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최애숙 변호사, “32세의 늦은 나이에 고시공부 도전해 결국엔 변호사 됐죠”

[하이틴 잡앤조이 1618=정유진 기자]최애숙 변호사를 보면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사자성어 ‘대기만성(大器晩成)’이 떠오른다. 정화여상을 졸업해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최 변호사는 조금 더 안정적인 일을 하고 싶어 32세에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새로 도전을 시작하기에는 다소 늦은 나이였지만 당시만 해도 여성이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을 하면 일을 관둬야 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과 주변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택한 건 사법고시 공부였다. 남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지만 최 씨는 고시공부에 도전한지 4년 만에 사법고시 1,2차를 모두 패스했다.


주변사람의 만류에도 30대 늦깎이 고시생활 시작

1982년 정화여상을 졸업하고 바로 삼성물산에 입사한 최 변호사는 93년까지 11년 동안 한 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는 6년차쯤 됐을 때 결혼 때문에 직장을 관두는 여자 동료들을 보고 “보다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을 수없이 했다.

최 씨의 고민은 11년차가 될 때까지 계속됐지만 집안 사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쉽게 직장을 관둘 수 없었다. 하지만 마침내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정을 내린 최 씨는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최 변호사는 “안정적이면서도 만족할 수 있는 직업을 찾고 싶었다.”며 “현실에 안주하는 대신 도전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당시 최 변호사는 퇴사 이후 재취업 보다는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막상 퇴사를 하고 보니 ‘나의 미래’가 불안정했다.”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지금껏 인생에서 한번이라도 치열하게 공부했던 기억이 없어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회상했다.

[1618]최애숙 변호사, “32세의 늦은 나이에 고시공부 도전해 결국엔 변호사 됐죠”

그는 우선 가장 안정적인 직업인 공무원에 도전하고자 했다. 또 공무원에 대해 알아보던 찰나에 지인의 추천으로 법원행시를 접하게 돼 법원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최 변호사는 법원 공무원 준비를 위해 노량진 학원가로 직행했다. 그리고 최종 진로를 사법시험 도전으로 선회했다. 시험 보는 과목은 비슷한데 비해 법원행시보다 사법시험의 합격률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법원행시는 2년에 10명을 뽑았고, 사법시험은 매년 1차만 1,000명씩 선발했다고 한다.

그가 사법시험에 대한 의지를 불태울수록 주변사람들의 만류도 심해졌다. 특히 “상고 나와서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이 무슨 사법시험 공부야”라는 편견이 불편하기도 했다.


고시 준비로 부친 임종도 못 지켰지만 불굴의 의지로 4수 끝에 합격

최 변호사는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 ‘고시촌’의 대표 격인 신림동에 방을 얻었다. 아침에 일어나 민법을 학습하고 사법시험 중 선택과목인 제2외국어(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을 오가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비결로 본인의 노력보다는 남편의 ‘외조’를 꼽았다. 최 변호사는 “내가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의 8할은 남편의 아낌없는 지원”이라며 “학원에서 우연히 사법시험을 먼저 공부하던 남편을 만났는데, 그는 과목별 공부 방법을 알려줬을 뿐만 아니라 꼭 들어야 하는 강의까지 추천해줘 큰 도움을 받았다. 나에게 그는 과외선생님 이상이었다.”고 밝혔다.

법학 비전공자에 상고출신 고시생이라 처음에는 학원 강사들도 수업을 이해 못할까봐 우려했지만 최 변호사는 의외로 잘 적응했다. 그는 “막상 본격적으로 사법시험 준비를 해보니 재미있었다.”며 “특히 법이 실생활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공부에 한참 열을 올리던 도중에 위기가 찾아왔다. 두 차례 고배를 마시고 다시 도전한 고시생 3년차 1차 시험을 앞두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그는 “1차 시험날을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임종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가족들이 시험을 목전에 둔 내게 말을 해주지 않아 아버지의 임종도 못 지키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죄책감과 회의감에 낙담에 빠진 최 변호사는 3번의 도전을 모두 실패하고 고시생활을 접은 채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갈증을 접지 못한 그는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각오로 네 번째 도전에 나섰고 1, 2차 모두 한번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다.


‘승소’했을 때 가장 뿌듯함 느껴…

[1618]최애숙 변호사, “32세의 늦은 나이에 고시공부 도전해 결국엔 변호사 됐죠”

남들보다 늦깍이 고시생으로 출발한 최 변호사는 의뢰를 받은 모든 사건이 소중하다. 특히 변호사 개업을 한 이후에는 승소했을 때 가장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그는 “하나의 사건이 길게는 2년 정도 시간이 걸려 마무리 될 때가 있는데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사건일수록 뿌듯함이 더 크다.”며 “민사사건보다 당사자의 유?무죄를 다루는 형사사건에서 승소했을 때 더욱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 씨는 다양한 사건을 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법률 상담을 하고 있지만 변호사만이 갖는 고충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소송과정에서 의뢰인이 변호인에게 사건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를 해 줘야만 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근거를 추릴 수 있다.”며 “의뢰인이 변호사를 믿지 않고 충분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상대편에게 약점을 잡히고 잘 되던 재판이 역전돼 패소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최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가장 필요한 덕목을 ‘사람과의 소통’으로 꼽는다. 그는 “변호사는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바탕에는 항상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며 “의뢰인의 입장에서 사건에 몰입해야 핵심근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인생은 정해져 있지 않다”

최 변호사는 특성화고 출신이라는 남다른 이력으로 강사로 활약하는 등 일약 유명인이 됐다. 최근에도 모교인 정화여상을 찾아 ‘꿈과 진로’라는 주제로 후배들에게 강연을 했다. 하지만 최 변호사는 다시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보다 전문적인 변호를 하기 위해 심리학 공부를 계획하고 있다. 정확한 상담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의뢰인의 심리를 잘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강관리에도 열심이다. 과중한 업무를 견디려면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서다. 육체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요즘은 먼 훗날 불현듯 찾아올지도 모르는 치매 예방을 위해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인생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최 변호사의 도전은 오늘도 계속된다.


jin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