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업 없이는 R&D·생산 비용 문제 해결 못 해
자금력·수익성 부족한 중소·케미컬 기업 타격 불가피
막강한 경쟁자인 중국이 세계 최대 시장을 잃게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 바이오 기업들이 수혜주로 뜨고 있다. 가장 반사이익이 기대되는 분야는 의약품위탁개발생산(CDMO)이다. 지금부터 법이 본격 시행되는 2032년까지 시차는 있지만 글로벌 빅파마들은 앞으로 달라질 생산 및 공급망 지형도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선제적 행동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감소를 앞두고 더 큰 시장을 노려야 성장이 가능한 국내 제약업계에는 호재다.
그럼에도 우려는 존재한다. 다른 산업에서 그랬듯 중국은 경쟁자이자 한국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디리스킹(derisking)으로 인해 한국의 GDP가 4% 축소될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CED) 38개국 GDP는 1.5% 줄어드는데 비해 감소폭이 크다.
제약·바이오 시장에서도 중국은 저렴한 단가와 틈새시장 공략을 무기로 영향력을 넓혀왔다. 이미 임상시험위탁(CRO)과 원재료 공급 측면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특히 자금력 등이 부족한 중소 바이오텍과 제약사에는 생물보안법 시행에 대한 대응책이 절실하다. 양극화한 중국 의존도
현재 생물보안법안에 우려 기업(A그룹)으로 명시된 곳은 우시바이오로직스, 우시앱텍, 베이징유전체연구소(BGI), MGI, 컴플리트지노믹스 등 5개사이다. 올해 1월 상정됐을 때만 해도 리스트에 없었던 우시바이오로직스가 5월 하원 상임위 상정을 앞두고 추가됐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국내 대표 생물보안법 수혜주로 부상했다. CDMO 시장에서 우시바이오로직스의 강력한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단기간에 세계 1위 규모의 생산능력(1~4공장 합산 6만4000L)을 갖춘 글로벌 CDMO 기업으로 자리를 잡은 상태다.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투자는 물론 코로나19 확산 시기를 거치며 발주처인 글로벌 빅파마와 협력관계를 다졌다.
여기에 중국 바이오 업체 규제라는 호재까지 맞게 됐다. 바이오 업계에선 삼성바이오가 우시바이오의 고객과 파이프라인을 빠르게 흡수하며 글로벌 CDMO 매출 2위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 기업들의 전망도 밝다. 지난해 말 바이오테라솔루션즈가 아바스틴(성분명 베바시주맙) 복제약 ‘아브지비’에 대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허가를 받는 등 중국 바이오시밀러 기업들이 미국 시장 공세를 강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물보안법 입법 과정이 급물살을 타면서 현재는 이 같은 공세에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다. 당장 A그룹에 속한 중국 바이오시밀러 회사는 없지만 B그룹이나 C그룹에 속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약가 인하 정책의 일환으로 바이오시밀러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셀트리온은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미국 시장에 피하주사제형(SC) 자가면역치료제인 짐펜트라(성분명 인플릭시맙)를 출시하면서 서정진 회장이 직접 직판 영업에 나섰다. 연내에 지분 100% 자회사를 세워 CDMO 시장에도 본격 진출한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올해 6월 독일 CDMO 기업인 IDT바이오로지카 지분 60%를 인수하며 위탁생산 시장에 발을 들였다. CRO·원재료 중국 비중 높아 이 같은 대형 바이오 업체들은 대부분 중국의 ‘바이오 벨류체인’과 거리를 두고 있다. 세계 의약품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가 특히 높은 분야는 원료의약품(API)이다. 중국의 원료의약품 점유율은 3분의 1수준으로 인도와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선진국 정부가 일제히 약가를 낮추는 정책을 쓰면서 생산비용이 높은 선진시장 내 원료의약품 업계는 위축된 상태다. 이에 따라 세계 의약품 시장은 만성적인 공급부족에 시달리게 된 동시에 중국이 원료 시장점유율을 급격히 확대할 기회를 잡게 됐다. 미국 생물보안법이 하원에서 패스트트랙을 통해 신속하게 처리된 배경도 중국에 대한 의약품 의존도를 낮추려는 데 있다.
CDMO 업체들은 주로 발주처가 지정한 업체로부터 고품질 원재료를 공급받도록 되어 있다. 생물체의 세포나 호르몬을 원료로 배양, 정제하는 섬세하고 까다로운 공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라이프사이언스솔루션즈(Global Life Sciences Solutions Singapore), 씨그마알드리치코리아(머크 관계사), 써모피셔사이언티픽솔루션스 등으로부터 원재료를 공급받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현재 중국산 원재료는 쓰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바이오의약품에는 신뢰도 문제로 중국산을 잘 공급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부가가치가 높은 바이오와 달리 가격경쟁이 치열한 화학합성 의약품의 중국 원료 의존도는 심화하고 있다.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엄승인 제약바이오협회 전무는 “우리 협회에 회원사 중 원료 의약품 기업이 몇 년 전 100개사 정도였는데 지금은 소수밖에 남지 않았다”며 “국산 원료의약품을 사용했을 때 세제 혜택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도 글로벌 의약품 생산기지로서 거듭나려면 원료의약품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품질 확보의 측면에서 FTA와 EMA(유럽의약품청) 인증을 받은 제조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오의약품 또한 전임상과 임상을 비롯한 연구개발 과정에는 중국 업체들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지적이다. 셀트리온은 항체약품접합체(ADC) 신약 개발을 위해 우시XDC와 협력한다. 셀트리온, 리가켐바이오에 임상 물질을 생산해 공급하는 우시XDC는 차세대 바이오의약품인 ADC 기술에 특화된 위탁연구개발생산(CDRMO) 기업이다.
이 회사는 우시바이오로직스 관계사이나 분사를 통해 홍콩 거래소에 상장됐다. 생물보안법에 직접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법안이 시행되면 제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시행까지 수년의 시차가 있는 만큼 우시XDC의 대체재를 구할 기회는 충분하다.
다만 우시앱텍 등 중국 CRO 의존도가 높은 중소 바이오텍은 앞으로 급격한 R&D 비용 상승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중국 CRO는 저렴하게 임상을 진행할 뿐 아니라 고객사가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맞춤형’으로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2년 금리인상 이후 바이오 벤처 투자규모가 절반 가까이 감소한 상태에서 임상 비용 증가는 바이오텍의 경영난을 부추길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확실한 데이터를 보여줘야 투자를 받을 수 있는 현재의 환경에서 중국 CRO 의존도가 높은 중소 바이오텍의 어려움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며 “국내에 자체적인 CRO 산업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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