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안다비(27) 씨의 직업은 아이디어 디렉터다. ‘아트 디렉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자인 디렉터’ 등은 들어봤어도 ‘아이디어 디렉터’는 생소해 물으니 본인이 직접 만든 직업이란다. 말로만 듣던 ‘창직’을 몸소 실천한 인물을 드디어 알현했다.
△ (사진=이승재 기자)
“제 키가 190cm예요. 모두들 저만 보면 ‘농구선수’, ‘모델’을 하라고 했죠. 어릴 적부터 그런 얘길 듣다보니 고민도 없이 제 꿈은 ‘모델’이 됐어요. 하지만 정말로 모델로 무대에 서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조금도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이건 내 꿈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뭘까 고민하게 됐어요. 막연히 ‘손재주와 아이디어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라는 일까지는 떠올랐는데, 명확하게 그게 어떤 직업인지는 모르겠더라고요.”
내게 딱 맞는 직업이 없어? 까짓 거 만들면 되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나온 결론은 ‘파티플래너’였다. 안 씨는 파티플래너가 되기 위해 대학의 전공도 이벤트연출학으로 선택했다. 졸업 후에는 원하던 파티플래너가 됐다. 하지만 상상과 현실은 많이 달랐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신나는 파티를 기획할 줄 알았건만 매일 400인분의 카나페를 만드는 것이 안 씨의 주된 업무였다. 월급도 몇 달 동안 받지 못해 생계유지도 어려웠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그녀는 또 다시 진로 고민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막연히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녹색창의 지식인들은 ‘대학을 다시가라’는 조언 밖에 해주지 않았다. 당장 학자금 갚을 돈도 없는데 무슨 대학을 가겠냐며 한탄하던 그녀는 ‘이렇게 된 거 그냥 내가 직업을 만들자’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렇게 만든 신개념 직업이 바로 ‘아이디어 디렉터’다.
△ 'why'를 이용해 튤립 모양 이미지를 연출한 'why 아트' (사진 제공=안다비)
‘아이디어 디렉터’라는 직업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주긴 했지만, 안 씨 조차도 어떤 일을 해야할지에 대해서는 막막했다. 꿈과 현실 사이 고민은 계속됐고, 그녀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답답함을 담아 노트에 ‘why’를 깜지 쓰듯 빽빽하게 적어 내려갔다.
“‘도대체 세상은 왜 이런 거야! 왜! 왜!’하며 ‘why’를 반복적으로 적어갔어요. 그렇게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이 글자가 튤립처럼 보이더라고요. 밑에 잎사귀를 달아주니 더욱 꽃처럼 보였죠. 그 순간 ‘why’라는 호기심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호기심이 돈을 만들어주지는 않지만 자신의 꿈을 잃어버리지 않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밑천이 되잖아요.”
안 씨는 이런 호기심에 대한 생각을 다른 사람과도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이 좋아 아이디어 디렉터지 백수와 다를 바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러 누가 올까 싶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전시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림 몇 점 걸어두고 사람들을 초대하면 그게 바로 전시회고 강연장이 되는 것이었다.
△ 전시회에서 선보인 why 아트 (사진 제공=안다비)
그림은 지난번에 그린 why로 만든 튤립으로 정했다. 정성껏 why 튤립을 여러개 그리고 나름 ‘why 아트’라는 이름도 붙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이걸 보러 누가 오긴 할까’ 싶었다. 와서 ‘이게 전시회냐며 행패를 부리면 어쩌나’ 걱정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38명이 그녀의 전시회를 찾았고, 호기심에 대한 그녀의 열변을 경청해주었다. 그러고는 돌아가는 길에 why 아트를 구입하고 싶다는 황당한 팬심까지 선보였다. 안 씨는 무료로 그림을 사람들에게 나눠줬고, 그림을 가져간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여주자며 그녀에게 힘을 북돋아줬다. 응원에 힘입어 그녀는 두 번째, 세 번째 전시까지 열었고 이후 초중고등학교나 노인 대학 등에 강연자로 초대돼 사람들의 호기심을 들어주고 그들의 호기심을 응원해주고 있다.
