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은행 강남에 PB센터 잇달아 개소
국민·신한銀, 은행·증권PB 서비스 결합
하나, 특화·전문PB 확대
우리, 씨티은행 출신 PB 영입으로 차별화
증권사, 승진 밀어주고 몇십억대 인센티브 내걸며 PB 인재 경쟁
<돋보기-PB의 자질>
“시간 단위로 일과 쪼개 쓰며 고객 이해자 자처하는 PB들”

◆점포 없애도 PB센터는 늘리는 은행들
PB 서비스가 한국에 도입된 지는 30년 됐다. 1989년 미국 씨티은행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PB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국내 은행이 적용한 건 1995년 하나은행이 최초다. 당시에는 10억원 이상의 고액자산가가 많지 않아 PB 서비스도 본격적으로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정보기술(IT) 산업과 주식시장 성장으로 고소득 전문가 집단이 등장하면서 은행들의 PB 서비스가 본격화됐다. 일부 증권사들도 PB 서비스 경쟁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최근 은행권의 PB 경쟁은 더 심화되는 모양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일반 점포를 줄이는 대신 서울 여의도 및 강남권을 중심으로 고액자산가 대상의 PB 점포를 늘리고 있다.
신한은행은 올해 상반기 서울 압구정로데오역 앞에 초고액 자산가들을 겨냥한 점포를 열 예정이다. 6층 건물을 통째로 PB센터로 계획했다. 카페부터 캐주얼 식당, 파인다이닝(고급 레스토랑) 등 다양한 식음료(F&B) 시설과 국내 유수의 전시 업체와 협력해 갤러리를 마련한다. 재테크 컨설팅 외에 초고액 자산가를 위한 특급 서비스를 한곳에 제공해 차별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자산 규모 100억원 이상이 대상이다.
하나은행은 초고액 자산가 대상(자산 규모 30억원 이상) PB센터인 클럽원(Club1)을 올해 7월 3개로 늘릴 계획이다. 서울 삼성동(1호점), 한남동(2호점), 도곡동(3호점)이다. KB국민은행은 2020년 말 21개였던 PB센터를 올해 2월 24개까지 늘렸다. 30억원 이상 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골드앤와이즈 더 퍼스트가 3개 증가했다. 우리은행은 자산 규모 10억원 이상 고객이 대상이라 아직 초고액 자산가 전용 센터는 없지만 강남과 부산 지역 자산가가 집중된 곳에 고액자산가 특화 채널인 ‘투체어스 센터’를 확대하고 있다.
4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PB센터는 지난 2월 기준 94곳(계열사 통합 지점 포함)으로 2018년 말(75곳)보다 20%가량 증가했다. 특히 30억원 이상 초고액 자산가 대상 PB센터는 8곳으로 2020년 말(3곳)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은행들은 차별화된 전략도 내세우고 있다. 하나은행은 리빙전문 PB, 디지털 PB, 글로벌 PB, 융합형 PB, 연금전문팀장 등 PB 업무를 특화해 전문성을 높였다. 우리은행은 부동산, 세무, 퇴직연금 등 분야별 대표 전문가로 구성된 ‘자산관리 드림팀’을 키우고 있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은행과 증권 PB 서비스를 결합한 자산관리(WM) 특화 점포를 선보이고 있다.

은행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덴 이유가 있다. 일반 고객 수십 명보다 초고액 자산가 한 명을 유치하는 수익이 더 크다. 지난 2월 전체 고객의 수신 잔액은 1698조원으로 지난해 말 1696조원과 비교해 2조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30억원 이상 고액 자산가의 수신 잔액은 61조5007억원에서 65조8814억원으로 4조원 넘게 늘었다. 증가액이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셈이다.
한국 부자 수가 증가하면서 PB 서비스의 수요가 늘어난 점도 영향을 줬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부자’는 46만1000명이다. 전체 인구의 약 1%에 해당하는 규모다. 2021년 39만3000명, 2022년 42만4000명, 2023년 45만6000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자산 규모도 늘어났다. 한국 부자들이 보유한 총금융자산은 2826조원으로 전년보다 2.9% 증가했다. 한국 전체 가계(4822조원)의 58.6% 정도 차지한다.
비이자 부문 포트폴리오 다변화 측면도 있다. 금리 하락 국면에서 비이자 이익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4대 은행의 비이자이익은 전체 이익의 10%도 안 된다.

