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큐레이터’…‘우상의 몰락’ 주제 전시회 기획한 시민큐레이터 안유선 씨

△ 안유선 제3기 시민큐레이터


[캠퍼스 잡앤조이=이신후 인턴기자/사진 제공=안유선] “‘우리 우상’은 개인의 우상 혹은 사회의 우상이 몰락한 모습을 통해 ‘우리’의 우상은 무엇이고, 이미 몰락한 우상을 섬기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기획한 전시죠.”


안유선 씨는 자신이 기획한 ‘우리 우상’ 전시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언뜻 들으면 한번에 이해하기 쉬운 말은 아니다. 가만히 서서 의미를 생각해야 이해될 법한 전시를 기획한 안유선 씨는 명지대 문예창작과(14학번) 휴학생이다.


대학생이 기획 전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시민큐레이터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이 프로그램은 2015년부터 시민을 대상으로 큐레이터 양성교육을 운영하고, 교육을 수강한 사람 중에서 기획 전시 희망자를 신청받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안 씨는 제3기 시민큐레이터에 선정돼 연남동에 있는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담다’에서 10월 18일부터 27일까지 기획 전시를 꾸릴 수 있게 됐다. 갤러리에서 그녀를 만나 자세히 들어봤다.


‘나도 큐레이터’…‘우상의 몰락’ 주제 전시회 기획한 시민큐레이터 안유선 씨

△ 안 씨가 기획한 전시가 열리는 ‘아트스페이스 담다’의 정문


- ‘시민큐레이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휴학했나

“학업을 잠시 쉬며 그동안 창작에 집중하려고 휴학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프로그램은 올해 어머니가 알려줬다. 어머니가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도슨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내가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좋아하기도 하고, 전시에 관심이 많다 보니 전시 관련 프로그램이나 강의가 있으면 알려주신다. 처음에는 시민큐레이터를 꼭 하겠다는 마음으로 신청한 것은 아니다. 시민큐레이터 선정 절차는 1차 서류 전형, 큐레이터 양성교육, 전시 기획안 제출, 전문가와의 면접 순으로 이뤄진다. 또 미술 관련 종사자와 일반인 부문으로 나눠 신청하게 돼 있다. 일반인 부문은 1차 선발이 컴퓨터 추첨이다. 인기가 많아 대기번호를 받는 사람도 있다. 교육만 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 ‘우리 우상’이라는 아이디어는 언제 떠올랐나

“교육이 현장 중심으로 구성된 커리큘럼이 아니어서 초반엔 어떤 전시를 기획해야 할지 감을 못 잡았다. 4월부터 미술사, 독립 큐레이터의 현장 이야기, 건축 강의, 포스터 디자인 강의 등을 듣다가 갑자기 갤러리에 올릴 전시를 생각하는 게 아마추어의 입장에선 무척 어렵고 막막했다. 마감일은 다가오고 초조하던 중 멘토링을 해주는 학예사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이전부터 해오던 고민을 토대로 전시를 기획해도 좋다’고 조언했다. 그때 작년에 읽은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개인 혹은 사회의 멘토로 여겨지는 유명 정치인, 학자, 예술가 등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한다는 내용이었다. 개인적인 경험도 있었다. 작년 10월, 문단 내 성폭력이 화두에 올랐다. 문예창작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존경하던 작가들의 이름이 오르내리자 혼란스러웠다. ‘나의 우상’의 몰락이라고 할까. 이후 ‘멘토’라는 단어와 ‘우상’이라는 단어 사이의 간극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나의 우상과 집단, 사회의 우상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타인의 우상은 무엇인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 이를 한 데 모은 전시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 비전공자인 대학생이 시민큐레이터로 선정된 이유는

“3학년부터 미술사학과를 복수전공하기 시작해 미술과 아주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선정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7월 2차 전형 때 면접장에 5명 정도 같이 들어가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 외부 전문가 등으로 꾸려진 면접위원과 짧게 면접을 봤다. 주로 ‘이걸 미술관에 어떻게 전시할 수 있을까요?’라거나 기획 의도 등을 물어봤다. 전시 주제의 독창성, 현실성(전시장에 구현할 수 있는 전시인가)을 다른 기준보다 높이 평가하는 듯하다.”


