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에선 현대제철 포항2공장에 이어 포스코에서 2개 공장의 셧다운을 결정하면서 3개의 공장이 멈춰설 예정이다. 국내 산업을 떠받치는 철강 공장들이 문을 닫는 이유는 중국발 공급과잉 때문이다.
글로벌 철강 시장에서 공급과잉 현상이 지속되고 중국 등 해외 저가 철강재의 공세로 수익성이 악화한데 따른 조치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1∼9월) 중국에서 수입된 철강재는 673만 톤으로 전년 동기(665만 톤) 대비 1.2% 증가했다. 2년 전인 2022년(494만 톤)보다 36% 증가한 수치다.
호황기 90%에 육박하던 주요 철강 기업들의 공장가동률도 매년 지속해서 하락해 일부 공정은 60∼70%대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철강에 관세 폭탄을 부과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철강업계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세계 1위 철강 생산국인 중국의 올해 상반기(1~6월) 조강(쇳물) 생산량은 약 5억3000만 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했지만 중국 내 건설 경기 침체로 철강 수요가 크게 줄어 공급과잉이 됐다.
강력한 반중국 정책을 예고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산 철강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의 과잉 생산 물량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로 저가로 유입되면서 한국 철강업체들의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中 공세에 포스코·현대제철 공장 잇달아 셧다운
철강업계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감산으로 위기 돌파구를 찾고 있다. 포스코는 45년 넘게 가동해온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을 11월 19일 전격 폐쇄했다. 지난 7월 포항 1제강공장 폐쇄에 이어 4개월만여 만에 두 번째 셧다운 결정이다.
1선재공장은 1979년 2월 가동해 45년간 누적 2800만 톤의 선재 제품을 생산해 왔다. 1선재공장에서 생산한 선재 제품은 못·나사 등의 재료, 타이어코드, 비드와이어 등 자동차 고강도 타이어 보강재로 활용돼왔다.
앞서 폐쇄된 1제강공장은 1973년 준공돼 반세기 동안 약 9500만 톤의 조강을 생산해왔다. 롯데월드타워 2000개를 건설할 수 있는 물량이다. 여기서 생산된 쇳물이 조선, 자동차, 가전 등 국내 제조업을 일궈 한국 경제의 밑거름이 됐다.
지난해 글로벌 선재시장은 약 2억 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으나 실제 수요는 9000만 톤에 불과해 장기간의 공급과잉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여기에 연간 1억4000만 톤의 선재 생산 능력을 보유한 중국이 건설 경기 침체로 주변국에 저가로 수출하며 제품 가격 하락을 주도했다.
국내에서도 저가 선재제품의 수입이 지속됨에 따라 시장가격이 동반 하락했다. 이에 포스코는 사업구조를 재편해 가격 중심 저가 제품의 시장공급을 축소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국내 2위 철강회사인 현대제철도 제강·압연 공정을 진행하는 포항 2공장 가동중단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반대하는 노조와 갈등을 겪고 있다. 포항 2공장에서는 주로 건설 현장에 투입되는 형강 제품이 생산됐다.
포항 2공장의 연간 생산 규모는 제강 기준 100만 톤으로 현대제철 전체 생산 물량의 5% 정도로 알려졌다. 중국발 철강 공급과잉으로 단가 하락과 내수 부진, 전기료 상승 등이 겹치며 가동률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생산과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폐쇄 결정을 내린 것이다.
중국산 저가 밀어내기의 직격탄을 맞은 철강 양대산맥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포스코그룹의 경우 철강 부문에서 포스코 3분기 실적이 매출 9조4790억원, 영업이익 4380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0%, 39.8% 감소했다.
현대제철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51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7.4% 감소했다. 매출은 5조6243억원으로 10.5% 줄었다. 순손실은 162억원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끝 모를 불황…석유화학 구조조정 한창
중국발 공급과잉과 수요 부진으로 장기 불황에 빠진 석유화학업계도 생존 모드에 돌입했다. 석유화학업계의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는 10월 기준 185달러로 손익분기점인 톤당 300달러를 크게 밑돌았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에틸렌 증설 규모는 약 2500만 톤으로 한국의 총 에틸렌 생산능력(1300만 톤)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중국석유화학공업연맹에 따르면 중국 내 석유화학제품의 공급은 내년 말까지 수요를 크게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폴리프로필렌은 연간 1840만 톤이 초과 공급되며 글리콜(940만 톤), 폴리에틸렌(360만 톤), 메탄올(240만 톤) 등도 모두 공급과잉 상태인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중국이 자국 경기 침체 장기화로 내수 판매가 줄자 재고 처리를 위해 저가 중국산 제품을 해외로 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공급과잉이 전 세계를 잠식하면서 관련 업계 피해도 커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중국의 저가 밀어내기 공세로 국내 기업 10곳 중 7곳이 매출이나 수주에 영향을 받았거나 향후 피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기업이 해외 수입품에 대해 신청한 반덤핑 제소 건수가 통상 연간 5∼8건인데 비해 올해는 상반기에만 6건이 신청됐다. LG화학·롯데케미칼, 비핵심 사업 매각·스페셜티 전환 속도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 지속되자 비핵심 사업 매각, 생산라인 전환 등 사업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범용 석유화학 중심 구조에서 탈피해 중국과 차별화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위기를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LG화학은 지난 3월 석유화학 원료인 스티렌모노머(SM) 생산을 중단한데 이어 최근 전남 여수 공장의 폴리염화비닐(PVC) 라인 일부를 고부가가치 스페셜티로 전환하기로 했다. 건설자재로 쓰이는 PVC는 대표적인 범용 플라스틱이다.
최근 중국의 저가 공세와 전방산업인 부동산 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하며 LG화학은 6개의 PVC 라인 중 2개를 초고중합도 PVC 생산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LG화학은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 여수2공장 매각도 검토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비효율 자산 매각과 전략적 사업 철수 등으로 기초화학 산업 비중을 줄이는 자산 경량화(애셋 라이트) 전략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LUSR의 청산을 결정했다. 지분 매각을 통해 총 1조4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롯데케미칼은 중국발 공급과잉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한 여수2공장의 에틸렌글리콜(EG) 3공장과 산화에틸렌유도체(EOA) 4공장의 생산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해외 진출의 상징이던 말레이시아 자회사 LC타이탄의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철강과 석유화학제품을 중심으로 확산 중이던 중국발 공급과잉은 최근 전기차, 배터리 등 다른 산업으로 퍼지며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의 산업정책은 ‘중국제조 2025’와 ‘자급률 제고’ 전략에 따라 추진되고 있어 공급과잉이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배터리·태양광을 3대 신산업으로 정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3~9배에 달하는 산업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주요국들은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강화하며 중국의 공급과잉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반덤핑·상계관세·세이프가드 등 조치를 적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전기차·태양광·풍력터빈에 대한 보조금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과 EU의 대중국 관세 정책이 한국에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 연구원은 “한국의 일부 산업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주요국의 무역 장벽 대응이 공급망 전반의 리스크를 키워 오히려 한국 기업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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