은행과 증권사 간 PB 인재 경쟁은 치열하다. 한 번 인연을 맺은 고객은 PB를 따라서 금융사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보니 우수 PB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내건 조건은 파격적이다. 몸값 협상은 물론 손발이 맞았던 팀원들을 통째로 모셔오거나 회사 내 필요한 요구 조건을 대부분 들어주는 식이다.
우리은행은 2022년 ‘PB 명가’로 꼽히던 한국씨티은행이 국내 소매금융 분야에서 철수하자 씨티 출신 PB 설득에 공을 들였다. PB 전문가와 함께 포트폴리오 매니저, 마케팅 등 팀원들을 영입해 강남역 인근에 고액자산가 특화 채널인 TCE시그니처센터를 신설했다. 1년 10개월 만에 수신 총량 1조원을 돌파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신한투자증권도 당시 씨티은행 출신 PB 30여명을 끌어왔다. 이들을 투입해 초고액 자산가 대상 PB 업무에 특화된 청담금융센터를 개소했고 1년 만에 10억원 이상 고객 수가 30% 이상 증가하는 성과를 냈다.
최근 NH투자증권은 영업력이 뛰어난 인력들을 붙잡기 위해 지점장 또한 개인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신규 지점장 대상으로 실행하고 있다. 2011년엔 해외채권 조달에서 두각을 보인 메릴린치(현 뱅크오브아메리카) PB팀을 영입했다. 이들 대부분이 현재까지 회사에 몸을 담으며 초고액자산가 포트폴리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해외채권 부문에서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증권가에선 주요 승진자가 PB본부장이거나 PB 임원 중심의 통합본부가 만들어지는 등 PB들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신흥 부자 등장과 세대교체
신흥 부자의 등장과 세대교체는 PB들의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우선 고액자산가의 유형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부모에게 자산을 물려받는 전통적인 부자(올드머니)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증여나 상속받은 자산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요즘에는 코인·주식 투자에 대박을 치거나 창업 또는 유튜브 등 인플루언서로 성공해 엄청난 부를 쌓은 부자(뉴머니)가 많아졌다.
박태형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지점장은 “전통적인 부자들이 안정적인 자산 관리를 선호하는 반면 신흥 부자들은 직접 투자에 대한 관심이 크다. 스타트업 투자, 프라이빗 마켓 및 코인·디지털 자산에도 적극적”이라며 “뉴머니 고객에게는 전통 자산(채권·배당주)과 대체 투자를 결합한 포트폴리오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성현정 NH투자증권 도곡프리미어블루 센터장은 “벤처 사업이나 코인 등으로 돈을 번 부자들은 금융 자산으로 돈을 불리기보단 ‘내 사업으로 돈을 벌고 금융은 안전한 데 투자해 자산을 지키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 국채나 브라질 국채를 추천했다. “과거 브라질 통화는 투기로 분류됐는데 이젠 노출이 많이 되고 비과세 부분도 있어 투자 기회로 보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성 센터장은 “1세대에서 2세대로 부가 넘어가는 시점”이라며 “1세대 고객분들과는 스킨십이 많았지만 자녀분들은 유학을 가면서 감정적 교감이 끊겼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과의 관계를 소프트랜딩(연착륙)하는 것이 최근 숙제”라고 말했다.
돋보기
“시간 단위로 일과 쪼개 쓰며 고객 이해자 자처하는 PB들”
은행 PB와 증권사 PB는 고액자산가의 자산을 관리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취급 상품 범위, 고객군, 서비스 강점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PB들이 받는 인센티브도 차이가 크다. 은행 PB는 고객 유치나 상품 판매 건수에 따라 연봉에 큰 차이가 있지 않지만 증권사 PB는 1조원의 자산을 유치하면 연평균 20억~30억원의 인센티브를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사생활을 포기하며 동서분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론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한다.
다음은 은행 PB와 증권사 PB들의 하루 일과다.
50대 은행 프라이빗뱅커(PB)인 김 아무개 씨의 하루는 시장 동향과 뉴스 분석으로 시작한다. 금리, 환율, 주식, 채권시장 흐름을 체크하고 고객 맞춤형 투자 대응 전략을 마련한다. 끊임없는 자기 개발과 새로운 금융 상품을 학습하는 건 필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신뢰와 소통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고객의 투자 성향과 목표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물론 가족 상황(상속·증여), 관심사 등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정기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며 상담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고객관리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지난주 김 씨를 만나러 온 중소기업 대표 A 씨. 그는 20년 넘게 김 씨와 관계를 이어왔다. 초기에는 단순 예금 상품만 거래하다 점점 리스크 관리, 가업 계승, 글로벌 투자까지 김 씨와 함께 의논한다. 김 씨는 이 과정에서 A 씨와 VIP 고객 간 네트워킹 기회나 부동산·세무 전문가를 연결해 종합적인 컨설팅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회사 차원에서 진행하는 자녀 맞선 자리도 귀띔했다.
김 씨는 “PB는 ‘금융 전문가’이기 전에 ‘고객 이해자’여야 한다”고 정의한다. “숫자와 리포트 뒤에 항상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30년째 증권사에서 PB로 일하는 이 아무개 씨의 하루는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다. 6시까지 출근해 전날 시황이나 금리, 환율, 세계 뉴스 등을 파악해야 한다. 예상대로 시장이 흘러갔다면 괜찮지만 다른 방향을 보이면 운용사들과 미팅을 잡거나 내용 파악을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이 모든 게 아침 8시 전에 끝나야 한다. 9시 이후에는 PB들과 세미나에 참석한다. 고객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씨의 점심, 저녁 분기 스케줄은 이미 꽉 차 있다.
최근엔 멘털 관리하는 시간을 따로 갖는다. “한 고객을 20~30년 모시는 경우가 많다. 고객이 결혼을 하고 그 자녀가 다시 결혼하는 것을 볼 때도 있을 정도”라며 “그만큼 오랫동안 모셨던 회장님들이 돌아가시면서 상속 처리가 많아지고 있는데 부모님들을 보내는 것 이상의 아픔을 느낀다”고 했다.
이 씨는 PB의 삶을 ‘장기 레이스’라고 정의한다. 그는 “PB들은 양심과 작심이 있어야 한다. 양심은 항상 충분히 공부를 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작심은 고객이 잘 판단할 수 있게 충분히 설명하고 도움을 줬느냐”라고 했다.
이어 “PB가 수익률을 쫓아가고 돈을 벌어야 하는 직업이지만 챗GPT나 인공지능(AI) 트레이딩이 많아진 상황에서 거꾸로 휴머니즘에서 차별성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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