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돌던 대학생활, 학사경고만 2번

일본서 자신감 얻고 실리콘밸리에 도전

실패해도 영어는 남는 거 아닌가

직원 뽑을 때 서류 지원자까지 모두 면접

그것 자체가 영어 공부

갈라넷 창업해 매년 1000% 성장

2명이 동시에 즐기는 VR 게임 준비 중

창업은 타이밍이 핵심

트렌드가 시작될 때 창업하고 급성장 할 때 팔아라


미국 VR게임 시장의 한복판에 서있는 한국인이 있다. 바로 정직한 서브드림 스튜디오 대표다.


연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정직한 대표는 SBS 엔지니어, 일본 포털사 비즈니스 담당자를 거쳐 2005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게임사 갈라넷을 창업해 7년간 매출 연 400억원 규모로 키웠다.


인기 프랜차이즈 게임 ‘하얀고양이 프로젝트’로 유명한 코로프라 북미지사장으로 일하면서는 VR게임 사이버퐁(Cyberpong)을 선보여 1만 건 이상 다운로드까지 성공시켰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현재는 코로프라를 나와 ‘서브드림 스튜디오’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고 소셜 VR게임 시장에서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별에 빠졌던 연대생, 미국 소셜 VR게임의 중심에 서다



대표님의 주 무대는 실리콘밸리잖아요. 오랜만에 한국에 오신 이유는 뭔가요?

이번에 서브드림 스튜디오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투자자도 만나고 계약관계도 논의하러 왔습니다.


또 다른 도전을 준비 중이시군요. 처음 이 길엔 어떻게 들어서게 됐나요.

제 첫 창업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일본 익사이트 재팬에서 근무한 게 시작이었어요. 야후 같은 일본 1세대 포털사였는데 그 중 게임담당 부서에서 한국 게임의 라이센스를 일본으로 가져와 서비스하는 일을 맡았죠. 원래 전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회사에 한국인이 몇 명 없다 보니 간단한 통역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 계약서도 검토하고 나중엔 영업까지 하게 된 거죠. 급기야 단독 비즈니스를 맡아 운영하기도 했고요.


게임 비즈니스 시장의 남다른 비전을 봤기에 직종까지 바꾼 것이겠죠.

당시 일본게임은 대부분 유료라 매달 이용료를 내게 했는데 우리나라의 엠게임이 게임을 무료로 풀고 대신 아이템을 구매하게 하고 있더라고요. 정말 획기적인 아이디어라 생각해서 회사에 제안 했더니 저보고 한국에 가서 직접 월 매출 3억을 찍을 때까지 이 사업을 완성시켜보라고 했죠. 목표치를 찍는 순간 돌아오는 비행기는 일등석으로 끊어주겠다고요. 정확히 두 달 반 만에 일등석을 타고 돌아왔어요. 자신감도 붙었죠. 그럼 이제 미국시장에 도전해보자 생각했어요. 당시 이 회사는 일본이 자회사 개념이고 본사는 미국에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자회사가 본사에 사업을 제안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서른 살에 회사를 나와 직접 창업을 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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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와 창업,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마침 회사 매출이 급증해서 주식 상장도 앞둔 시기였어요. 조금만 있으면 스톡옵션을 받고 몇 억씩은 쥘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제가 퇴사 1호였어요. 제게 당장의 몇 억은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만약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영어라도 배운다면 이게 몇 억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미국행은 제 오랜 꿈이었기도 했고요.


미국의 창업 인프라 때문인가요?

아니요. 제 취미가 별 보는 거예요. 천체망원경이 유명한 곳이 일본과 미국이거든요. 일본은 살아봤으니 이제 남은 건 미국이었죠.


대학 전공은 무엇이었나요. 일본회사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된 거예요?

순탄치 않았어요. 별 보는 게 취미라고 했잖아요. 고등학교 때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지망했어요. 그런데 막상 원서를 쓸 때가 되자 선생님이 뜯어 말리시더라고요. 천문학과는 돈벌이가 안 된다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부모님, 주변 선배들과 상담을 해봤는데 다들 극구 반대했어요. 전공이 나중에 직업, 그리고 재산으로까지 연결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죠. 어쩔 수 없이 토목공학과로 방향을 틀었어요. 당시 건설 경기가 호황이라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고 다들 그랬거든요. 결국 현실을 택한 거죠.


