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국면에 주목하는 전문가들은 팔란티어의 밸류에이션을 문제 삼는다. 팔란티어의 주가수익비율(PER)은 600배, 주가매출비율(P/S)은 120배에 달한다. 닷컴 버블 시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앞으로 5년간 매출이 매년 40%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면 현재 주가를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최근 팔란티어의 주가 변동을 사실상 이끈 공매도 투자자들의 공세도 이 부분이다. 공매도로 유명한 시트론리서치의 앤드루 레프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팔란티어는 펀더멘털과 괴리돼 있다”며 오픈AI에 적용된 주가매출비율(17배)을 기준으로 하면 팔란티어의 적정가는 40달러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팔란티어의 1년 전 주가다.
그는 “여기서 멈출 이유는 없다. 이는 훨씬 더 크고 중요한 무언가의 시작일 뿐”이라며 회사의 2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48% 증가한 10억 달러를 기록한 점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업의 핵심인 미국 상업 부문은 불과 1년 만에 매출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우리 규모의 기업에서 이런 성장률은 거의 전례가 없다”고 덧붙였다. 또 카프는 ‘40의 법칙’을 언급했다. 소프트웨어 기업의 매출 성장률과 이익률 합이 40%를 넘으면 매력적인 회사로 평가받는다는 기준이다. 그는 “현재 팔란티어의 성장률 지표는 94%”라며 “팔란티어가 미래의 지배적 소프트웨어 회사가 될 것임을 시장도 이제 깨닫기 시작했다”고 못 박았다.
PER 600배와 성장률 94%. 양극단의 평가 속에 투자자들은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다시 거품이냐 성장이냐. 왜 지금 팔란티어인가
지금까지 틸이 찍은 기업은 곧 미래 산업의 좌표였다. 독점적 위치에 선 기업만이 세상을 바꾸고 압도적 수익을 만든다. 그리고 그 지도 위 정점에 팔란티어가 있다. 틸이 직접 창업한, 데이터와 권력을 동시에 장악한 기업이다.
팔란티어는 틸의 철학이 직접 구현된 회사다. 2003년 세상 누구도 데이터를 주목하지 않던 시절 틸은 9·11 테러에서 교훈을 찾았다. “정부가 충분한 데이터를 갖고 있었음에도 활용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 그는 데이터를 무기화하는 기업을 만들기로 했다. 사이버 범죄 경험을 토대로 정부·공공·기업이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조기 대응할 수 있는 툴. 그렇게 팔란티어가 태어났다.
창업 초기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카프 CEO는 당시를 “서커스의 시작”이라고 표현했다. 대형 군수업체의 철옹성을 뚫기는 쉽지 않았다. 팔란티어의 생명줄은 창업자 틸이 밀어 넣은 자금과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라는 그의 신념뿐이었다.
판은 바뀌었다.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가 오사마 빈라덴 추적, 버나드 메이도프 금융사기 수사 등 굵직한 사건에 쓰이면서 CIA, FBI를 비롯해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간, IBM으로 고객군이 확장됐다.
지금 팔란티어는 21세기 정부와 공공기관, 대기업이 의존하는 데이터 기반 전략 도구로 자리 잡았다. 정부나 공공기관은 테러 조직의 무차별 공격 증가에, 대기업은 공격적 스타트업의 파괴적 에너지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팔란티어의 실체를 두고 갑론을박은 이어진다. 팔란티어의 주가 폭등 이후 일부 투자자 사이에서는 “팔란티어만 도입하면 기업이 급성장한다”거나 “실체 없는 툴을 마케팅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극단적 주장이 동시에 쏟아진다. 과열의 전형적 신호다. 하지만 팔란티어와 협업한 IT 관계자는 이런 주장이 팔란티어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팔란티어 시대가 온다?최고의 주식이지만 팔란티어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정확히 모르고, 고객사마다 팔란티어가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같은 회사를 두고도 고객마다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기 때문이다. 국방 고객에게 팔란티어는 ‘고담(Gotham)’이라는 군사 데이터 플랫폼이고, 민간 고객에게는 ‘파운드리(Foundry)’라는 기업 데이터 솔루션이다. 어떤 고객은 팔란티어를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툴로, 다른 고객은 AI 플랫폼, 또 어떤 고객은 CRM 혹은 ERP 대체재로 인식한다. 하나의 소프트웨어가 고객의 문제에 맞춰 다양한 얼굴을 하기 때문이다. 팔란티어를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서 나온다.
