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세텍에서 열린 국제아웃도어캠핑&레포츠페스티벌 서울 스페셜 시즌에서 한 업체 관계자가 반려견 용품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한국경제신문
지난 7월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세텍에서 열린 국제아웃도어캠핑&레포츠페스티벌 서울 스페셜 시즌에서 한 업체 관계자가 반려견 용품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한국경제신문
“오늘 집 장판(바닥재) 바꿨어요. 바닥이 미끄러워서 우리 아이 슬개골 탈구가 걱정되더라고요.”

“유모차(개모차)를 샀다면 선풍기, 방석 매트, 컵홀더 등은 당연히 구매해야죠.”

“매달 펫박람회가 열리는데 주차 대기 줄만 한 시간 넘게 기다려요.”

반려동물 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동물병원이나 사료·간식 등 일부 분야에 국한됐다면 이제는 유치원, 펫택시, 화장품·패션, 상조 등 서비스가 다양해졌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반려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반려인들은 조사 시점 기준 최근 1년간 병원(80.4%) 외에도 미용(51.8%), 놀이터(33.2%), 호텔(16%), 유치원(10.6%), 펫시터(6.7%), 방문훈련(5.9%), 펫택시(5%), 장례(4.9%) 등 서비스를 이용했다고 응답했다(복수응답).

최근엔 펫셔리(펫+럭셔리)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펫+패밀리)부터 반려동물과 나를 동일시하는 펫미족까지 등장하면서 관련 시장에 고급화 바람이 거세게 부는 모습이다. 1200만원이 넘는 캠핑용 반려견 침대가 있는가 하면 225만원짜리 개집과 밥그릇(160만원), 유모차(150만원) 등 생활용품에서도 프리미엄 상품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가낳지모’(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모셨다)라는 말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농식품부는 국내 반려동물 시장이 2022년 62억 달러(약 8조원) 규모에서 2032년 152억 달러(약 20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삼정KPMG 경제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글로벌 반려동물 시장 규모를 2022년 3200억 달러(약 430조원)에서 2030년 4930억 달러(약 66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펫코노미(펫+이코노미) 시장이 팽창하자 대기업과 스타트업 구분 없이 많은 기업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하림은 2017년 하림펫푸드를 설립하고 국내 펫푸드 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했다. hy도 2020년 유산균 간식 등을 포함한 펫 전문 브랜드를 론칭하며 반려동물 시장에 뛰어들었다. 최근엔 현대백화점, 쿠팡 등 유통 기업부터 LG유플러스, 아모레퍼시픽, KB금융, 동아제약 등 기업이 출사표를 던졌다.

혹한기인 벤처캐피털 투자도 펫이코노미 분야는 투자금이 늘어나고 있다. 벤처투자 정보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반려동물 분야의 투자는 전년 대비 88.7% 증가한 136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스타트업 투자 금액 증가율이 가장 높다.

김수경 삼성KPMG 연구원은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는 블랙스톤, 제너럴애틀랜틱, 엘캐터튼, PAI파트너스 등 글로벌 투자사들이 펫 섹터에 거대 자금을 투입하며 기회를 모색 중”이라며 “이들은 전체적인 펫 케어(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마켓 플레이스라든지 프리미엄 펫사료·간식 제조업체 등 고성장이 예견되는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5월 19일 김포국제공항에서 반려견과 보호자들이 반려동물 여행플랫폼 반려생활에서 출시한 댕댕이 제주 전세기에 탑승해 제주국제공항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공항사진기자단
5월 19일 김포국제공항에서 반려견과 보호자들이 반려동물 여행플랫폼 반려생활에서 출시한 댕댕이 제주 전세기에 탑승해 제주국제공항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공항사진기자단
◆“2030 여성 댕댕이 전세기 타고 여행 가서 견생샷”

펫 동반 여행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통신사와 항공사는 손을 잡고 ‘반려견 전세기’까지 띄웠다. LG유플러스는 반려가구 커뮤니티 플랫폼 ‘포동’을 통해 반려견 동반 전세기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제주항공과 함께 오는 10월 반려견 동반 전용기 ‘포동 전용기’ 네 번째 운항을 진행한다.

앞서 포동이 올해 4월부터 세 번에 걸쳐 띄운 포동 전용기는 모든 티켓이 완판됐다. 반려견 전용기 인기에 힘입어 포동 가입자 수도 늘었다. 반려견 전용기 운항 직전인 지난 3월 말엔 가입자가 46만 명이었는데 9월 첫째주 62만 명으로 약 35% 증가했다.

펫 동반 여행객이 늘면서 업계에선 반려동물 여행 특화 상품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반려동물 동반 객실은 물론 비반려인과의 마찰을 피할 수 있는 독채 펜션이 불티나게 팔렸다. 일반 반려동물 숙소 대비 요금이 45%가량 비쌈에도 입소문을 탄 독채 펜션은 수개월 전 예약이 마감되기도 한다.

호텔에서도 반려동물 전용 패키지를 내놓았다. 조선팰리스는 연말까지 반려동물 전용 ‘나이트 아웃 위드 마이 펫 시즌4’ 패키지를 운영한다. 반려견과 함께 편안하면서도 프라이빗한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객실에 고급진 펫 용품이 사전 준비된다. 반려견의 모종에 맞춰 브러시를 선택하는 식이다.

트렌드를 이끄는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생활인 2030 여성층이다. 이들은 견생샷(특별하게 잘 나온 개의 사진)을 공유하며 여행을 즐긴다.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반려동물 여행플랫폼 ‘반려생활’이 기획한 댕플스테이(반려견과 함께하는 템플스테이) 상품이 2회차 판매에서 30초 만에 완판됐다. 반려견과 함께 사찰복을 입고 점심공양, 108배 체험 등 즐기는 모습이 SNS상에서 화제가 되면서다.

