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전 대통령측 "아무일도 없었다"
"계엄령은 계몽령" 주장해와

헌재 "호소형 계엄 주장 인정할 수 없어"

지난 달 8일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달 8일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4일 재판관 8인 만장일치 의견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122일 만의 결론이다.

헌재는 이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국회 봉쇄 등 핵심적인 탄핵 사유 5개를 모두 인정했다.

헌재는 “헌법과 계엄법에 따르면 비상계엄 실체적 요건 중 하나는 ‘전시·사변 및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며 “(계엄 선포 이유로 주장한) 국회의 탄핵소추, 입법, 예산안 심의 등 권한 행사가 이 사건 계엄 선포 당시 중대한 위기 상황을 현실적으로 발생시켰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사정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피청구인의 판단을 객관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의 위기 상황이 계엄 선포 당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특히 헌재는 윤 전 대통령 측의 '호소형 계엄'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 측은 비상 계엄이 야당의 전횡과 국정 위기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경고성 계엄'이라며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해왔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0시께 '긴급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신군부 집권기인 1980년 5월 17일 후 44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이었다.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게 계엄의 이유였다.

국회는 비상계엄에 대응해 야당을 중심으로 기민하게 움직였다. 비상 계엄 3시간 후인 4일 오전 1시 여야 국회의원 190명은 국회 담을 넘어 본회의장에 들어선 뒤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다.
이 과정에서 군인들은 불합리한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며 나름대로 저항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6시간 만인 4일 오전 4시 국무회의 의결로 비상계엄을 해제했다. 같은 날 오후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죄로 규정하고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의 비상계엄이 정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는 "도대체 2시간 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느냐"며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것이 폭동이란 말이냐"고 내란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오히려 야당이 국헌문란을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며 모든 책임을 야당탓으로 돌렸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총 11차례 열린 탄핵심판 변론 과정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 “계엄령은 계몽령”이라며 12·3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파면을 선고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계엄 선포에 그치지 아니하고 군경을 동원해 국회의 권한 행사를 방해하는 등 헌법 및 법률 위반 행위로 나아갔으므로 경고성 또는 호소성 계엄이라는 피청구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이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