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책은 양면성을 갖는다. 선제성(preemptive)을 생명으로 여기는 통화정책은 기준금리와 같은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수단이 타이밍을 잃으면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난다. 최근 들어 제조업과 고용지표 등이 부진하게 나오면서 미국과 한국 내에서 고개를 드는 금리인하 실기 논쟁이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가장 중요한 금리인하 시기를 놓치는 것은 물가와 금리, 그리고 경기 간 트릴레마에 빠져 있을 때다. 조세와 복지, 그리고 국가채무 간 상충관계인 재정 트릴레마에 빗댄 통화 트릴레마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면 물가가 오르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침체되는 현상을 말한다.
트릴레마 국면에서 금리 변경이 얼마나 적정했는지를 평가하는 가장 보편적인 잣대가 ‘테일러 준칙(Taylor’s rule)’이다. 산출 공식은 실질 균형 금리에 평가 기간 중 물가를 더한다. 여기에 평가 기간 중 물가에서 목표치를 뺀 수치에 정책반응 계수(물가와 성장에 대한 통화 당국의 정책 의지를 나타내는 계수)를 곱한다. 그리고 평가 기간 중 성장률에 잠재성장률을 뺀 값에 정책반응 계수를 곱한 후 모두 더해 산출한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테일러 준칙에 의해 도출된 적정수준보다 높아져 2022년 3월 이후 Fed의 금리인상이 얼마나 급하게 이뤄졌던가를 입증해 주고 있다. ‘말이 뛴다’는 의미의 캘로핑 방식의 금리인상으로 ‘r 스타(r*)’ 금리가 ‘r 더블스타(r**) 금리’보다 높아짐에 따라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이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올해 초 전미경제학회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논의됐던 r* 금리는 실물경기를 침체시키거나 과열시키지 않는 중립금리로 알려져 있다. 당시 부각됐던 r** 금리는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또 하나의 중립금리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지면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져 각종 위기가 발생한다.
테일러 준칙은 정책반응 계수에 따라 적정금리 수준이 달라지는 한계를 갖고 있다. Fed와 한은처럼 물가안정에 우선순위를 두면 적정금리 수준이 높게 나와 경기침체 우려가 제기되더라도 금리인하에 주저하게 된다. 정책반응 계수 또한 외부에서 알 수 없어 적정금리가 산출되더라도 왜 그 수준이 나왔는지 논란이 된다.
통화정책의 애매모호한 점을 배제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통화 준칙(monetary rule)’이다.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통화론자가 주장하는 이 준칙은 물가 목표치를 2%를 설정해 놓았을 경우 물가상승률이 목표선을 웃돌면 자동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밑돌면 금리를 내려 중앙은행의 자유 재량적 여지를 배제시켰다.
하지만 금융위기와 같은 비상사태나 최근과 같은 초불확실성 시대에서 물가와 경기, 경기와 고용, 고용과 물가 간의 정형화된 사실(stylized facts)이 흐트러질 때는 통화 준칙에 따른 금리 변경은 무력화되는 단점이 있다. 작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에서 다시 한번 입증됐듯이 고도의 경륜과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2008년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를 맞아 당시 밴 버냉키 Fed 의장과 재닛 옐런 통화정책 부의장이 제시한 것이 ‘최적통제준칙(OCR·optimal control rule)’에 의한 금리 변경 방식이다. OCR은 양대 책무(물가안정과 고용창출)로부터의 편차를 최소화하는 기준금리 경로를 말한다. 그때그때 통화정책 여건을 반영하는 유연성 면에서 적정금리를 토대로 운용하는 테일러 준칙과는 차이가 난다. ◆ 문제는 목표 달성 여부
문제는 금리 변경 시기를 OCR 경로보다 앞당기거나 늦출 때 의장을 포함한 Fed 인사의 ‘자의성’이 너무 많이 개입된다는 점이다. 2022년 3월 이후처럼 금리를 올릴 때 ‘에클스 실수’를, 최근처럼 금리를 내릴 때 ‘볼커의 실수’를 우려하면 OCR 경로보다 앞당겨 선제성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제지표를 해석할 때 Fed의 통계 조작 문제가 자주 거론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통계 조작은 정량적 통계의 ‘작성’ 단계에서 발생한다. 작성 조작은 각각의 통계당 세부 구성 항목 선정과 가중치 설정 문제로 귀결된다. 물가 지표의 경우 국민 경제생활에 민감한 항목을 제외하거나 가중치를 낮게 설정하면 늘 안정된 것처럼 나온다.
Fed가 비판받는 통계 조작은 양대 책무지표 해석상의 문제다. 같은 지표라 하더라도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의지가 강할 때는 ‘불안’하다고 해석해 매파 결정을 한다. 하지만 경기부양 등을 고려해야 할 때는 ‘안정’됐다고 해석하고 비둘기파 결정을 한다. Fed의 인사가 어떤 성향으로 많이 채워지느냐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금리 변경이 적절한 시기에 했더라도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간 관계가 일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4년 이후처럼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시장금리가 떨어지는 ‘그린스펀 수수께끼’, 코로나 사태 이후처럼 기준금리를 올리면 시장금리가 더 올라가는 ‘파월 수수께끼’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케인즈언의 통화정책 전달경로(transition mechanism·기준금리 혹은 통화공급 변경→시장금리 등락→총수요 가감→금리·고용·경기 조절)가 잘 작동되지 않는 것도 금리 변경 효과를 반감시킨다. 기준금리 변경에 따라 시장금리가 의도한 방향으로 조절됐다 하더라도 민간소비와 기업의 설비투자 등 총수요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변경 방식이 갖고 있는 한계 때문에 요즘 미국에서는 금리인하 실기 문제를 잘 따지지 않는다. 통계 기법상 요인분석으로 기간별 금리와 정책목표 간의 유의성을 따져보면 단기금리는 물가에, 장기금리는 경기에 더 민감한 것으로 나온다. 기준금리 변경 여부와 관계없이 장단기 금리를 조절하면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처럼 물가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침체가 우려되면 Fed는 단기채를 팔고 그 대금으로 장기채를 사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T·operation twist)’를 추진하면 물가안정과 경기부양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단기금리는 올려 남아 있는 물가를 잡고 장기금리는 내려 총수요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가 주관하는 분기별 국채발행물량(QRA)을 조절하는 것도 OT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정책수단이다. QRA는 해당 분기 전체 국채 발행을 줄이거나 그대로 두더라도 단기채 발행을 늘리는 대신 장기채 발행을 줄여 물가안정과 경기부양 목표를 달성하는 제3의 방안이다. 만기 이전에 장기채를 상환하는 ‘바이백(buy back)’을 병행하면 더 효과적이다.
최근 들어 경기침체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미국 경제는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견실하다. 골디락스(goldilocks), 노랜딩(no landing)이란 용어가 나올 정도다. 금리인하 실기 비판을 받고 있는 한은은 이런 노력을 얼마나 해왔는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때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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