정부와 지자체들도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이색적인 여행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산림청은 경북 김천시에서 국립 최초 반려견 전용 야영장(국립김천숲속야영장)을 개장해 지난 7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충남 보령시는 지난 6월부터 대천해수욕장에서 간식 교환소와 반려견 샤워 시설 등이 설치된 펫비치를 운영 중이다.

올해 상반기 SNS를 통한 ‘반려동물 동반 여행’ 언급량은 2021년 상반기 대비 3.3배 증가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펫금융’ 적금부터 신탁·보험까지

금융권에선 펫적금, 신탁, 카드 등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우선 은행들은 반려동물 관련 적금 상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유기견·묘를 입양했다면 우대금리를 제공하거나 관련 상품에 가입하면 반려동물 관련 용품 구매에 쓸 수 있는 쿠폰을 제공하는 식이다.

부산은행 펫적금은 반려동물의 활동을 기록하는 취미가 있는 반려인들에게 매력적이다. 반려동물 관련 활동에 따라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다. 모바일뱅킹 내 펫다이어리를 작성하면 최대 0.5%포인트(12개월 상품) 우대금리를 얻을 수 있다. 평소에 반려동물 사진을 자주 찍는다면 달성이 어렵지 않다.

국민은행의 ‘KB반려행복적금’은 반려동물 정보 등록과 산책, 양치 등 애정활동 평가 등을 통해 최대 연 5%의 이자를 준다. 반려동물 정보 등록제도는 동물의 보호와 유기 방지를 위해 제정된 제도다. 앞서 국민은행은 2017년 반려동물 신탁상품인 ‘KB펫코노미신탁’을 출시한 바 있다. 2021년 7월에는 반려동물의 양육을 위한 자산관리부터 상속까지 가능한 ‘KB반려행복신탁’을 내놨다. 펫신탁은 현재 주인이 질병이나 사망 등으로 인해 반려동물을 돌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본인 사망 후 반려동물을 돌봐 줄 새로운 주인에게 자금을 주기 위한 상품이다.

9월 들어 카드사들도 펫금융 상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9월 11일 KB국민카드는 반려동물을 위한 펫보험, 비대면 건강관리, 쇼핑 할인쿠폰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구독 서비스 ‘펫케어’를 출시했다. 사고·질병 대비에 중점을 두는 펫보험보다는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양한 셈. 이 서비스는 최대 보험료가 월 8만~9만원에 달하는 펫보험과 달리 월 1만원 미만의 가격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9월 4일엔 신한카드가 반려인구 특화카드 ‘더 펫 카드’를 출시했다. 반려동물의 등록부터 장례까지 생애주기에 따라 차별화된 할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컨대 반려동물이 한창 성장할 때에는 동물병원과 전용몰의 할인한도를 동일하게 100%로 유지하다가 노화가 진행되면 동물병원 할인한도는 160%, 전용몰은 40%로 조정할 수 있다.

국내 펫보험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펫보험을 판매하는 국내 10개 보험사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국내 반려동물 개체수 대비 펫보험 가입률은 약 1.4%에 그쳤다. 스웨덴(40%), 영국(25%), 일본(12%)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과잉진료, 부정청구 등이 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다만 성장세는 가파르다. 지난해 말 펫보험 계약 건수는 총 10만9088건으로 전년보다 52% 뛰었다.

김수경 연구원은 “반려동물 보험은 이미 해외에서 선택적 지출이 아닌 필수 지출”이라며 “한국도 이 같은 소비 의식 변화로 펫금융 상품의 중요성이 차츰 높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해외 펫보험 시장이 인수합병(M&A)을 통해 펫 헬스케어로 진화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김 연구원은 “영국 펫보험 시장을 리딩하는 매니펫츠는 반려견·반려묘가 우연한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를 대비해 보호자들의 값비싼 수의사 치료 비용 고민을 덜어줄 보험 플랜을 넘어 펫 헬스케어 서비스로 사업 다각화를 이뤘다”며 “예컨대 벼룩·진드기 등을 방지하는 보호제를 정기구독 형태로 제공하며 반려동물의 건강한 상태를 지원하는 식이다. 이를 위해 2021년 예방약 구독 서비스 제공 스타트업 벳박스를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사람처럼 먹고 꾸미고, 펫푸드·뷰티의 고급화 바람

내 새끼에게 건강한 사료를 먹이고 더 이쁘게 꾸미고 싶은 욕구에 펫푸드와 펫뷰티 시장이 고공성장하고 있다. 간식 하나를 고를 때에도 기존 동물성이 아닌 식물성이나 곤충 단백질 등이 있는지 성분을 따진다. 털 손질, 목욕, 샴푸, 황토 마사지 등이 포함된 반려견 미용은 1회에 20만원이 넘는 고가에도 예약이 꽉 차 있다. 심지어 반려동물이 쓰는 화장품의 종류는 사람들이 쓰는 일반 화장품과 다를 바 없다. 샴푸·컨디셔너·퍼퓸·스킨케어 제품 등은 반려동물 청결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알레르기 유발 성분이 없는 천연 성분 제품들까지 잇따라 선보이며 기능성 화장품 시장도 확대되는 추세다.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코스맥스 등 주요 화장품 기업들도 시장에 진입하면서 반려동물 화장품 고급화 진행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LG생활건강이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졌다. 2016년부터 펫 케어 브랜드 시리우스를 운영하며 샴푸, 탈취제 등 생활용품을 비롯해 사료, 간식 등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022년 비건 펫 샴푸, 데오 스프레이, 젤리 타월 등 생활용품 위주 제품으로 구성한 반려동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푸푸몬스터를 론칭하고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비건 인증을 획득한 제품으로만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