‘나도 큐레이터’…‘우상의 몰락’ 주제 전시회 기획한 시민큐레이터 안유선 씨

△ 시민큐레이터 양성교육을 듣는 수강생들의 모습


- 큐레이터면 전시 의도에 맞는 작가를 발굴해 직접 섭외까지, 모든 것을 총괄하는 건가

“맞다. 그래서 전시 개막일 전까지 아마추어 티가 날까봐 스트레스로 잠도 잘 못잤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섭외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멘토링 교육과 700만원 지원해주는 게 전부더라. 솔직히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내 기획을 믿고 선정해준 것이니 해내자는 마음으로 8월부터 무작정 인터넷으로 작가를 검색해 이메일도 보내고 전화해서 사정하고 그랬다. 갤러리 섭외도 서울 시내에 대관이 되는 곳을 찾기 위해 이메일, 전화 등 연락수단을 총동원했다. 포스터도 디자인을 전공한 지인에게 부탁했다. 이때 내가 관련 전공자였다면 전시를 꾸리는 데 한결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더라.”


- 노력 끝에 발굴한 작품을 간단히 소개해준다면

“총 6작품을 전시하게 됐는데, 작품마다 작가(개인)의 우상 혹은 사회의 우상을 나타내고 있다. ‘탈선 아카이빙’은 고양예고 문예창작과 졸업생 연대 ‘탈선’의 이야기와 과정을 타임라인, 기자회견 당시 성명 발표와 자유 발언 영상, 기자회견 방명록 등을 게재한 것이다. ‘탈선’은 문단 내 성폭력을 일으킨 가해자가 작가 지망생에게 존경받는 우상의 위치에 있고, 이에 따라 발생한 권력을 휘둘러 발생한 문제임을 강조한 바 있다. 김미련 작가의 ‘XXX Large-보디츠코에의 헌정’은 작가의 고향과 관련 깊은 작품이다. 김 작가의 고향은 경상북도로,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사업에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은 지역 중 하나다. 박정희 우상화 사업의 중심지에서 자라온 작가가 사드 배치로 인한 박근혜 정부와 성주 주민간의 갈등을 목격한다. 조은비 작가의 ‘먹히다2’는 개인의 부정적인 감정에 잡아먹히는 것, 몰락의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고 끝내는 증오에 이르는 개인의 형상을 표현해 낸 그림이다. 이외에도 변하영 작가의 ‘화양연화’, 머머링 프로젝트의 ‘HELL로역정’, 이규민 작가의 ‘우상분쇄: 담벼락’은 각각 사회가 규정한 개인의 모습, 한국 청년의 탈한국 방법, 우상을 경외하게 만드는 행위를 작가만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표현했다. 전시장에 직접 들러 관람하는 것이 이해가 더욱 빠를 듯하다. (웃음)”


‘나도 큐레이터’…‘우상의 몰락’ 주제 전시회 기획한 시민큐레이터 안유선 씨

△ ‘탈선 아카이빙’은 갤러리 오른편에 조성돼 있었다


- 전시가 시작되고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학생 신분으로 꾸린 전시다 보니 ‘신기하다’라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알고 보니 제3기 시민큐레이터 중 대학생인 사람도 나밖에 없더라. 그래도 큐레이터와 도슨트를 헷갈려 하는 지인들에게 명확한 차이를 알려주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의 꿈을 위해 나아갈 때 큰 원동력이 될 것 같다. 전시장 동선을 생각하는 일이나 작가 발굴 등 힘든 과정이 많았지만, 막상 시작하니 굉장히 뿌듯하다. 큐레이터로서 작가와 어떻게 소통하면 좋을지, 작품에 어디까지 관여해야 좋은지 등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이 됐다.”


- 큐레이터라는 꿈을 가진 비전공 학생이 많다. 관련 활동을 찾는 노하우를 말해준다면

“사실 실무 경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잘 못 봤다. 이 프로그램을 알기전에는 주로 미술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무료 강의를 찾아봤다. 기업에서 운영하는 갤러리도 잘 찾아보면 무료 강의가 열리는 곳이 있다. 미술사 강의나 큐레이터 토크 프로그램 등에 참여했다. 또 관련 재단, 미술관이 운영하는 SNS 계정을 구독해 이벤트, 강의 등의 정보를 알아보고 신청하기도 했다. 비전공자라면 전공자들보다 더욱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도 큐레이터’…‘우상의 몰락’ 주제 전시회 기획한 시민큐레이터 안유선 씨

△ 전시장의 전경과 ‘우리 우상’의 포스터 및 안내 책자


-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예술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가 목표다. 동시에 노력이 느껴지고 주제와 색이 선명한 전시를 만들고 싶다. 전시를 관람하러 온 사람들이 전시 주제, 작품, 디자인 등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흥미를 느끼고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겠다.”


sin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