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랠리 대신 온 탄핵 정국, 잠 못 드는 12월의 투자자 [혼돈 속 길을 찾다①]](https://img.hankyung.com/photo/202412/AD.38938227.1.jpg)
지난 12월 3일 한밤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실시간검색어를 장악한 건 ‘주식’과 ‘코인’이었다. 구글과 네이버, X와 각종 SNS에는 ‘비상계엄’을 제외한 화제의 단어로 주식과 코인이 등장했다. 그들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발발 직후 주가급락이 기회였다는 것을.
일각에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기 상황에 주식과 코인을 논하는 모습이 천박하다고 힐난했지만 이는 재테크가 국민 전반에 생활 속 깊이 자리 잡은 현실임을 방증하는 시대적 현상이기도 했다. 다시 고개 든 ‘코리아 디스카운트’1990년대만 해도 주식은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현재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주식 투자자는 이미 1500만 명에 달하며 2020년대 ‘동학개미운동’을 기점으로 주식은 서민들의 주요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한때 투기적 성격이 강했던 가상자산(코인)도 제도권으로 편입됐다. 한국에서는 가상자산거래소 한 곳의 거래대금이 국내 주식시장 거래대금을 압도하는 현상이 나타날 정도다.

내란 사태 초기에는 변동성이 단기에 그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과거 두 차례의 탄핵 정국에 비춰볼 때 “(정치적 리스크가) 길어지더라도 경제와 정치는 분리가 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지난 두 차례와 다르게 대내외 악재가 산재했다.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빠르게 진행됐고 가계부채와 자영업의 위기는 사상 최고치의 위기 수준을 나타냈다. 갈수록 격화하는 AI 경쟁 속에 한국 대장주인 삼성전자의 주가마저 급락했으며 G2의 무역전쟁 속에 한국 경제의 근간이 되어 준 철강과 석유화학이 저물어가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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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비상계엄 사태가 반영되면 전망치는 더 하향조정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12월 9일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시장 평균보다 낮은 1.8%로 유지하지만 리스크는 점점 더 하방으로 치우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2004년과 2017년 등 과거의 정치적 혼란은 성장률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고 분석했다. 정치적 리스크가 있던 지난 2004년엔 중국 경기 호황, 2016년에는 반도체 사이클의 강한 상승세에 따른 외부 순풍에 힘입어 한국 경제가 성장했지만 2025년엔 중국 경기 둔화와 미국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외부 역풍에 직면해 있다는 분석이었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의 수석 기고자 윌리엄 페섹 역시 △중국 경제 둔화 △미국의 정권교체 등 대외 변수에 직면한 상황에서 한국이 적절히 대응할 가능성이 줄었다며 “(이번 사건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주장하는 투자자들이 옳았음을 입증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금융투자업계가 부단히 지우려고 노력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다시 정치적 리스크에 고개를 든 것이다.

일부 증권사도 정치적 불확실성에 ‘2025년 코스피밴드’ 전망 수정에 나섰다. 교보증권과 현대차증권은 코스피 상단을 3000에서 2700~2800으로 낮췄으며 SK증권과 유진투자증권은 코스피 상단과 하단을 최소 100~200씩 낮췄다.
다른 증권사 또한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하방 리스크를 검토 중”이라거나 “불확실성이 확대됐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연말연시 수정 가능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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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성 미래에셋증권 반포WM 지점장은 현재 정치적 불확실성이 2025년 자산배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기회와 위기의 공존”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첫째 기회는 강달러다. 장의성 지점장은 특히 유례 없는 강달러 국면에서 달러 기반의 자산배분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위기 상황에서 달러 자산은 안전판의 기능을 하지만 환차익도 누릴 수 있다.
달러 예금에 투자해 금리와 환차익을 동시에 기대하거나 미국채 또는 S&P500·나스닥 등 미국 주요 지수 추종 ETF에 투자해 안정적 수익을 꾀할 수 있다는 전략이다. 단, 원·달러 환율이 이미 높은 수준인 탓에 새로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 투자한다면 환차손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둘째 기회는 비트코인. 연말 10만 달러를 터치하는 등 이미 상당한 고점에 다다랐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시대가 본격화되는 내년에도 우상향 흐름을 이어간다는 전망이다.
익명을 요청한 NH투자증권 WM센터 관계자는 “가상화폐 시장은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며 “트럼프 당선인이 가상화폐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견지하는 한 관련 상품의 출시와 기관 자금이 유입됨에 따라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셋째 기회는 끝나지 않은, 본격적인 포문을 열 AI 전쟁이다. 이환 삼성증권 삼성타운금융센터WM2 지점장은 “트럼프 1기 때보다 트럼프 당선인 주변에 IT에 친숙한 인사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AI를 통한 산업 구조 개편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AI 관련 밸류체인에서 제 역할을 하는 기업들은 지속적인 실적 개선과 기업가치(주가)의 재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위기를 기회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앞서 미국 행동주의 펀드인 돌턴인베스트먼트는 지난 11월 6일 “한국 주식이 ‘초특가 세일(deeply discounted)’에 돌입했다”며 보고서를 냈다. 한국 증시가 올 들어 내림세를 이어가면서 아시아 증시 가운데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연말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함께 상법개정안, 밸류업 정책이 맞물리면서 기지개를 켤 것이란 전망이었다.
비록 연말 정치적 혼란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졌으나 한국 주식시장에는 여전히 저평가된 종목이 다수 존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들이 이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공포에 사고 탐욕에 판다’는 투자 격언에 비추어보면 현재와 같은 불확실성의 시기가 한국 주식을 가장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는 시점으로 여겨진다. 특히 양호한 실적을 보이는 기업은 지수가 향후 2년간 정체되더라도 2~3배 이상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한국투자증권의 정세호 수지PB센터장은 “2025년 코스피는 2300~2800 사이의 박스권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크지만 방산 및 우주항공 관련 섹터는 유망하다”고 분석했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비상계엄 사태로 방산주가 급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산 수출은 정치적 성향과는 관계가 없다. 과거 탄핵 국면에서도 수출 계약은 체결됐으며 2022년 이후 발생한 무기체계 수출 증가는 글로벌 시장의 초과 수요 현상과 낮은 가격, 빠른 납기라는 한국 무기체계의 강점이 맞아떨어진 결과란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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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시장은 변동성이 크지만 주요 증권사들은 소액 분산 투자를 권장한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같은 주요 코인에 제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라는 조언이다.
12월의 긴 밤이 지나면 새벽은 반드시 찾아온다.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으려는 투자자들의 노력은 내년 시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전망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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