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만 년 동안 프로그램을 가동한 끝에 내놓은 답은 42. 예상치 못한 답 앞에서 당황하는 인류를 향해 컴퓨터가 말한다. “문제는 여러분이 질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진짜 질문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 해답의 의미 역시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질문이 미래를 만든다
좋은 답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때로 좋은 질문 안에 답이 숨어 있기도 하다. 아인슈타인 역시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만약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처음 55분을 올바른 질문을 찾는 데 쓰고 나머지 5분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쓸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현실에선 빠르게 답을 찾길 원한다. 게다가 진리에 가까운 완벽한 답이 나오길 고대한다. 브랜드의 미래를 대비하는 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고 시장의 흐름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이들은 불안을 잠식시킬 필승의 해답을 원한다.
전에 없던 혁신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방법이 무엇인지, 혹은 ‘제2의 애플’, ‘제2의 테슬라’처럼 보장된 성공 모델에 끼워 맞출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묻는다. 그런 바람에 대한 응답은 앞선 이야기 속 ‘42’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질문이 잘못됐다.
여기 또 다른 질문이 있다. 안드로이드 연구자 이시구로 히로시 교수가 퍼스널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리는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를 만나 고민을 털어놓았다. “로봇의 미래에 가능성이 있을까요?” 앨런 케이가 질문을 바꿔서 되돌려 주었다. “자네 자신은 로봇을 인류에게 어떠한 존재로 만들고 싶은가?” 두 질문의 차이는 무엇일까.
범위가 구체화됐다. ‘미래’라는 이름의 도무지 손에 안 잡히는 상상 속 관념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자신’과 ‘어떤 존재’를 심었다.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한 것이며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로봇의 의미와 로봇이 지녀야 할 미덕이 무엇인지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진리를 꿰뚫는 존재도 없다. 그러나 앨런 케이가 바로잡은 것처럼 질문의 방향을 바꾸면 불확실한 미래를 만들어 갈 해답이 떠오를 수도 있다.
경영학자 시어도어 레빗은 미국의 철도 회사가 쇠퇴한 이유를 두고 “수단과 목적을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산업화 이후 철도 전성기가 끝나고 다양한 운송 수단이 등장하기 시작한 때 철도 회사는 미래 방향을 정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질문 오류. 이들의 질문은 ‘철도’라는 수단에 갇혀 있었다. 브랜드의 주요 사업 수단과 브랜드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철도’라는 수단이 품고 있는 ‘이동’이라는 본질적인 행위에 의미를 두고 좀 더 궁극적인 역할과 목적에 주목했다면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진화하는 이동 기술에 맞춰 새로운 변화를 펼쳐갈 수 있지 않았을까.
LG전자는 오랫동안 가전 브랜드로서 역사를 쌓아왔다. ‘가전 하면 LG’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세계적으로 기술력에 대한 신뢰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양한 환경·기술 변화 속에서 ‘가전’을 넘어 브랜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그들이 내놓은 답은 ‘Life’s Good’이었다. ‘삶은 참 좋은 거야’ 하고 삶을 긍정하게 하는 것,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좋은 삶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이들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 기준대로라면 일상에 스며들 수 있는 기술이 다양한 만큼 LG전자의 사업 수단은 가전의 영역을 넘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확장 전 이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 기술·제품·사업·서비스가 사람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는가’라고 말이다.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한 미래 방향을 설정할 때도 이와 같은 질문을 던져본 듯하다. ‘AI가 삶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들의 답은 ‘공감지능(Affectionate Intelligence)’이었다. AI를 구성하는 단어는 ‘Artificial Intelligence’로 다소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각계각층에선 AI 기술에 대한 위험과 우려를 전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LG전자는 AI가 사람들을 배려하고 공감해야 일상에서 조화를 이루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답을 내리고 향후 개발 방향을 ‘공감’으로 명확히 한 것이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새로운 기술과 환경에 맞닥뜨릴 때마다 이들은 계속 브랜드의 존재 목적과 이유를 기준으로 새로운 질문을 던질 것이고 질문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자기만의 미래를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로봇의 미래도 AI의 미래도 결국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 브랜드는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 ‘우리 브랜드는 세상에 왜 존재해야 하는가’, ‘우리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하고 싶은가’, ‘우리가 만드는 기술·제품·사업·서비스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질문 끝에 철학이 맺힐 것이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대처하게 하고 선명한 방향과 기준을 만들어내는 브랜드의 근본 원리가 되어 줄 것이다.
과테말라 출신인 듀오링고 창업자 루이스 폰 안은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하는 환경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모두가 배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의 의지는 듀오링고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이 됐고 모든 상품과 미래 계획의 방향이 됐다. 처음엔 무료로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앱을 만들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장 흐름에 맞춰 경쟁자를 틱톡과 유튜브로 설정했다.
모두가 배울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틱톡과 유튜브보다 더 ‘재미있게’ 배울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AI 기술이 발전하면서부터는 모두가 ‘자기만의 속도’로 배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맞춤형 학습 시스템을 도입·발전시키고 있다.
브랜드의 수단은 시장과 기술에 따라 변화하지만 브랜드의 주요 목적, 즉 철학은 한결같다. 그 한결같음이 자기만의 미래를 만드는 유일하고 정통한 답이 된다. 미래는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 브랜드가 무엇을 믿고 어떤 세상을 바라는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브랜드의 역량과 의지, 브랜드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먼저 정의하게 하는 내부를 향한 질문이 필요한 이유다.
좋은 질문은 나아갈 길을 만들고 어두운 길에 불을 밝혀준다. 그것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그 길은 누구도 만들 수 없는 독보적인 것이 된다. 그러니 질문하자. 철학을 세우자. 작은 것부터 행동하자. 미래는 이미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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