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빌라가 모여있는 주거 단지 모습./연합뉴스
서울 시내 빌라가 모여있는 주거 단지 모습./연합뉴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담보인정비율(전세가율)을 현행 90%에서 80%까지 추가 하향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빌라 임대인들은 충격에 빠져 있다.

현행법상 빌라 세입자가 전세보증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보증금이 빌라 시세(공시가격의 140%)의 90%인 126% 이내여야 한다. 그런데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새로운 추진안에 따르면 담보인정비율이 80%로 줄어들기 때문에 전세보증 가입을 위해서는 보증금이 공시가격의 112% 이내로 낮아져야 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이러한 안을 추진하는 이유는 전세보증으로 인한 손실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사태의 여파이다. 지난 몇 년간 빌라 시장에서 전세사기 문제가 불거지면서 많은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다.

전세사기 문제로 피해자가 발생하면 전세 보증 범위 안에서 보증금을 임대인 대신 내어주고 나중에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하는데 정작 문제를 일으킨 임대인은 갚을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손실로 쌓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수조원의 손실을 보이자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는 자구책으로 보증한도를 줄이고자 하는 것이다. 손실을 줄이려는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입장에서 보면 보증한도 축소는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10채 중 7채는 전세보증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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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러한 보증한도 축소가 빌라 시장에 몰고 올 후폭풍이다. 전세보증한도가 줄어들면 기존 전세금 수준으로는 보증가입이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한 민간업체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빌라 10채 중 7채는 기존 계약으로는 전세보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 경우 전세보증금 수준을 낮추거나 기존 계약을 반전세로 바꾸어 낮춰지는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하는 방법밖에 없다. 어떤 방법이든 임대인 입장에서는 수천만원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내주어야 하는 것이다.

과거 보증한도가 150%였다가 126%로 줄어들 때도 반환할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임대인들 사이에 많은 혼란이 있었는데 거기에 보증한도가 더 줄어들게 되니 타격이 큰 것이다.

등록임대사업자의 경우는 더 난감하다.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 사항이기 때문에 가입을 하지 않는 경우 막대한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빌라를 팔아서 임대보증금을 내어주려고 해도 의무임대 기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더 심각한 것은 집주인이 집을 팔려고 해도 앞으로 빌라를 사줄 사람이 과연 있을지 여부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기존에 빌라를 가지고 있는 임대인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보증금 수준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세입자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순진한 생각이다. 한 채당 수천만원에 달하는 전세금 반환금을 마련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빌라를 팔지도 못하는 임대인들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경매로 집을 넘기는 방법밖에 없다. 제2의 전세사기 사태가 대규모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런 조치가 과연 주택 시장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우선, 빌라 임대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다. 서울 지역의 경우 비아파트(단독주택, 다가구주택, 다세대주택)의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중이 올해 10월까지 64.4%에 달했다. 같은 기간 기준으로 2020년 43.6%, 2021년 47.3%, 2022년 54.8%에 이어 2023년에는 60.8%로 60% 선을 돌파했던 월세 비중이 올해는 더 높아진 것이다. 3년 전만 하더라도 전체 임대차 거래 중 전세 계약이 더 많았지만 올해는 임대차 거래 3건 중 1건 정도만 전세 거래로 이루어진 것이다.

2022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불거진 전세사기 문제의 여파이다. 세입자들이 전세를 꺼리면서 빌라 임대시장이 월세로 재편된 것이다.

빌라 임대시장이 월세 중심으로 재편되면 빌라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줄어들게 된다. 빌라를 포함한 다세대주택 등 비아파트 주택은 집값이 잘 오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통계에서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KB국민은행 통계가 시작된 1986년 1월부터 올해 11월까지 38년간 전국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464%에 이른 반면 다가구주택을 포함한 단독주택은 79% 상승에 그쳤고, 다세대주택이나 빌라를 포함한 연립은 172%에 그쳤다. 빌라 투자는 왜 했을까?아파트에 비해 빌라는 3분의 1, 단독주택은 6분의 1 정도의 상승률만 보였던 것이다. 그러면 장기간 이렇게 상승률에 차이가 나는데도 빌라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투자한 것일까?

상승률보다 수익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2024년 11월 기준으로 전국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67.7%이다. 10억원짜리 A아파트를 전세 끼고 산다고 하면 3억2300만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몇 년 후 이 아파트가 1억원이 오른다면 상승률은 10%가 되지만 수익률은 31%(=상승분 1억원 ÷ 실투자금 3억2300만원)이 된다.

그런데 1억원짜리 B빌라의 전세가 비율이 90%라고 가정하면 어떻게 될까? 1000만원이 오른다면 상승률은 10%이지만 실투자금이 집값의 10%인 100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수익률은 100%가 된다.

결국 아파트와 빌라의 상승률 차이는 464%대 172%로 아파트가 훨씬 높지만 (빌라는 전세가 비율이 높아 실투자금이 적게 들기 때문에) 빌라의 수익률이 더 높게 나올 수 있다. 빌라의 전세가 비율이 88% 이상이면 아파트 못지않은 수익률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전국 평균치이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더 높은 전세가 비율이 되어야 아파트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전세보증한도를 줄인다고 하면 전세가 비율은 80% 이하로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한마디로 빌라 투자로 수익을 내기가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물론 자본금이 많은 사람은 빌라를 월세로 줘서 임대수익을 노려볼 수는 있지만 빌라의 특성상 수리비나 감가상각이 많이 되는 것을 감안하면 실익이 없다.

결국 빌라 시장에서 전세가 비율이 낮아질수록 빌라에 투자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위 표는 다세대주택(빌라)의 착공 실적이 얼마나 줄어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이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월평균 다세대주택의 착공 실적은 5184채이다. 하지만 전세사기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2022년부터 빌라의 착공은 상당히 줄어들고 있다. 과거 10년(2012~2021년) 평균치에 비해 2022년은 48%나 줄어들었고 2023년은 무려 84%나 줄어들었다. 올해 들어서는 더 심각하여 평년 대비 90%나 줄어들었다. 2023년 이후 빌라를 짓는 사람이 크게 줄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전세보증보험 한도가 150%에서 126%로 줄어든 2023년부터 다세대주택(빌라)의 공급이 크게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이번에 한도를 112%로 줄인다면 그 이상의 공급 감소가 이루어질 것이 자명하다.

문제는 이러한 공급 감소의 영향이 빌라 시장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동안 공급부족 이슈가 나올 때마다 빌라는 훌륭한 구원투수 역할을 하였다. 각종 인허가도 복잡하고 착공에서 입주까지 3년이나 걸리는 아파트 공급에 비해 빌라는 6개월이면 대량으로 공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공급부족으로 전세난이 발생할 때마다 과거 정부에서는 빌라라는 카드를 내밀었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카드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번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보증한도 축소가 현실화된다면 이는 내년부터 불거질 공급 부족 문제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