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 반포동 소재 래미안 원베일리 전경. 사진=삼성물산
서초구 반포동 소재 래미안 원베일리 전경. 사진=삼성물산
“예전에는 래미안 퍼스티지 놀이터가 개방이 안 됐다. 우리는 옆에 낡은 아파트에 살았는데 아이가 그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 했다.” 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주민의 말이다.

최근 몇 년간 국내 주택시장 수요자 대부분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집값이 한창 오르던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멀어진 아파트 가격을 올려다보던 무주택자의 마음고생이 가장 심했다.

이 과정에서 무주택과 유주택의 격차만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치솟은 시세만큼 더 오른 곳과 덜 오른 곳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며 지역별 계층화는 견고해졌다. 심지어는 같은 지역 내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단지와 상대적으로 낮은 단지, 심지어는 단지 내에서도 일명 ‘로열 동, 로열 호(RR)’와 아닌 세대의 가격 차이가 수억원에 달한다.

애초에 규격화된 상품으로 도입됐던 공동주택은 진화를 거듭하며 개별적 특성을 강화했다. 한강, 공원 조망을 극대화한 평면과 조경, 커뮤니티(주민공동 시설) 구성 등에서 차별화 요소는 다양해지고 있다. 통상 주거환경이 좋은 새 아파트가 낡은 아파트보다 더 비싸지만 이제 같은 동네에서도 고급단지와 일반아파트에 대한 인식 차이는 크다. 지역 대장주가 벌이는 격차
바로 옆인데 20억원 차이…고급 아파트의 조건은?[비즈니스 포커스]
이 같은 흐름이 두드러지는 곳은 재건축 사업이 연달아 진행된 서초구 반포동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주 및 철거를 진행 중인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와 3주구(AID차관 아파트)를 제외한 아파트는 총 20단지에 이른다. 인접한 잠원동에도 39개 단지가 자리한다.

반포 시세는 일명 구반포라 불리는 반포주공 일대가 견인해왔다. 지역 대장주는 새로운 신축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바뀌었다. 2011년 입주한 ‘래미안 퍼스티지’는 반포주공2단지를 재건축한 아파트로 조경과 커뮤니티에 힘을 준 일명 ‘3세대 아파트’의 진수를 보여줬다.

지상에는 조경뿐 아니라 카페테리아와 놀이터로 채워졌고 커뮤니티는 피트니스, 골프장, 사우나, 수영장 등 현재 준공되는 고급 아파트 공동시설의 구성 그대로를 담고 있다. 이처럼 넓은 지상 공간과 이용객이 많아야 합리적인 비용으로 운영이 가능한 수영장 등은 대단지 아파트가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5년 만에 바통은 신반포1차 아파트를 재건축한 ‘아크로리버파크’로 넘어갔다. 아크로리버파크는 지난 부동산 상승기 진입 시기에 입주하면서 갖가지 기록을 썼다. 특히 한강 조망을 극대화한 세대별 평면 및 30층 스카이라운지를 통해 ‘한강변 아파트’의 전성기를 불러왔다. 결국 한국 아파트 최초로 2020년 3.3㎡(평, 공급면적 기준)당 1억원 실거래가를 기록하며 전국구 아파트로 이름을 날렸다.

지난해 8월 입주를 시작한 래미안 원베일리는 신반포3차·23차, 경남아파트, 경남상가, 반포 우정에쉐르 등 5개 단지를 통합 재건축한 2990가구 매머드 단지다. 아크로리버파크와 나란히 위치해 한강 영구조망을 자랑하며 스카이브리지 설계로 외관을 특화했다. 아크로리버파크보다 대단지, 신축이라는 점과 조경, 안면인식 서비스 등으로 각광받으며 전용면적 84㎡ 타입이 60억원에 실거래돼 주목받았다. 3.3㎡당 1억7600만원인 셈이다.

현재 2000년 입주한 3개동 237가구 규모 반포푸르지오와 래미안 원베일리 전용면적 84㎡ 시세는 저층 기준으로도 20억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래미안 퍼스티지, 아크로리버파크와도 10억원 이상 차이가 난다. 반포푸르지오의 3.3㎡당 한국부동산원 시세는 7344만원이다. 조망권·조경, 민영아파트가 독점
바로 옆인데 20억원 차이…고급 아파트의 조건은?[비즈니스 포커스]
압구정 현대 등 재건축 대상 아파트 외에 한국부동산원 시세 3.3㎡당 1억원이 넘는 단지는 대체로 한강 인접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피트니스, 골프장 등 고급 커뮤니티, 가구당 2대에 가까운 주차공간은 필수다.

일부 단지는 1000가구를 한참 밑도는 규모에도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고급을 넘어 하이엔드(High-end)를 지향하는 나인원 한남,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등은 각각 341가구, 280가구에 불과하다. 이들 단지는 세대 대부분이 대형 타입으로 구성돼 있다. 대형 평수는 단위 면적당 가격이 낮아진다는 통념도 빗겨간 것이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대표는 “고급아파트와 고가아파트를 구분해서 본다면 나인원 한남이나 아크로 서울포레스트는 고급아파트에 속한다”며 “부유층들은 프라이빗한 생활을 추구하기 때문에 단지 수가 적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주상복합인 아크로 서울포레스트는 서울숲과 인접해 이렇다 할 조경 없이도 녹지를 누릴 수 있다. 각 세대와 커뮤니티에서는 서울숲과 한강이 한눈에 보인다.

이처럼 단지 안팎에 갖춰진 녹지와 한강 조망은 고급 아파트를 상징하는 공통적인 기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울 주요 도심 내에 녹지가 부족한 데다 한강 조망 역시 강 주변 입지를 선점한 아파트의 몫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서울시민 1인당 공원 면적은 16.2㎡로 뉴욕(14.7㎡), 파리(10.7㎡), 도쿄(4.5㎡)보다 넓다. 그러나 도시 외곽 산지와 올림픽공원, 한강공원 등 일부 대형공원을 제외하면 주거시설 인근 공원의 면적은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다. 재건축, 재개발 등 민간 개발을 통해 조성하는 단지 내 녹지가 인기 있을 수밖에 없다.

다른 선진국이라면 상업업무시설이 차지하고 있어야 할 한강변 땅은 1970년대 당시 직접 개발할 자금이 부족하던 정부가 민간에 개발을 맡기면서 지금껏 아파트가 차지하게 됐다.

대표적인 곳이 여의도였다. 여의도에 위치하던 공군비행장을 폐쇄하고 간척해 조성한 땅이 지금의 여의도로 탄생하게 됐다. 서울시는 아직까지도 재건축 아파트가 즐비한 동여의도에 법조단지를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개발자금이 부족하자 민간업체에 아파트 부지로 공급했다. 압구정 아파트지구 역시 정부가 현대건설에 매립부지를 개발할 권한을 주면서 현재의 압구정 현대, 한양, 미성아파트로 채워졌다.

김학렬 대표는 “선진국은 강변에 위치하던 항구나 철도부지 등을 복합개발하면서 랜드마크 업무시설 등이 들어섰지만 한국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며 “강북 한강변은 예전에 땅값이 저렴했던 곳으로 땅값이 비싼 도심에 진입하지 못한 빈민들이 집을 짓고 살다 재개발되면서 아파트로 채워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