급하게 바꾼 진로인데,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늘 겉돌았어요. 돌파구로 찾은 게 동아리였죠. 대학생활 대부분을 천문 동아리에서 보냈어요. 그러다 보니 학점도 안 좋고 학사경고도 두 번이나 받았죠. 2학년 2학기 때 제 학점이 흔히 ‘선동열 방어율’이라고 부르는 0점대였거든요. 그러다 제대 후에 본격적으로 조급해진 거예요. 급하게 ‘나는 토목을 좋아한다’라며 최면을 걸었고 다행히 복학 첫 학기, 4.0점 만점에 3.9점을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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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전공을 살려서 건설사에 취업하지 않았나요.

그게 오래가지 않더라고요. 당시 여자친구가 방송국 입사를 준비해서 데이트 겸 같이 언론고시를 준비했는데 4학년 1학기 때 SBS 기술직에 덜컥 합격했어요. SBS i라는 인터넷 서비스사업을 담당했는데 마침 당시가 2000년, 한창 인터넷 붐이 일 때라 해외에서도 견학하러 많이 왔어요. 그러다가 한 일본 벤처 대표를 만났는데 제게 이 서비스를 일본에 가져가서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왔고 회사를 그만두고 이분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어요.


일본어는 할 줄 알았나요?

아뇨.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다행히 엔지니어라 초기에는 언어실력이 많이 필요 없었거든요. 5년간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익사이트 재팬으로 이직하면서 본격적으로 변화를 캐치하는 법을 알게 됐고 2005년에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거죠.


실리콘밸리는 어떻게 입주하게 됐나요?

일단 미국행은 결정했는데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했어요. 당시 ‘E3 엑스포’라는 대규모 게임박람회가 있었고 일단 여기를 방문했죠. 다행히 익사이트 재팬에서 함께 해외사업을 담당했던 이사님이 있어서 이 분께 행사장에서 벤처캐피탈도 한 곳 소개받았어요. 익사이트에서 늘 ‘도전하면 된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일했고 미국도 그런 생각으로 간 건데 역시 간단하지는 않았어요. 무엇보다 제 비즈니스 모델이 현지에선 너무 생소한 거라 다들 당황해 했죠. 계속 실패를 맛보다가 아는 대표님이 선뜻 투자를 약속하셨어요. 직원들의 반대 때문에 사비로요. 그렇게 5억원을 가지고 게임업체 갈라넷을 창업했죠.


실리콘밸리 자체의 진입장벽도 높지 않나요?

첫째로 언어가 어려워요. 나중에 성장한 뒤에 직원을 뽑을 때도 서류지원자 모두와 면접을 봤어요. 이것 자체가 영어공부였으니까요. 그렇게 100명을 만나니까 조금씩 들리고 단어의 뉘앙스도 느껴졌죠. 두 번째는 무엇보다 펀딩이에요. 당시 미국도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없어서 아무 곳이나 빈 사무실을 임대하는 구조였어요. 현지 문화를 잘 아는 네트워크가 중요했고 다행히 친한 사장님을 통해 소개를 받아 기존 사무실의 방 한칸이나마 빌릴 수 있었죠.



별에 빠졌던 연대생, 미국 소셜 VR게임의 중심에 서다



갈라넷은 어떻게 운영됐나요.

창업 다음해인 2006년부터 본격 흑자를 냈어요. 그 후 계속 다른 게임의 라이센스를 받는 식으로 보유 게임 수를 늘려가면서 추가로 펀딩을 받았죠. 매년 거의 1000%씩 성장했고 2010년에는 매출 500억을 찍었어요. 그러다 점차 마음에 여유가 생겼어요. 소위 헝그리정신이 사라진 거죠. 지분 절반을 팔고 자회사처럼 현상유지만 해 나갔어요. 바로 신호가 오더라고요. 2008년 페이스북의 등장과 함께 게임시장이 차츰 브라우저로 이동했어요.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어요. 바로 다음해 이번엔 스마트폰 마켓으로 바뀌었는데 역시 놓쳤죠. 2012년, 매출이 결국 꺾이기 시작했고 이듬해 2월에 결국 웹젠에 매각했어요. 당시 직원 수가 130명, 많을 때는 180명에 달할 만큼 크게 키워놓고는 말이에요.


