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를 넘어…블록체인 특구 끝나는 부산의 미래는?[비트코인 AtoZ]
부산에 가면 /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 무작정 올라간 달맞이 고개엔 / 오래된 바다만 오래된 우리만. -‘부산에 가면’(최백호)

한국인 대다수는 부산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오래된 바다”와 “오래된 우리”는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하지만 그저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면 발전이 멎은 거겠죠. 다행히도 지금의 부산은 블록체인 기술 및 디지털 금융과 함께 변신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최대의 항만 도시이자 과거 동남부 해안 경공업의 중심도시였던 부산은 해방 이후 수출주도형 산업화의 중추였습니다. 1990년대에는 삼성차 공장이 들어서면서 자동차 산업 도시로 탈바꿈했고 부산영화제를 필두로 영화와 문화의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로는 국가균형발전전략에 의한 공공기관 이전으로 금융도시로 전환을 추진 중입니다. 한국거래소와 기술보증기금 등이 이미 부산에 자리 잡았고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산업은행 본사의 부산 이전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경공업→자동차→영화→금융, 그리고 이런 흐름 속에서 부산이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것은 5년 전인 2019년 8월입니다. 부동산 조각투자, 물류, 관광, 공공안전, 금융, 의료 등 6개 분야에서 실증사업을 진행했습니다. 부산국제금융센터에는 관련 기업 50여 곳이 입주했습니다. 그사이 한 차례 대통령 선거와 두 차례 부산시장 선거로 권력 지형은 바뀌었지만 블록체인 산업이 모이면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지역 발전으로 이어질 거란 기대는 굳건했습니다.

하지만 블록체인 특구는 현재 위태롭습니다. 특구의 기간이 올해 말로 종료되기 때문입니다. 특구의 블록체인 기반 실손보험 간편청구 서비스가 지난 3월 종료된 것이 결정적 이유였습니다. 관련법 개정으로 특구에서 실증사업을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특정 지역에 한해 규제 효력을 중단시키고 규제 때문에 불편했던 점을 신규 기술로 해소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는 게 특구의 취지인데 규제가 사라졌으니 근거가 사라진 겁니다.

문제는 지난해 승인받은 실손보험 사업 덕에 특구 기간은 2027년 말까지였는데 이 사업이 없어지면서 특구 기간도 그 이전에 승인된 사업에 맞춰 올해 말까지로 앞당겨진 겁니다. 부산시는 다시 새로운 블록체인 특구 사업을 제출했지만 9월 말 중소벤처기업부 심사에서 결국 탈락했습니다.

부산시는 특구가 없어도 어떻게든 블록체인 산업의 경험을 살리고 맥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입니다. 기존 특구 사업은 연장 신청하고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계획을 발판으로 삼겠다는 겁니다. 물류와 금융, 디지털 첨단산업을 뼈대로 하는 글로벌 허브도시는 지난해 말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뒤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해 약속한 사업이고 올해 총선에서 당선된 부산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합심해서 특별법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블록체인 특구 5년의 경험이 남았다 특구와는 별도로 진행된 블록체인 사업도 있습니다.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가 대표적입니다.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는 지난 5월 컨소시엄 참여 11개사가 전체 100억원의 출자금을 납입 완료하면서 공식 출범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비단’(BDAN, Busan Digital Asset Nexus)이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하는 한편 ‘센골드 인수’ MOU 체결이라는 굵직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센골드는 금, 은, 구리 등 7종의 귀금속 및 비철금속 교환권 거래가 가능한 플랫폼으로 118만 명 회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센골드에서 매수한 자산 교환권은 실물로 인출하거나 시세에 따라 매도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센골드에서 거래되는 모든 자산은 국내 1위 금 유통업체인 한국금거래소의 보안 금고 등에 실물자산으로 보관되며 회원이 인출 요청을 하면 즉시 내어주는 모델입니다. 올해 블록체인 및 디지털 자산 업계의 주요 트렌드인 RWA(실물자산) 토큰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는 센골드 인수를 시작으로 원자재, 탄소배출권 등 다양한 RWA와 토큰증권을 다루는 플랫폼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다양한 물자를 나르면서 경제와 문화 교류의 허브 역할을 했던 비단길처럼 BDAN이 디지털 금융의 허브가 되겠다는 포부입니다. 이를 위해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캄보디아 등의 디지털 자산 거래소와 협력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계에는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 금융의 세계적인 첨단도시를 꿈꾸는 도시가 많습니다. 부산이 이들과 경쟁해서 앞지르려면 ‘3대 융합’을 갖춰야 합니다. 부산이 허브가 되기 위한 3대 융합
첫째, 매력적인 지역 산업과의 융합입니다.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 금융은 사실 물리적 실체가 없어서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쓰인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없다면 그 산업의 발전을 믿고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부산 현지의 다양한 산업이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 금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접목시켜야 합니다. 부산영화제나 국제 게임전시회 지스타 같은 부산의 대표적인 행사에 기술과 금융이 결합하는 사례가 나오면 한층 매력적일 것입니다.

둘째, 탈중앙화와 규제의 융합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본질적으로 중앙통제적 방식을 거부하고 충돌합니다. 그렇기에 규제 당국과의 갈등이 잦습니다. 보기에 따라 이는 투자자 보호를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도 하고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방해 요소이기도 합니다. 탈중앙화와 규제가 어떻게 융합할 수 있는지를 부산이 선도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세계가 주목하는 모델이 될 것입니다.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가 시장감시, 상장심사, 예탁결제 등 거래소의 핵심기능을 모두 분리시키겠다고 선언한 것도 한 예입니다.

셋째, 시민 네트워크, 글로벌 네트워크와의 융합입니다. 부산 시민들에게 편리한 기술 및 금융 인프라로 기능해야 합니다. 시민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디지털 자산의 편리성과 도덕적 일탈 및 범죄 가능성 등 장단점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부산을 바라보는 세계인에게도 안도감과 희망을 줄 것입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이치입니다.

비극적이지만 부산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는 부산 사람들의 한숨 섞인 자조는 과장이 아닙니다. 65세 이상 인구가 23%에 달하면서 광역시 가운데 유일하게 ‘초고령사회’로 진입했고 20~39세 여성 인구는 11.3%뿐입니다. 2050년이면 인구 4분의 1이 줄어듭니다.

부산의 변신 시도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인구 감소와 지방소멸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시대에 제2의 도시마저 실패한다면 과연 희망이 있을까요. 블록체인 첨단도시 부산을 기대합니다.

김외현 비인크립토 한국·일본 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