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국제분쟁도 이유 안 돼”…우방건설 가처분 신청 기각
남아 있는 신탁사-대주단 소송전 ‘시한폭탄’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사진=연합뉴스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확대되는 가운데 시공사의 무조건적인 책임준공확약 채무인수가 부당하다며 건설사가 제기한 첫 소송에서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재판부는 책임준공 기한을 연장할 수 있는 ‘불가항력’의 의미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며 대주단의 손을 들어줬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이나 국제적 분쟁 등은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보지 않은 것이다.

건설업계는 향후 PF 사업 구조와 책임준공확약의 해석에 미칠 영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코로나·파업은 불가항력 사유 아냐”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는 7월 19일 우방건설이 대주단을 상대로 제기한 ‘책임준공확약 채무인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2024카합20757).

이번 소송의 발단은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방은 5월 28일 대구 ‘수성레이크 우방아이유쉘’ 사업장의 대주단을 상대로 채무인수효력정지 등 가처분을 신청했다. 청구금액은 1425억원이었으며 대주단에는 경남은행, 지역 새마을금고 15곳, 신한캐피탈 등 21개 기관이 포함됐다. 이는 건설사가 책임준공확약의 효력을 다투는 첫 사례로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방은 당초 올해 2월 말까지 공사를 완료하기로 했으나 코로나19 확산, 전국적 규모의 건설 파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수급 불안정 등으로 공사가 지연돼 3월에야 준공을 마쳤다.

이에 대주단이 채무인수를 요구하자 우방은 이러한 사유들이 ‘불가항력적 사유’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는 건설업계에서 관행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책임준공확약의 ‘불가항력적 사유’ 제한에 대한 첫 문제 제기였다.

우방 측은 이러한 사건들이 시공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불가항력적 사유라고 주장했다. 또한 대주단이 책임준공기한 연장 협의를 거부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우방의 주장은 건설업계의 오랜 관행인 책임준공확약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으며 많은 건설사가 이번 소송의 결과를 주목했다.

그러나 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우방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향후 유사한 분쟁에서 중요한 선례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책임준공 기한을 연장할 수 있는 ‘불가항력’의 의미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며 우방이 주장한 사유들이 불가항력에 해당한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우방이 계약 체결 과정에서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었다거나 부당하게 책임준공확약을 하게 됐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고 봤으며 보전의 필요성 역시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책임준공확약의 법적 구속력을 재확인하고 시공사의 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공사의 책임준공확약 채무인수 첫 판단

이번 소송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로펌 간 대결 구도였다. 우방 측 소송대리인은 법무법인 광장이, 대주단 측 소송대리인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맡았다. 두 로펌은 국내 로펌업계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다.

태평양 관계자는 “시공사 책임준공확약 제도의 연혁적 의의와 실제적 기능에 관한 심층적 논증, 대출약정 및 책임준공확약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회계기준 등을 통한 이 사건 시공사 주장의 부당성 논증 등으로 기각결정을 받아냈다”고 설명했다.

이 판결은 시공사의 책임준공확약에 따른 채무인수 관련 최초의 법원 판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법원이 책임준공확약을 한 시공사가 사후적으로 그 구속력을 부인하려는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태평양은 “PF 사업에서 시공사의 책임을 강조하고 ‘불가항력적 사유’의 해석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소송을 계기로 ‘불가항력적 사유’ 제한에 대한 문제 제기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이나 국제적 분쟁 등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책임 분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맞물려 건설사들의 재무 상황이 악화하는 가운데 발생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해당 아파트 단지는 현재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으며 우방은 올해 1분기에 적자로 전환했다. 이는 건설사들의 PF 리스크가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돋보기]
경기 인천 서구 원창동 냉동물류센터 개발사업지 현장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경기 인천 서구 원창동 냉동물류센터 개발사업지 현장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더 큰 시한폭탄은 신탁사 vs 대주단 책준 소송전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시공사와 대주단의 소송보다 더 큰 ‘시한폭탄’으로 꼽히는 신탁사와 대주단 간 책임준공확약 소송전을 주목하고 있다. 중소 건설사를 대신해 책임준공 의무를 떠안은 부동산신탁사들이 잇따라 손해배상 소송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이번 시공사와 대주단의 책임준공확약 소송은 천재지변에 준하는 사유가 있어야만 책준 확약을 피해 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한 것”이라며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신탁사와 대주단의 소송전과는 다른 양상”이라고 강조했다.

업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소송전은 인천 원창동 물류센터 건설공사의 PF 대주단이 올해 2월 말 책임준공 의무를 어겼다며 신한자산신탁을 상대로 총 575억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건이다.

대주단이 신탁사를 상대로 책임준공 미이행 손해배상 소송을 처음 제기한 사건이다. 신한자산신탁은 평택과 안성에 각각 진행 중인 물류센터 개발사업과 창원 복합시설 개발사업에 대해서도 추가 소송이 제기됐다. 이 3건의 소송가액만 1384억원이다.

우리자산신탁은 경기 양주시 옥정지구 지식산업센터 등 PF 대출금액 1617억원 규모의 책준형 신탁 사업 5건에 대해 올 들어 시공사의 책임준공 의무를 넘겨받았다. 한국자산신탁도 올해 1분기 PF 대출잔액 290억원 규모인 한 사업장에서 시공사 책임준공 의무를 떠안았다.

시공사의 책임준공 기한 이후로도 6개월 이내에 준공이 되지 않으면 신탁사가 PF 대주단에 손해를 물어줘야 한다. 전국적으로 신탁사가 책임준공을 보증한 사업장은 1000곳 안팎으로 KB부동산신탁이 180개로 가장 많고 신한자산신탁, 무궁화신탁 등이 뒤를 잇고 있다.

국내 신탁사들의 책임준공 관리형 토지신탁 수탁액은 2020년 말 8조4000억원에서 2023년 9월 말 17조1000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부동산 호황기에 ‘효자상품’으로 주목받은 책임준공 관리형 토지신탁이 건설사 부실로 인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양상이다. 2022년 하반기부터 건설 경기가 꺾이면서 책임준공형 신탁으로 추진된 다수의 PF 사업이 부실 위험에 직면했다.

코로나 발생 기간 공급과잉까지 겹친 물류센터 사업장은 신탁사의 책임준공 의무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지목된다. PF 사업 부진의 직격탄을 맞은 결과 부동산신탁사 순이익이 1년 만에 6분의 1 토막으로 쪼그라들었다.

13개 부동산신탁사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은 269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1636억원)와 비교하면 6분의 1 수준이다. 자기자본순이익률(ROE)도 같은 기간 13.5%에서 4.9%로 축소됐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