진 상황이다. 중국 내부적으로도 강제성을 띠지 않으면 자율적으로 사기가 힘들다는 의미다.

중국의 국채를 매입하는 주체를 추적해 보면 놀랍게도 지방은행이다. 지난 7개월간 지방은행은 중국 국채를 1조6000억 위안 규모를 사들여 같은 기간 중 1년 전에 비해 61%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은행의 대차대조표(B/S)상에 잡혀 있는 부실화된 부동산 대출을 완전히 상계할 수 있는 큰 규모다.

4년 전 헝다그룹 사태 이후 부동산 부실과 지방 제조업 경기 위축으로 부도 직전에 놓여 있는 지방은행이 이 많은 국채를 사들인 자금의 원천을 따져보면 주로 부동산 구제금융 자금이다. 정책금융 목적상 이 자금은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제공되거나 부동산 부실채권을 유동화시켜 구조조정을 해야 할 용도로 사용돼야 한다.

하지만 중국의 지방은행은 부동산 구제금융으로 국채를 사들여 부동산 시장 개선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방은행이 사들인 국채가 ‘시진핑 국가주석과 공산당의 숨겨놓은 자산이지 않느냐’는 의구심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실이라면 ‘부채의 화폐화(bond monetization)’를 뛰어넘어 ‘부채의 사유화(bond privatization)’다.

문제는 국채시장에서 탠트럼(tantrum·발작)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다. 피습 이후 트럼프 대세론이 부각되자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로 국채금리가 오르는 트럼프 탠트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중국의 부도 위험 증대 등으로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 지방은행의 부실화는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확률이 높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판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는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주목된다. 작년 3월 미국의 SVB 사태에서 보여준 것처럼 디지털 시대에서는 중국 지방은행의 부실화가 우려되면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예금인출이 이뤄져 뱅크런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가 제2 리먼 사태까지 우려되던 SVB 사태를 조기에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이다. 첫째, 유동성 위기가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했다. 둘째, 도덕적 해이를 낳는 ‘구제금융’보다 ‘예금자 보호’에 치중했다. 셋째, 자기 책임의 원칙에 입각해 SVB를 신속하게 파산시켜 다른 금융사에 인수합병시켰다.

앞으로 중국판 SVB 사태가 발생하면 제2 리먼 사태로 악화될 것인가 여부는 크게 두 가지 요인에 결정된다. 하나는 레버리지 비율(증거금 대비 총투자금액)이 얼마나 높으냐와 다른 하나는 투자분포도가 얼마나 넓으냐 하는 글로벌 정도에 좌우된다. 이 두 지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제2 리먼 사태로 악화될 확률이 높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이듬해 리먼 사태로 악화된 것은 위기 주범이었던 미국 금융사의 이 두 가지 지표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중국 금융사는 두 지표 모두 낮은 편이다. 중국판 SVB 사태가 발생하면 제2 리먼 사태로 악화될 소지보다 그 충격이 중국 내부적으로 수렴돼 시진핑 정부의 자충수가 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이 이유에서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