그 후 본격적으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게 되죠.

당시 전기자동차가 하나둘씩 생기고 있었어요. 저 역시 구입했는데 불편한 점이 많더라고요. 한 번 충전하면 대부분 150km 정도밖에 달리지 못했죠. 상당한 충전시간도 필요하고요. 그러던 찰나에 미국 게임사 ‘카밤’에서 근무 제안이 왔어요. 전과 같이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 게임의 라이센스를 유럽이나 미국에 파는 일을 했죠. 그러면서 일본 지역의 코로프라를 알게 됐어요. 당시 하얀고양이라는 일본 내 1위 게임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라이센스를 구매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1월 1일, ‘새해 복 많으시라’는 멘트와 함께 게임을 완료한 화면을 캡처해 보내드렸고 다음날 바로 계약을 제안해오셨죠. 그런데 정작 카밤 내에서 최종 계약이 불발됐고 아예 제가 직접 코로프라 북미지사장으로 일하게 됐죠.



별에 빠졌던 연대생, 미국 소셜 VR게임의 중심에 서다


최종적으로 가상현실(VR)에는 어떻게 눈을 돌리게 됐나요?

미국에서 최고 이슈가 가상현실이었어요. 2015년 말에 VR펀드 600억원 어치를 만들어 일본과 미국에서 게임 개발을 시작했죠. 그러다 VR 안에서 2명의 플레이어가 동시에 게임을 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어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재기를 꿈꾸며 ‘서브드림 스튜디오’라는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게 됐죠.


창업 아이템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요?

게임 분야에 오래있다 보니까 한국, 일본, 미국을 거의 일 년에 최소 5번 이상 왔다갔다 해요. 그러면서 듣는 이야기가 있죠. 제가 직접 해 보기도 하고요.


우리나라의 창업환경은 어떻다고 보나요?

많이 좋아졌죠. 최근에는 정부 지원금도 있고 초기창업투자회사도 많아졌어요. 국내 대표적 엑셀러레이터인 프라이머의 권도균 대표와 개인적으로 친한데 최근 대학생 창업가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더라고요. 인큐베이팅 공간도 많아졌고요. 미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미국이 페이팔, 링크드인, 이베이 등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경향이 강하다면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적이란 게 차이점이죠.


성공적인 창업의 포인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트렌드가 시작되는 타이밍에 창업하고 누구나 ‘잘 될 것 같다’라고 생각할 쯤 매각하는 거예요. 회사가 급성장 하는 타이밍이 바로 매각 타이밍인 거죠. 제 경우는 게임이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에 의존하잖아요. 스마트폰이 생기던 시기가 바로 창업 타이밍이었던 거죠.


현재 구상 중이신 사업이야기도 구체적으로 해주세요.

VR의 좋은 점이라면 몰입도가 장난 아니라는 거예요. 그 공간에 누군가와 같이 있다면 훨씬 재미있겠죠. 제가 만들 서브드림은 일종의 가상공간 로비라고 보면 돼요. 예를 들어 이곳에서 슈팅게임을 고르면 둘이 같이 슈팅게임방으로 들어가는 거죠. 지난 11월 회사를 설립했고 올 2분기 정도에 시판할 예정입니다.


선배 창업가로서 대학생에게도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창업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없으면 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대학생은 특정 분야에 전문지식을 갖고 있기가 어렵거든요. 저 역시 게임 산업에 오래 몸담고 있었기에 이쪽의 트렌드를 알 수 있었죠. 만약 트렌드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면 우선 최대한 조사하고 비슷한 회사가 있다면 직접 들어가 일을 하면서 배워보세요. 그래야 생각했던 트렌드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알 수 있거든요.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그건 실현가능성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뜻이에요. 아무도 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죠. 즉 실전 경험을 쌓는 게 가장 중요해요. 정말 되겠다 싶다면 그 후에는 치열하게 죽을 각오로 노력 하세요.


최종 목표는요.

VR이라는 확실한 관심사를 잡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정말 즐길 수 있는 VR을 만들고 싶어요. 이걸 통해서 재도약하고 싶습니다.


이도희 기자 tuxi0123@hankyung.com

사진=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