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학회, 원전산업 경쟁력 훼손 우려 '원안법 개정안' 철회 촉구

신한울 1호기. 사진=한국경제신문
신한울 1호기. 사진=한국경제신문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원전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최근 발의된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이 K원전의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며 학계가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13일 한국원자력학회는 김성환(서울 노원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일 대표발의한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에 대해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원자력을 정치적 잣대로 재단하고 있다"며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김 의원이 대표발의한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은 원전 사업자가 원전을 건설할 때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건설허가를 받기 전에 '안전성 검증이 되지 않은 기기 및 설비'의 제작에 먼저 착수하는 행위를 막자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학회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기기와 설비가 제작된다면, 사용전검사와 운영허가 단계에서 걸러져 실제 설치되지 않으므로,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상상해 법을 만드는 것은 잘못"이라며 "또한 원전 기기와 설비의 발주 시기가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번 사안은 국민 안전을 다루는 원자력안전법 소관 사항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학회는 "이번 개정안은 사법(私法)상 보장된 사적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면서 "원전을 건설할 때 주기기를 선주문하는 국제 관행을 도외시하고 한국 원전산업 경쟁력을 훼손하며 원전기업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학회는 "원전 사업자가 인허가 취득 전 선착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계약 당사자간 사적자치에 해당하는 영역으로, 법에 따라 제약하는 것은 원전 사업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우려했다.

업계에 따르면 원전 주기기는 제작에 4~5년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원전사업자는 주기기를 미리 주문함으로써 기기 제작사가 고품질의 주기기를 제작할 기간을 보장할 수 있으며 이는 건설 공정에 맞춰 주기기가 현장에 배달되도록해 원전 건설 기간 단축에 기여한다.

국제원자력기구(IEAE)는 '제작에 다수 연도가 소요되는 기자재는 '선발주 기자재'(Long Lead Items)로 불리며 공기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건설허가 전 제작이 필요하다'고 규정, 건설허가 전 제작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보글 원전 3·4호기, 프랑스 EPR2 6기 원전 건설 사업 등 주요국 원전 건설 프로젝트에서 건설허가 취득 전 사업 초기에 기자재 공급계약을 체결해 건설 일정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원전 주기기 제작에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다수의 중소·중견 제작업체가 참여하는데 원전 건설의 행정절차 때문에 실제 중소·중견 제작업체에 물량이 발주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중소·중견 제작업체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질 수 있다.

학회는 "원전 주기기에 대한 선주문을 통해 물량 배정과 자금 집행이 되면 원전 중소·중견기업의 경영난을 덜어줄 수 있다. 충분한 기술력과 업력을 갖춘 중소·중견 제작업체를 확보·유지하는 것은 원전 산업생태계 유지의 핵심이며, 원전의 안전 운영과 유지·보수에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배경을 무시하고 선주문 제작을 막는 것은 우리 원전 기업의 생존은 물론 나아가 원전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회는 "우리나라는 주기기 선주문 방식을 통해 고품질 원전을 짧은 기간에 건설하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며 "공기 단축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은 우리 원전산업 경쟁력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제 눈 찌르기식 법안이며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원전산업 경쟁력을 키울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