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와 괴담[김홍유의 산업의 窓]
1780년 청나라의 풍경으로 ‘열하일기’의 한 대목이다. 사행길을 떠나는 연암 앞에 한 노파가 나타나서 눈물을 글썽이며 먼저 간 일행이 자기의 참외를 갖고 달아났으니 참외값을 대신 물어달라고 애원한다. 더구나 도망가면서 자기 얼굴에 냅다 참외를 던져 아직도 참외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 늙은이 혼자 길가에서 참외를 팔아 근근이 연명하는데, 아까 당신네 조선 사람 사오십 명이 이곳을 지나다가 잠시 쉬면서 처음엔 값을 내고 참외를 사 먹다가 떠날 땐 참외를 양손에 한 개씩 쥐고는 소리를 지르면서 내뺐습니다.”

연암은 주머니를 탈탈 털어 71푼을 내고, 그래도 못 믿는 노파에게 주머니를 홀라당 뒤집어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나서야 노파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저녁 나절 일행을 만난 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혼을 내려는 찰나에 노파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분을 참는 일 외에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왜 우리나라 사람은 많고 많은 오이 식물인 참외, 수박, 호박, 멜론, 오이를 제쳐놓고 ‘진짜 오이’, 즉 참외라 불렀을까? 참외는 한자로 진과(眞瓜)다. 참 진(眞)자에 오이 과(瓜)자를 쓴다. 바로 보릿고개의 아픔이었다. 식량이 떨어지고 먹을 것이 없을 때 ‘짠’ 하고 나타나는 과일이 참외다. 참외는 과일이 아니라 식량의 대용이었다. 중국 격언에 “참외가 익으면 저절로 꼭지가 떨어지고 물이 흐르면 도랑이 생긴다”라는 말이 있다. 때가 되면 저절로 무언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니 서두르지 말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참외는 소녀에서 처녀로 성숙하는 단계를 구분하는 말로도 쓰인다.

‘과년’한 딸자식이라는 표현이 있다. 과년의 표현에는 과년(過年) 혹은 과년(瓜年)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모두 결혼 적령기의 딸, 한창 이쁠 때의 나이를 말한다. 과(瓜)를 파자(破字)해 보면 팔(八)과 팔(八)로 나누어진다. 여덟과 여덟이 둘이니 더하면 열여섯이다. 그러니까 이팔청춘 열여섯 살이 바로 과년이다. 춘향이도 이팔청춘일 때 사랑에 눈을 떴고 사랑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공선옥의 ‘내 기다림의 망루’에 나오는 원두막을 잊지 못한다. 그곳에서 첫사랑에 눈뜬 소녀가 소년을 사랑할 때 그 소년이 원두막으로 찾아와 참외를 사려고 할 때 소녀는 뙤약볕 밭고랑에 얼굴을 처박고 그 긴 시간을 견뎠다.

“왜 그렇게 그날 밤은 별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그날 밤같이 별이 많은 밤은 내 평생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주먹만 한 별이 하늘에 주렁주렁 열려 있던 밤. 나는 어머니 몰래 어머니 분을 바르고 그곳에 나갔었다. 얼굴에는 어머니 분 찍어 바르고 옷은 언니 옷 주워 입고 가슴에는 바람이 잔뜩 들어서는 나는 가슴이 두근반 서근반으로 그곳에 ‘머스매’를 만나러 그 야심한 밤에 나갔던 것이다.”

막바지 더위와 경제적 보릿고개로 가장 힘든 시기를 국민은 보내고 있다. 또한 연암의 사행길에 나타난 노파처럼 각종 괴담으로 혼란한 정국을 뒤집어 보려는 안일한 사람들이 득실되고 있다. 이런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더욱더 힘들어하고 있다. 경제도 어려운데 보름 정도 지나면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충청도 지역 추석놀이 중에 거북놀이가 있다. 두 사람이 거북이 시늉하고 느린 걸음으로 움직인다. 동네 사람들이 거북이를 앞세우고 큰 집을 찾아가 “바다에서 거북이가 왔는데 목이 마르다”면서 음식을 청하고 들어가면 주인은 음식을 내어 일행을 대접한다. 한 집에서 잘 먹고 난 다음 다른 집을 찾아간다. 이때 얻은 음식은 가난해서 추석 음식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어 협동과 공생(共生)의 전통 놀이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인들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한 번쯤은 참외와 거북놀이처럼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 주면 안 될까? 생각해 본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 전 한국취업진로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