팔란티어를 쓴 업계 관계자들은 적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기존 컨설팅 회사들이 ‘문제를 정의하고 PPT를 남기는 것’에 그쳤다면 팔란티어는 데이터 기반으로 실제 문제 해결에 뛰어드는 기업이다. 고객사의 현장에 엔지니어를 파견해(FDE·Forward Deployed Engineer) 데이터를 통합하고 실행 가능한 솔루션을 만든다. 전략을 흉내내는 게 아니라 데이터로 검증된 실행 결과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전쟁터에서, 글로벌 공급망에서, 금융사기 수사에서 그 효과를 입증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팔란티어의 영업 방식은 독특하다. 대규모 영업 조직 대신 고객사의 문제를 해결해 성공 경험을 남기고 그 경험이 새로운 고객에게 팔린다. 화학 회사의 공급망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 곧 배터리 기업에도 통한다. 이렇게 쌓이는 ‘성과 기반 영업’은 분기마다 폭발적인 매출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의 정치 환경도 팔란티어의 시대를 밀어올리고 있다. 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로 트럼프 1기 시절에도 실리콘밸리 거물들과의 만남을 주선했고 그 자리에는 비상장 기업이던 팔란티어의 카프 CEO도 있었다.
2025년 다시 중앙에 선 트럼프 2기 정부의 핵심 과제는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와 비효율적 예산의 대폭 삭감이다. 수많은 프로젝트가 줄줄이 폐기되는 와중에 팔란티어는 오히려 미 정부와 10년간 14조원 규모의 장기 계약을 따냈다. 웨드부시증권의 댄 아이브스는 이를 두고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국방부 소프트웨어 계약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기존 산발적 계약이 하나로 묶이며 팔란티어는 ‘필수 전략 도구’로 격상됐다. 이는 팔란티어가 단순한 IT 기업이 아니라 미국이 국가 운영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기업임을 보여준다.
카프 CEO는 이미 다음 무대를 보고 있다. 주주서한에서 그는 “팔란티어의 새로운 핵심이자 앞으로 몇 년 안에 전 세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산업이 될 씨앗은 미국의 상업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고객 기반은 빠르게 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을 합한 전체 고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43% 증가한 849개, 이 가운데 미국 기업 고객만 485개로 64% 늘었다. 국내에서 팔란티어와 협업한 한 관계자는 “팔란티어는 2030년에는 7000개, 2035년에는 7만 개 고객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팔란티어는 절대 헐값으로 덤핑하지 않는다. 고객 수가 100배로 늘어난다면 매출도 전혀 다른 차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 한 가지는 분명하다. 팔란티어는 기업가이자 투자자인 틸이 그토록 강조한 ‘제로투원’, 즉 0에서 1로의 전환을 가장 극적으로 실행한 기업이란 점이다. 데이터 기반 문제 해결이라는 새로운 산업 영역을 열었고 정부와 민간, 전쟁터와 기업 현장 모두에서 필요로 하는 ‘실행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신간 ‘팔란티어 시대가 온다’의 저자이자 국내 최초로 팔란티어와 협업해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변우철 KT 본부장은 “팔란티어는 단순히 주가가 급등한 기업이 아니다”며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분석하는 차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방·정보기관·민간기업 등과 깊게 연결돼 있는 독특한 구조의 소프트웨어 기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기적인 주가 흐름이나 외부 기대감만으로 기업가치를 판단하기보다는 팔란티어가 실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그 역량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는지를 중심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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