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에서 본 한강 열풍과 책 보기
유민영 북살롱텍스트북 대표
정보라는 것이 어떤 취득의 성취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나쁜 마음에 동참하는 것 같아 불편해질 때가 많은 까닭이다. 그날도 그랬다. 어떤 논픽션도 픽션을 따라갈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그렇다며 얘기하다 결국 옛날 얘기로 갔다가 건강 얘기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허걱, 이건 뭐지’ 하는 마음이 스쳤다. “한강이라는데.” “뭐가 한강이에요?” “그게 아니라 노벨문학상 한강이래.” “정말요.”
다들 스마트폰으로 손과 눈이 돌아갔다. “어, 정말이네요.” 반신반의에서 탄성과 환호로 바뀌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좋은 일이 생겼다. 오랜만에 좋은 일로 대취했다. 다들 그랬다. “이게 얼마만인가.”
다음 날 아침은 금요일로 서점에서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9시에 수업을 하고 10시에 문을 여는데 문밖에서 벌써 기척이 있다. 어젯밤 ‘이런 작가들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면 좋겠다’ 코너에 한강 작가의 책을 주로 둔 것을 자랑한 포스팅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사진에 책이 포착된 것이다. 맨 먼저 오신 분은 배우였는데 소중하게 읽겠다면서 책을 사서 감싸안고 가셨다. 그 뒤로도 전화 벨이 많이 울렸다. “한강 작가 책 있어요? 살 수 있어요?” 며칠간 서점하면서 큰 호사를 누렸다. 작가의 거주지가 있고 직접 운영하는 ‘책방 오늘’이 있는 서촌은 순례객들이 넘쳐났다. 금요일 우리 서점은 책 오픈런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했고 개점 이래 가장 많은 책을 팔았다. ‘만성 적자’ 서점의 미래가 바뀔까책과 서점은 한강 작가의 수상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긴 하다. 한강 작가가 얘기했듯이 서점은 적자다. 한강 작가의 말처럼 어떤 대가도 없이 좋다고 생각되는 책을 진열해 두면 그 책들을 손님이 만나게 된다. 그 반가운 순간들이 서점을 운영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
영국 가디언지가 먼저 발견해 보도한 근래의 ‘텍스트 힙’ 현상은 한국에서도 새로운 의미로 주목받았다. 김하나 작가는 스마트폰 대신 책을 보는 ‘지적 허영’과 ‘있어빌리티’라는 말로 포스팅용 보여주기라는 말을 되받아쳤다.
그렇다면 ‘책을 읽다’가 아니라 ‘책을 보다’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사람들은 왜 책을 다시 보게 된 것일까. 전통적으로 MZ세대 여성이 책 시장에서 주류다 하는 말과는 다른 말일까. 결정적 두 가지 변인은 코로나 이후와 AI로 보인다.
새로운 불안과 두려움이다. 오죽하면 미국의 아이비리그에는 마스크를 내리고 대화하는 대면법 수업이 생겼을까. 챗GPT와 옵티머스의 등장은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대화를 선호하는 마음을 만든 것은 아닐까.
한강 작가 이전에도 이런 징후는 존재했다. 책이 다시 팔리기 시작했다고 느낀 것은 여름이었다. 실제로 매출이 늘었다. 몇 가지 이유를 정리해 본다면 이렇다.
첫째, 서점은 외부다. 사상 최약체 시즌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야구장과 축구장에는 사람들이 넘친다. 새로 유입된 MZ 여성만이 아니다. 코로나 시절의 단절은 해방을 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밖으로 나오고 싶어했다. 가을의 언어는 단언컨대 ‘야장’이다. 밖에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서점도 책도 그 지점의 일부다.
둘째, 포스팅은 자기 증명이다. 새로운 소외에서 탈출하려는 작은 움직임 같은 것이다. 더군다가 근래에 등장하는 집단 크루 현상은 개인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어 존재 증명을 하려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연결된 세계를 향해 “나, 살아 있어”라고 외치는 함성과도 같은 것 아닐까. 특히 잘나가는 에세이를 보면 “나, 잘났어”라는 성공 스토리 대신 함께 성장하는 자기계발 모멘텀과 스토리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미 성공한 사람만 책을 쓰는 시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책은 동시성을 구현하고 관심받기와 경험하기의 합체다.
셋째, 알고리즘에 대한 저항이다. 하루 종일 알고리즘이 공격하는 유튜브를 보는 나를 발견하는 것도 디지털 세계에 대한 반대 심리를 만드는 것일 수 있다. 순간 무섭게 느껴지는 공격을 받았을 때 숨쉴 틈을 만들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너의 고독의 순간을 만들어라’는 그래서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책은 비대면 접촉이라는 점에서 대면 만남이라는 큰 장벽을 직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안전하기도 하다.
넷째, 책은 새로운 쇼츠다. 책과 쇼츠가 정반대편에 있다는 생각은 오해에 가깝다. 시적 언어와 단편 문장으로 구성된 책들이 많이 나가는 것을 보면 전통적인 기승전결의 언어는 지금으로서는 약점이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 짧은 것에 익숙해진 채로는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섯째, 책은 어쩌면 다이소다. 불황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 명품 열풍은 확실히 사그라들었다. 가성비 높은 매개를 확보하는 것은 중요해 보인다. 올 상반기 패션 시장을 강타한 것은 러닝화였다.
여섯째, 새로운 학습에 대한 욕구다. 서점에서 팔리는 주제와 형식은 굉장히 다양하고 구체적이다. 전문적인 책도 많다. 매일 친절하고 집요하게 전달되는 디지털 콘텐츠의 신뢰도에 책은 어쩌면 ‘페이크’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 아닐까.
한강 작가 수상 이후에도 책 보기 유행은 지속될 것인지 예측할 수 없지만 서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10월 10일과 12월 10일(노벨상 수상일)은 새로운 국경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인은 식민, 분단, 전쟁, 가난, 독재의 시절을 넘어왔다. 한강 작가의 작품은 당신의 현재와 우리의 과거라는 교차점에 존재한다.
모든 것이라 할 수 없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이 우리 사회에 책읽기와 글쓰기 확산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가 선배 작가의 글을 읽으며 자신의 세계관을 넓혀왔듯 다음 세대가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기록하고 창작해 주기를 기대한다.
유민영 북살롱텍스트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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