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인 원인, 무리하게 사업 확장한 구영배
지분 교화 방식으로 2년간 5개 회사 사들여

기업결합 승인해준 공정거래위원회도 문제로
큐텐의 티몬·위메프 인수 '긍정적'이라고 판단

경영개선 MOU 맺고 감독 안 한 금융당국도 문제
완전자본잠식 상태 해결 목표 시도 연기해줘

[커버스토리: 티메프 사태, 이커머스 포비아]
공정위 관계자 설명 듣는 티몬 피해자들. (사진=연합뉴스)
공정위 관계자 설명 듣는 티몬 피해자들. (사진=연합뉴스)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대금 지급 지연 사태로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생계를 위해 입점한 소상공인과 조금이라도 돈을 아껴보려던 소비자는 물론이며 수백 개의 제휴사에도 불똥이 튀었다. 허공으로 날아간 돈은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2년간 여러 개의 적자 기업을 사들이면서 시장을 혼탁하게 만든 결과다. 본질적인 원인은 무리하게 문어발 확장을 한 구 대표에 있지만 그만의 문제는 아니다. 큐텐에 오픈마켓 시장점유율 8%에 해당하는 전자상거래 업체 인수를 허락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와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금융감독원(금감원)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장 오른쪽). (사진=연합뉴스)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장 오른쪽). (사진=연합뉴스)
◆ 책임자 1. 구영배가장 큰 잘못을 한 인물은 과도한 외형 확장에 나선 구영배다. 지난 2년간 한국 기업 4개, 미국 기업 1개 등 총 5개 회사를 사들이며 사세를 확장했다.

목적은 하나. ‘나스닥 상장’이었다. 기업 운영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대표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재무 구조와 현금흐름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7월 30일 국회 정무위에 출석해 가장 자주 한 대답도 “구체적인 것까지는 (내가) 파악하지 못한다”였다.

구영배는 2011년 설립한 큐텐의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를 앞세워 미국 나스닥 상장을 시도했다. IB업계에 따르면 큐익스프레스 나스닥 상장 추진 시점은 당초 올해 10월이었다.

다수의 이커머스 기업을 사들인 것도 큐익스프레스의 몸집을 키우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이들 회사의 물류를 큐익스프레스에서 전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회사의 매출은 늘어나게 된다. 큐익스프레스의 상장 요건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M&A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에 따르면 큐텐그룹 계열사의 모든 배송 사업은 큐익스프레스가 담당한다. 큐익스프레스의 한국 매출은 2020년 600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810억원 수준으로 늘었다. 여기에는 티몬과 위메프의 물동량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큐익스프레스 최대주주는 큐텐이다. 지분 65.9%(1387만 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2대주주는 구영배(29.4%, 618만 주)다. 큐익스프레스의 최고경영자(CEO)도 얼마 전까지는 구영배였다.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가 심화하면서 최근 큐익스프레스 CEO 자리에서 사임했다. 그러나 여전히 구영배는 기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큐익스프레스의 주주다.

심지어 구영배는 티몬과 위메프 인수 이후 이들 회사에서 재무 부문을 없애버렸다. 재무와 관련된 결정은 큐텐만 가능한 구조다. 모든 돈의 흐름은 큐텐을 거칠 수밖에 없다. 티몬과 위메프에는 MD 사업부와 마케팅 조직만 있다. 구영배는 7월 30일 국회 정무위에서 “티몬과 위메프는 재무담당 리더들이 사임했다”며 “재무 관리 쪽은 (큐텐이) 다 흡수하고 마케팅만 남겨놨다”고 설명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7월 30일 페이스북 계정에 “어른들의 말씀이 있다. 말을 읽지 말고 행동을 읽어라”라는 글을 게재했다. 티몬 사태에 대한 의견으로, 사재를 투입해서 사태를 막겠다는 구영배의 발언에 진심이 있었다면 벌써 진작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몇 달 전에 몇천억을 주고 외국 회사를 인수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정 부회장은 “이분들은 적어도 몇 개월 전부터 자기들의 재무적 상태를 알았을 텐데 우리처럼 이제야 놀라는 듯 행동하고 그 며칠 동안 피해자 보상 프로그램을 숙의하는 것처럼 시간을 벌더니 그사이에 변호사들하고 기업회생절차를 논하셨구나”라고 경영진의 안일한 태도를 꼬집었다.
사라진 1조원…누가 죄인인가[티메프 사태, 이커머스 포비아②]
◆ 책임자 2. 공정위 지난해 7월 공정위는 오픈마켓·해외직구 분야 기업결합 건의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큐텐이 인터파크커머스, 위메프의 주식을 취득하는 것을 사후 승인했다. 티몬 인수는 이미 지난해 2월 승인한 상태였다.

