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려동물 보유세 도입을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올렸다. 이는 2020년 ‘2020∼2024년 동물복지 종합계획’에 포함됐지만 당시 거센 반발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사안이다. 이번에는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제3차 동물복지 종합계획’ 수립 과정에서 반려동물 보호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이 다시 검토되고 있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현재 반려동물 보유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으나 민간위원들 사이에서 다양한 정책적 대안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려동물 보유세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그는 2022년 대선 당시 반려동물에 일정한 세금을 부과하는 대신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단순히 과세라고 생각해 반발하기에는 유실·유기동물 문제가 반려인과 비반려인 모두의 사회 문제가 된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세금 부과 논의를 분수령으로 반려동물에 대한 제도적 변화는 물론 사회적 인식이 변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한다. 반려동물 인구가 2000만 명에 달하고 관련 산업이 8조원 규모로 성장한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한경비즈니스는 반려동물 세금과 관련한 논쟁 7가지에 대해 연재한다.
#. 시설이 없는데 혜택이라니?8년째 개를 양육하는 우리 가족 모두는 개를 반려견으로 인식하지만 세금 문제만큼은 각자의 입장이 다르다. 우리 사회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반려인과 비반려인의 의견이 다르고 반려인 내에서도 찬성과 반대가 엇갈린다.
세금 논쟁이 첨예한 이유는 세금에는 세금을 부과하는 근거와 그에 따른 정당성, 즉 ‘과세 논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세를 찬성하는 이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유기동물의 수를 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반려동물과 관련된 정책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두 가지 주장은 왜 갈등을 빚는 걸까.
조금은 지루하지만 세금 문제를 이해하려면 과세 논리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과세 논리에는 두 가지 주요 원칙이 있다.
첫째는 세금은 그 세금으로 제공되는 공공 서비스나 혜택을 받는 사람에게 부과되어야 한다는 수익자 부담 원칙(Benefit Principle)이다. 도로나 공공시설 사용료가 해당된다. 자산을 소유함으로써 공공서비스나 혜택을 받는 것에 대한 비용 부담을 정당화하는 것도 이 원칙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동산 소유자는 그 부동산이 위치한 지역의 도로, 공공시설, 치안 등 공공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이러한 공공서비스가 자산의 가치 유지 또는 상승에 기여한다고 보기 때문에 자산을 보유한 사람은 그에 대한 비용을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둘째는 세금은 납세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부과되어야 한다는 능력에 따른 부담 원칙(Ability-to-Pay Principle)이다. 소득이 많거나 자산이 많은 사람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소득세나 부동산세가 이 원칙에 기반한다.
반려동물 보유세가 부과된다면 그 과세 논리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 부합할 수 있다. 반려동물 소유로 인해 발생하는 공공서비스 비용을 충당한다는 논리다. 반려동물 소유자는 반려동물과 함께 공공장소를 이용하거나 반려동물 관련 시설 등을 이용하게 된다. 이때 발생하는 공공 비용을 반려동물 소유자가 세금으로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지이다. 여기엔 반려동물 배설물 처리나 안전사고 예방 등 공공장소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포함된다.
독일의 경우도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개세가 부과된다. 고양이세가 없는 이유도 이와 같다. 집안에서 키우기 때문에 개처럼 산책을 하며 배설물 처리나 기타 공공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 역시 산책을 하지 않고, 집안에서만 몰래 기른다면 개세가 부과되지 않는다(동물복지법에 의해 반려견 산책이 의무이기 때문에 원칙상 불가하다). 한국에서 당장 이 원칙을 적용하는 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반려동물이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건축공간연구원의 유예슬 연구원이 2023년 펴낸 ‘반려동물 양육인구 증가에 따른 공공공간 조성 현황과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1월 기준 국내 반려동물 관련 공공공간은 123개소다. 1개소당 약 2만5000여 가구가 이용한다. 실제 ‘반려견 공원’은 한국 사회에서는 기피시설에 가깝다. 지난 4월엔 전남 무안군에서 반려견 공원을 조성하려다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혐오시설’이란 이유였다. 무안군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 이런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유 연구원은 “반려동물 관련 공공공간은 법적 규제와 주민 민원 문제를 고려해 주로 도시 외곽지역의 공원 등 자연녹지지역, 개발제한구역에 조성되며 기피시설에 인접해 입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규모 또는 임시 시설이 과반이며 매우 열악한 상황에 있다”고 지적한다. 모두가 이용 가능한 일반 근린공원에서도 반려견과 반려인의 설 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전국 각 지자체에는 반려견의 근린공원 출입금지를 요청하는 민원이 잇따르며 반려인과 비반려인 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유 연구원은 “장기적으로는 일반 근린환경을 반려동물 친화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반려인과 비반려인 모두의 인식 개선과 펫티켓 준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금을 통해 반려동물 관련 문제를 해결한다는 논리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 부합한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공공서비스나 혜택이 실제 반려인에게 함께 제공되어야 세금 부과에 따른 반발도 줄어들 것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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