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챠숍·팝업스토어·챌린지까지…‘오타쿠’가 힙해졌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영상. /사진=안철수 의원 공식 유튜브 채널)

지난 4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나니가스키? 안철수!’라는 제목의 홍보 영상을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려 화제가 됐다. 이 영상은 일본 애니메이션 ‘러브라이브’의 콘서트 장면을 편집한 것이다. 원본 영상은 ‘러브라이브’ 캐릭터 성우들의 공연 장면을 담고 있는데 이들이 무대 위에서 “나니가스키?(어떤 게 좋아?)”라고 반복해 외치며 관객의 떼창을 유도하는 장면이 온라인에서 퍼졌다. 안 의원은 해당 밈을 활용해 “국민짱~(네!) 어떤 게 좋아? 초코민트보다도 안철수” 등으로 개사한 영상을 대선 홍보 목적으로 공개했다.

아이브 장원영, 트와이스 등 인기 아이돌부터 인스타그램 릴스 속 일반인들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노래로 된 챌린지에 거부감 없이 참여하는 모습이다. ‘나니가스키’ 챌린지 이전에도 인기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 챌린지 역시 K팝 신을 뜨겁게 달궜다. 두 곡 모두 전체 가사가 일본어로 된 애니메이션 노래임에도 대유행을 일으켰다. 일반인과 아이돌을 넘어 정치인까지 애니메이션 문화를 대중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없이 안 굴러간다
‘불황에도 돈 쓰는 건 오타쿠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애니메이션 팬덤의 소비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OTT 서비스에는 드라마 시리즈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비중이 늘고 있다. 넷플릭스는 올해 구독자의 50% 이상인 3억 명이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5년 동안 3배 증가한 수치다.

애니메이션 팝업 시장도 커지는 추세다. 올해 더현대 서울에서 진행된 지식재산권(IP) 콘텐츠 팝업은 일평균 고객 2000명을 넘었다. 패션 브랜드 팝업스토어의 일평균 고객이 1000명가량인 것을 고려하면 2배가 넘는다. IP 콘텐츠 팝업은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콘텐츠를 활용한 행사다.

특히 지난 2월 열린 서울 애니메이션 팝업스토어 ‘점프샵’의 매출은 일주일 만에 5억원을 웃돌며 올해 팝업 중 최상위권에 올랐다. 점프샵 팝업은 오픈 전 네이버 사전예약에 동시접속자가 몰리며 조기 마감됐고, 현장 대기 고객이 일평균 4000명 몰리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덩달아 종이 만화책의 소비도 늘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최근 6년간 만화·라이트노벨 분야에서 1020세대의 구매 비율은 꾸준히 상승 중이다. 2020년 19.4%에서 2022년 29.3%로 상승한데 이어 올해는 5년 전 대비 2배 가까이 오른 38.6%로 만화 구매자 중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다시 돌아온 ‘애니붐’
가챠숍·팝업스토어·챌린지까지…‘오타쿠’가 힙해졌다
(유튜버 ‘침착맨’의 ‘진격의 거인’ 콘텐츠. /사진=침착맨 유튜브 채널

한동안 ‘서브컬처’로 여겨졌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는 분석이다.

2023년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극장판이 흥행에 성공하며 애니메이션 붐은 시작됐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총 관객수 490만 명을 기록하며 2023년 해외 영화 흥행 순위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슬램덩크의 추억을 가진 부모 세대와 새로 유입되는 자녀 세대가 함께 영화관으로 몰렸다. 2023년 상반기 ‘농놀(농구놀이) 열풍’을 일으키며 N차 관람 붐까지 일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거부감이 한 차례 낮아진 상황에서 작품의 OST가 숏폼 챌린지 등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 OST가 있다. 이 곡은 2023년 유튜브 뮤직 국내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 다른 애니메이션 ‘체인소맨’의 OST도 12위에 올랐다. 코인노래방 ‘TJ미디어’에 따르면 2024년 일본 애니메이션 OST의 노래방 재생 횟수는 약 1366만 건에 달한다. 2022년의 670건과 비교하면 2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애니메이션 전문 OTT 플랫폼인 ‘라프텔’의 성장세는 애니메이션 팬덤이 ‘불황 속 큰손’임을 증명했다. 라프텔의 유료 결제 이용자가 2022년 약 17만 명에서 2024년 28만 명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매출을 기준으로 국내 OTT 중에서 라프텔만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부터는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이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진격의 거인’은 국내서 2013년 방영되었는데 12년이 지난 지금 다시 회자되고 있다. 유명인들의 유튜브 채널에 리액션 콘텐츠가 활발히 올라오고 SNS에서는 작품 관련 밈이 유행하며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했다. 구글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진격의 거인’ 검색량은 2024년 하반기 대비 약 10배 증가했다.

