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관저를 중심으로 양측 도로와 인도에는 시위 집회 참가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한남동 일대엔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 1만명이 모였다. 마이크를 든 집회 참가자들은 각자의 주장에 따라 구호를 외치고 서서 또는 앉아서 지켜보는 이들은 추위를 피하면서도 구호를 따라 외치기도 했다. 영하의 날씨에 두터운 패딩은 물론, 장갑과 귀도리 심지어 혹한기 장비인 은박지 이불 담요를 두른 이들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 지키자” VS “내란수괴 즉각체포”
관저 초입부터 길게 늘어선 탄핵 반대 집회에선 ‘부정선거 OUT 가짜국회’, '윤석열 대통령 파이팅'이 적힌 피켓 그리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지지자들이 연신 “윤석열 대통령을 지킵시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대형무대가 설치된 할리데이비슨 매장 앞에는 힙합가수들이 윤 대통령 탄핵 반대에 맞게 개사한 노래로 집회 현장을 가득 채웠다. 한남초등학교 앞 대통령 관저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바리케이트가 설치돼 있었고, 거리를 통제하는 경찰들과 윤 대통령 지지자 수십명이 길을 막고 있었다. “왜 길을 막고 있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윤 대통령 지지자로 보이는 한 중년여성은 “아저씨 좌파예요?”라며 경계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좌파들이 우리 쪽에 침투해서 내란을 일으키려고 해서 물어봤다”면서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중국놈들이 대통령을 탄핵시키려고 하는데 그건 막아야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지지자는 “세금이 터무니없이 나오니까. 제정신이 아니다. 전과 4범 이재명을 지키려고 저 XX을 하는 것 아니냐”라며 “(제가)서초동에 한 채, 분당에 한 채 집이 두 채 있는데 (이전 정부에서)종부세가 6700만원이 나왔다. 이 정부 들어선 800만원 나왔다. 근데 대통령을 탄핵 시키는 게 말이 되냐”라며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온 이유를 밝혔다.
윤 대통령 탄핵 집회 현장은 반대집회보다 다소 한산했다. ‘특검범죄자 김건희 즉각체포’,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체포’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지지자들은 적은 숫자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5일째 탄핵 집회에 나온다는 한 지지자는 “하도 나라가 난리라 나오게 됐다” 면서 “탄핵은 100%로 된다. 그리고 돼야 하고···”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집회 참석자는 “지금 우리 숫자가 작아보여도 전국에서 다 탄핵하라고 집회하고 있다”며 “이제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어른들의 외침에 피해 받는 아이들
수일 째 계속된 한남동 집회 현장에선 크고 작은 소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바리케이트로 길을 막아선 경찰을 향해 왜 길을 막느냐며 항의하는 시민들이 있는가 하면 욕을 하며 싸우는 모습도 보였다. 집회 현장을 가로질러 가야하는 시민들은 경찰에 하소연을 하거나 육교로 건너 돌아가는 불편을 오롯이 감내해야 했다.
관저 주변 한남동 일대 영업장 대부분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셔터를 내린 가게 앞에는 시위대들이 앉아 담배를 피거나 허기를 달래는 모습도 보였다. 매장 골목에는 집회 참가자들이 피운 듯한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인도와 차도를 막은 탓에 강남에서 남산으로 가는 집회 길목은 낮부터 심한 정체현상이 일어났다. 찬반 집회 모두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노래와 연설은 한남동 일대를 소음바다로 만들었고, 집회현장을 지나가는 차들은 집회에 시위라도 하듯 연신 경적을 울려댔다. 피해는 시민들뿐만 아니었다. 이날 오후 집회 현장을 지나가는 앰뷸런스는 교통체증을 피하지 못하고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특히 집회 현장은 대통령 관저와 함께 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는 곳이다. 학교 앞 설치된 바리케이트와 어른들의 외침은 오롯이 아이들의 몫이었다. 더군다나 대형 스피커로 퍼져 나오는 “개XX”, “죽어라” 등의 욕설에 아이들은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집회가 한창인 이날 오후 하교하는 아이를 마중 나온 학부모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 역시 어른들의 행동이 신기함보다는 무서움과 불편함이 더 커 보였다. 엄마의 손을 잡고 서둘러 집회 현장을 빠져나가는 아이의 다른 한 손에는 학교 앞 버려져 있던 태극기가 들려져 있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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