공정위는 “모든 결합 유형에서 관련 시장에 미치는 경쟁제한 우려가 미미하다고 판단해 조건 없이 승인한다”고 밝혔다. 이들 회사 합산 점유율이 8%대에 불과하다는 점, 다수 사업자 간 상품 구성, 가격, 배송 기간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기업결합으로 인해 가격인상이나 담합이 증가될 가능성이 미미하다는 이유였다.

심지어 공정위는 ‘긍정적’이라고 판단했다. 독자생존이 어렵던 소셜커머스 업체(티몬, 위메프)가 오픈마켓으로 전환돼 이커머스 업계가 오픈마켓, 온라인 종합 쇼핑몰, 온라인 전문몰(특정 카테고리 상품군만 판매)로 재편되는 효과가 있다고 기대했다.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한국 온라인쇼핑 시장 규모는 150조원대(2022년)다. 이 가운데 오픈마켓에서 발생하는 거래액은 82조6000억원 규모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오픈마켓 시장 1위는 네이버(42.41%)이며 2위는 쿠팡(15.91%)이다. 이 가운데 큐텐그룹 계열사의 점유율은 8.35%다. 티몬 4.60%, 위메프 2.9%, 인터파크커머스 0.85% 등이다. 시장 규모를 기준으로 이들 회사에서 발생하는 한 해 거래액을 계산하면 7조원 규모다.
사라진 1조원…누가 죄인인가[티메프 사태, 이커머스 포비아②]
그러나 이 기준도 2022년이다. 티몬과 위메프가 최근 현금 확보를 위해 지난해부터 다양한 할인 행사를 전개하면서 거래액은 더 늘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시장조사업체 등에 따르면 티몬과 위메프를 이용하는 이용자는 약 870만 명에 달하며 최근 월간 거래액은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구영배가 규제 사각지대를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던 것도 공정위의 책임 중 하나다. 구영배는 정산주기에 대한 정확한 원칙이 없는 ‘자율규제’를 방패처럼 사용했다.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르면 대금 정산은 최장 60일을 넘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커머스는 예외다.

이로 인해 은행권의 ‘선정산 대출’ 상품도 있다. 티몬과 위메프에서 두 달 가까이 정산을 해주지 않아 셀러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판매된 것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다. 이 상품의 이율은 6%다. 정산만 제때 받으면 6%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당장 사용할 자금이 없는 탓에 빚을 내서 돈을 마련한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이 지난해 취급한 선정산 대출 규모는 1조2300억원에 달한다.

7월 30일 국회에 나온 한기정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정산주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했다. 한 위원장은 “(초기에) 사측에서 정산 오류라고 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제도 미비점에 대해서 사과한다”고 밝혔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과 이복현 금감원장(오른쪽). (사진=연합뉴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과 이복현 금감원장(오른쪽). (사진=연합뉴스)
◆ 책임자 3. 금감원 이들의 자금 흐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도 있다. 금융감독원은 2022년 6월과 2023년 12월 두 차례에 걸쳐 티몬과 위메프의 경영지도비율 준수를 위한 분기별 경영개선계획 협약을 체결했다.

이들 회사는 금감원에 신규 투자 유치를 약속했다. 티몬은 2022년 15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했으며 위메프는 2023년까지 2년간 3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전달했다. 아울러 2023년 말까지 자기자본을 0원 이상으로 개선해 완전자본잠식 상태를 해결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들 회사는 어느 것도 지키지 않았고 금감원은 이를 눈감아줬다. 심지어 지난해 말 진행한 2차 MOU에서 자기자본 0원 기준을 2026년으로 미뤄주기도 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미상환·미정산 금액과 추가로 신규 유입되는 자금의 일부분은 별도 관리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며 “(티몬과 위메프도) 건건이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행이 안 됐다. (관리감독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심지어 티몬과 위메프는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체들에 대한 지급보증보험도 가입하지 않았으나 금융당국은 이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고객이 신용카드를 이용해 상품을 구매하면 ‘카드사→PG사→티몬→입점 업체(셀러)’ 순으로 지급된다. 고객은 신용을 담보로 상품을 구매하기 때문에 중간 관리 업체인 PG사가 우선 티몬에 돈을 지급하고 추후 카드사에서 돈을 받는다. 환불은 역순이다. 지급보증보험은 환불 과정에서 티몬이 PG사에 환급을 제때 하지 않으면 보험사가 그 돈을 우선 처리해주는 제도다.

7월 30일 국회 정무위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티몬과 위메프가 PG사를 대상으로 하는 지급보증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게 맞냐”고 묻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맞다. 가입이 안 돼 있다”며 “이커머스 업계를 제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