△ 전시회를 찾은 관객들에게 호기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 안다비 씨 (사진 제공=안다비)
여러분, 호기심이 이렇게 무서운 거예요
안 씨는 호기심의 위대함에 대해 ‘소심한 나를 네덜란드까지 날아가게 만든 것’이라 설명했다. 사건은 이렇다. 자신이 아는 것만, 자신이 살아온 인생만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어른들의 생각이 정답이 아니란 것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던 그녀는 평소 좋아하던 멘토스(네덜란드 사탕 브랜드)를 떠올렸다.
“딸기맛과 레몬맛 멘토스가 있는데 누군가 ‘레몬맛만 먹고싶어’라고 말하는 거예요. 평생 딸기맛만 먹은 사람은 ‘그건 불가능해’라고 말하고 레몬맛만 먹은 사람은 ‘가능하지’라고 말하겠죠. 또 레몬과 딸기맛이 섞인 제품만 먹은 사람은 ‘딸기맛을 참고 먹다보면 레몬맛도 먹을 수 있어’라고 말하고요. 한 사람의 말에 너무 두려움을 갖지 말라는 의미로 만들었는데, 완성하고 보니 만족스럽더라고요. 멘토스에 광고 제안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죠.”
△ 안다비 씨가 제작한 멘토스 광고의 일부 (사진=영상 캡처)
하지만 서울 강남 어디쯤에 있을 것 같던 멘토스 본사는 멀리 네덜란드에 위치해 있었다. 해외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어 비행기 값이 KTX와 비슷한 줄만 알았던 그녀는 200만원이라는 가격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졌다. 말도 안되는 가격이라 생각했지만 가고 싶은 마음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안 씨는 죽을둥 살둥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았고 영어 한 마디 제대로 못하면서 2015년 겨울, 무작정 네덜란드로 떠났다. 출근시간 몰래 직원들 사이에 껴서 멘토스 본사에 잠입한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관계자를 만났고, 영상을 보여주는 것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영어 한 마디 못하는 그녀가 영상에 대한 기획 의도나 방향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네덜란드까지 날아간 것이 허망할 정도로 미팅은 흐지부지 끝났고 아무 성과 없이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한국에 돌아와 한동안 멍했어요. 호기심이 이렇게 어마무시하구나를 느낀 거죠. 당시 네덜란드는 테러 위협도 있었는데 영어도 못하고 길치에 겁도 많으면서 호기심 하나로 거기까지 간거잖아요. 호기심은 당장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을 만들 수 있는 에너지가 되고, 내 안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 (사진=이승재 기자)
그녀는 두 번째 호기심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할리우드로 떠날 계획이란다. 호기심에 관한 각종 책과 논문, 기사는 무조건 읽던 중 ‘큐리어스 마인드’라는 책을 낸 영화 제작자를 알게 된 것이다. 그 사람이 책을 통해 ‘호기심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한 것을 보며 그녀는 ‘그럼 내가 가줘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열심히 돈을 모으고 영어 공부를 해 내년 초에는 미국으로 떠날 계획이다.
“떠나기 전까지 계획했던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볼 예정이에요. ‘천원의 재능 프로젝트(자신의 자잘한 재능을 1천원에 파는 플리마켓)’이나 책을 쓰는 일 등이요. 그리고 언젠가는 ‘호기심 공장’을 만들고 싶어요. 공장에서 다양한 원료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재료로 해서 의미있는 아이디어를 만들거나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의 소재로 활용하는 거죠. 에디슨이 전구를 만든 것은 ‘밤을 낮으로 바꿀 수 없을까’ 하는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됐다고 해요. 저는 누구나 머릿속에 갖고 있는 호기심의 씨앗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응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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