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전경./한경비즈니스
서울 시내 전경./한경비즈니스
LH를 통해 아파트를 직접 지어 공급하겠다는 중앙정부의 9·7 조치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발언이 관심을 끌고 있다. 아파트 공급에 공공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중앙정부와 민간을 통해 아파트를 공급하려는 서울시 주택정책 중 어떤 것이 더 현실적인 것인지, 누가 맞고 누가 틀리는지 살펴보자.

9·7 조치의 핵심은 공공기관인 LH가 조성한 땅을 민간 건설사에 팔지 않고 직접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장기적인 수급 개선에 도움이 되고 공기업이라는 신용도를 바탕으로 자금 조달을 원활히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9·7 조치로 나타난 중앙정부의 판단이 맞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지역으로 국한해 보면 LH의 장점이라는 것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택지 없는 서울, 공급 가능할까
첫째, 서울에서는 토지 수용을 통해 대규모로 택지를 조성할 지역이 남아 있지 않다. 3기 신도시 등 대규모 택지 개발이 필요한 수도권 외곽 지역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것이다.

물론 서울에서도 LH가 시행사 역할을 하는 공공재개발이 몇 군데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수는 전체 물량에 비해 미미하다. 그 원인은 주민들의 브랜드 선호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과거 주공아파트의 이미지 때문인데 ‘싸고 많이’ 지으려는 LH의 목표와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수요자의 소득과 생활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아파트도 점점 고급화되고 있다. 1990년 이전에 지은 아파트와 요즘 짓는 아파트는 외관만 비교해 봐도 마감재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이런 이유로 서울의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의 대부분은 민간 건설사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9·7 조치를 통해 공공이 공급을 담당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한 오세훈 시장의 주장은 이를 근거로 한 것이다. LH의 경쟁력은 토지 조성원가와 정부를 뒤에 업은 자금 동원력이라 할 수 있는데 서울에만 국한해 보면 LH의 경쟁력은 뛰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재건축이나 재개발 사업은 LH가 토지를 조성하는 것도 아니고 서울에서 재건축이나 재개발 공사를 진행하는 대부분의 건설사는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탄탄한 대기업군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는 서울에 국한해서 보면 오세훈 시장의 말이 맞는 것이고 서울을 제외한 전체 주택 시장을 보면 중앙정부의 시각도 틀렸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서울 주택 공급에서 재건축·재개발의 비중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다음 표는 통계청에서 발표한 주택 수를 정리한 것이다. 2015년 이전에는 5년 단위로 조사하다가 2015년 이후부터는 매년 조사해서 발표하고 있다.

이 통계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전체 주택 수는 1388만3571채이고 그중 아파트는 818만5063채로 아파트가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8.96%였다. 15년 전에도 우리나라 주택 다섯 채 중 세 채 정도가 아파트였다.

이때만 해도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서울 지역은 58.93%, 서울 외 지역은 58.96%로 상당히 비슷한 수준이었고 그 차이는 0.03%포인트에 불과했다.

그런데 14년이 지난 2024년에는 그 차이가 무려 6.144%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4년에 서울 외 지역에서는 66.3%까지 늘어났는데 서울 지역은 60.1%에 불과했다.
땅 없는 서울에 LH 아파트 지을 수 있을까[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그러면 지난 14년간 서울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를 연도별로 정리하면 위 표와 같다. 서울 지역의 경우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0년에 58.9%로 정점을 찍고 2020년 58.8%에 이를 때까지 10년간 답보 상태를 면치 못했다. 심지어 2016년에는 58% 미만으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공급 없던 10년, 서울 집값 70% 올랐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의 기간은 서울 아파트 공급 역사에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할 수 있다. 아파트보다는 빌라 등 다른 주택을 더 많이 공급했기 때문이다. 서울은 다른 지역에 비해 평균 소득도 높고 평균 자산도 많은 지역이다. 다시 말해 고소득층이 선호하는 아파트의 수요가 많은 지역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늘어나는 수요에 비해 공급은 늘어나지 못했으니 서울에서의 아파트라는 것은 ‘희소성이 보장된 안전 자산’이라는 인식이 시중에 퍼지면서 서울 아파트값이 지난 몇 년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5년 8월부터 올해 8월까지 지난 10년간 전국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27.2%에 불과하지만 서울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무려 70.7%나 달한다. 상승률 차이가 43.5%포인트나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빌라가 포함된 ‘연립’ 부문의 상승률을 살펴보면 전국은 23.5%, 서울은 33.8%로 그 차이가 10.3%포인트밖에 나지 않는다. 빌라의 경우도 (주택 수요가 많은) 서울이 더 많이 오르는 경향이 있지만 아파트보다는 그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잃어버린 10년’의 기간 동안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 기간은 전임 박원순 시장의 임기와 일치한다. 박원순 시장의 임기 동안 서울의 주택 정책으로 인해 서울 아파트 공급이 거의 끊겼음을 의미한다. 대신 이 기간에 빌라를 포함한 비아파트 주택 공급에 초점을 맞추었다.

재개발이나 뉴타운 사업을 활성화하면 기존 서민의 주거지가 줄어들고 그 자리에 들어설 아파트를 (돈이 많은) 투기꾼들이 차지할 거라는 단순한 생각이 아파트 공급을 막았다.

또한 재건축 사업을 허가해주면 (돈이 많은) 소유주들의 이익이 늘어나기 때문에 허가를 해주면 안 된다는 생각 또한 서울에서의 아파트 공급을 막았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재건축·재개발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과거 서울시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하여 서울 아파트의 희소성을 정부에서 보장해 주는 아이러니를 만들었다.

2020년 이후에는 서울에서도 아파트 비중이 점점 높아져서 2024년 말에는 60.1%에 이르고 있다. 지난 5년간 1.8%포인트가 개선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과거보다 개선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뜻이지 (같은 기간 동안 서울 외 지역은 무려 3.3%포인트나 늘어난 것에 비교하면) 그 속도 면에서는 아직도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은 (농어촌 지역이 포함된) 서울 외 지역에 비해 아파트 비중이 절대적으로 적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서울시에도 이를 인지하고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로 정책 방향을 선회한다고 한다. 다만 이를 중앙정부와의 정쟁 도구로 사용하기보다는 기부채납 축소 등 서울시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규제완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불과 작년까지 ‘용적률 증가는 공공재’이므로 기부채납이 과도하지 않다는 것이 서울시의 입장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에서도 대승적 차원에서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나 ‘분양가상한제’와 같은 공급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히 해제해야 한다.

서울은 주택 수요가 많고 점점 늘어나는 지역이다. 이에 비해 주택 공급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아주 적고 늘어나는 속도도 더디다.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서울 아파트의 희소성을 보장하면서 전국의 투자 자금을 블랙홀처럼 집어삼키는 현상이 지난 몇 년간 계속 반복되고 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에 중앙정부나 서울시가 (서로의 공을 내세우기보다는) 서로 손을 잡기를 국민들은 바라는 것이다.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