상가 공실에는 더 이상 인형뽑기 매장이 아닌 ‘가챠숍’이 들어서고 있다. 가챠숍은 돈을 넣고 레버를 돌리면 무작위로 장난감이 나오는 일명 ‘뽑기’ 기계를 모아둔 매장이다. 원조는 일본으로 국내 가챠숍에서는 대부분 애니메이션 굿즈를 취급한다.

검색량 분석 사이트 블랙키위를 보면 지난 7월 네이버 내 ‘가챠’ 검색량은 2만2300여 건으로 전월 대비 34.29% 증가했다. 또 ‘가챠샵’ 검색량도 1만여 건으로 전월 대비 25.9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잠실이나 용산 같은 주요 핫플레이스에도 ‘가샤폰 반다이오피셜샵’ 등 대형 가챠숍이 입점하며 Z세대에게 가챠숍은 시간 날 때 가볍게 들리는 익숙한 공간이 됐다.
가챠숍·팝업스토어·챌린지까지…‘오타쿠’가 힙해졌다
(홍대에 위치한 가챠숍. /사진=공항철도 블로그) 오타쿠 젠트리피케이션비주류 취급을 받던 오타쿠들의 문화가 주류문화로 편입되면서 ‘오타쿠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까지 생겨났다. 애니메이션 소비층이 커지면서 서울에서는 인기 굿즈가 금방 품절되어 구하기 어려워지는 등 오래 애니메이션을 덕질한 사람들이 원래의 영역을 빼앗긴다는 우스갯소리다.

애니메이션 덕후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도 ‘오타쿠’의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며 굿즈숍도 경험 삼아 구경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팬들이 꾸준히 찾는 곳으로는 대표적으로 홍대가 있다. 홍대는 AK플라자를 필두로 애니메이션 굿즈숍들이 모여 있어 ‘홍키하바라’(홍대+아키하바라)라는 별명도 얻었다.

대표 격인 만큼 유명세가 높아져 이곳에서는 인기 굿즈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골수 팬들은 비교적 경쟁이 덜한 지방의 굿즈숍으로 원정을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들은 굿즈를 구하기 위해 부산 서면, 대전 중앙로 등을 방문해 여러 굿즈숍을 돌아다니며 아예 ‘오타쿠 투어’를 해버리는 브이로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 붐이 일기 전부터 덕질을 해오던 팬들은 ‘오타쿠 젠트리피케이션이 현실이 됐다’며 자조 섞인 후기를 남긴다.

‘오타쿠=개성’이라는 인식
가챠숍·팝업스토어·챌린지까지…‘오타쿠’가 힙해졌다
(‘오타쿠 스타일링’을 한 아일릿 모카. /사진=아일릿 공식 SNS)

기피 대상에 가까웠던 오타쿠가 ‘개성 있고 남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취향이 뚜렷한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콘텐츠 산업에서의 서브컬처 트렌드 및 시사점’에 따르면 서브컬처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급성장한 음원·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발판으로 급속히 확산했다.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가 성장하면서 전 세계 다양한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고 이들 서비스에 자동 자막 기능이 생기면서 콘텐츠의 국경도 사라졌다.

여기에 Z세대를 중심으로 퍼지는 ‘힙스터’ 문화가 서브컬처의 소비를 더욱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힙스터 문화는 1940년대 미국에서 젊은 재즈 ‘비밥’ 장르 애호가를 일컫는 용어로 현재는 대중문화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취향과 개성이 반영된 소비 문화를 일컫는다. 삼정KPMG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향한 콘텐츠 다양화 전략’ 보고서는 “개성과 다양성,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트렌드가 확대되며 사회에서 서브컬처 전반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고 관련 소비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수아 인턴기자 joshu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