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포털에 이력서 올렸더니 면접 제의만 9곳? 기자가 직접 면접 보러 갔다①

△취업커뮤니티에 올라온 취준생들의 문의 글



온라인 취업커뮤니티에 하루 걸러 하나씩 올라오는 글 중 하나는 ‘취업사이트에 이력서 공개했더니 면접 연락 왔어요, 이 회사 괜찮나요?’이다. 나의 이력서가 마음에 들었다는 칭찬과 함께 높은 연봉까지 제시하니 전혀 관심 없던 직무라도 마음이 혹하기 마련. ‘한 번 가볼까? 가지말까?’ 고민하는 취준생을 위해 기자가 직접 면접을 보고 왔다.


5월 24일, 취업포털에 이력서를 올렸다

언제가 마지막 로그인이었는지, 아이디조차 가물가물한 취업포털에 로그인했다. ‘나의 이력서 보기’를 클릭하니,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만들어 놓았던 민망한 이력서가 모니터에 등장했다.


‘멋들어지게 자소서를 새로 써볼까’했지만 귀찮은 마음이 더 커 수정작업은 최소한으로 하기로 했다. 당시 적어둔 성의 없는 6줄의 자소서에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겠다’는 포부를 담은 2줄을 추가하고 마무리. 서른이 넘은 나이는 솔직하게 공개하고, 경력은 전혀 기입하지 않았다. ‘이력서 공개’ 버튼을 누르면서도 불안했다. ‘이렇게 허접한 이력서를 보고도 연락을 할까?’


취업포털에 이력서 올렸더니 면접 제의만 9곳? 기자가 직접 면접 보러 갔다①

취업사이트에 올린 이력서


허접한 이력서보고 연락한 기업만 9곳

공개 버튼을 누르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H금융사에서 전화가 왔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전화를 받지 못했더니, 채용담당자란 사람이 문자를 남겼다. 자신을 H생명 채용진행자라고 밝힌 그는 기자의 이력서를 검토했다며, 금융권, 교육관리, 영업관리에 관심 있다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잠시 후 창업컨설팅업체 G기업, 교육업체 D기업, L통신사, P보험사 등 총 8곳에서 더 연락이 왔다. 이들은 모두 ‘이력서를 인상적으로 보았다’, ‘매력적이고 열정적인 삶을 산 것 같다’, ‘우리 회사와 적합한 인재이다’ 등의 말을 던졌다.


서른 넘도록 경력하나 없이, 성의 없는 8줄의 자소서를 쓴 기자의 이력서가 어떤 부분에서 그토록 인상적이었을까. 그들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5월 25일, 면접보러 간다

창업컨설팅업체 G기업과 도메인 등록업체 I기업의 면접을 보기로 했다. 9개 회사의 면접제의에 다 응할 수 없어, 연봉이 특히 높은 두 회사를 선택한 것. G기업은 채용 공고에 ‘연봉 5000~6000만원’을 기입한 회사다. I기업은 지난 3월 ‘연봉 1억에 도전하라’며 채용공고를 올렸다. G기업은 신사역에, I기업은 역삼역에 위치해있다.


먼저 G기업에 방문했다. ‘ㅅ은행 건물 8층으로 오라’는 안내에 올라가보니, 꽤 넓은 사무실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기자는 회의실로 안내되어 잠시 면접관이 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30대 중후반의 남자 직원. 그의 손에는 민망한 기자의 이력서가 들려있었다.


“2013년에 졸업하셨네요.(졸업연도는 가짜로 기입했다) 경력이 없는데, 그동안 뭐하셨어요?”

“공부했습니다.”

“무슨 공부요?”

“...임용고시 준비했습니다. 지금은 그만뒀고요.”

“왜 그만두셨어요?”

“안되니까요. 그만두고 취업하려니까 나이가 많아 힘드네요.”

“(나이를 확인하더니)아, 서른이 넘으셨구나.”


취업포털에 이력서 올렸더니 면접 제의만 9곳? 기자가 직접 면접 보러 갔다①

△면접을 진행한 회의실.


이력서는 보지도 않는 이상한 면접

그는 나름 ‘서류전형에 합격’한 기자의 나이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후에는 회사와 업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고,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물어보라며 기자의 이력서를 덮어버렸다.


기자가 해야 할 업무는 창업을 원하는 고객들을 만나 영업을 하는 것이었다. 가장 궁금했던 연봉에 대해 물었다. G기업은 기본급+업무지원비+인센티브 체계로 운영된다고 채용공고에 써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본급은 없다”고 설명했다. 기본급 없이 본인의 계약 수수료를 수입으로 책정한다는 것. 대신 본인의 팀으로 입사하면 팀장인 자신이 30~5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회사에서 받는 돈이 1원도 없지만 아침 8시 30분까지 출근해야하고 격일로 토요일 근무까지 해야 했다. 그는 “급여는 자신의 능력에 달려있다”라며 “나는 입사한 첫 달에 600만원을 받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몇가지를 묻고 나니 그는 “이제 내가 물어볼 차례”라며 “일을 하겠냐”고 물었다. “영업은 해본 적이 없어 자신이 없다”고 말했지만 “일을 잘 가르쳐주겠다”며 기자에게 근무를 권유했다. 다음 면접 시간이 촉박해 “하루 더 생각해보고 연락하겠다”라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취업포털에 이력서 올렸더니 면접 제의만 9곳? 기자가 직접 면접 보러 갔다①


연봉 1억을 주는 회사?

두 번째 면접을 본 도메인 등록업체 I는 지난 3월 ‘연봉 1억에 도전하라’며 채용공고를 올린 기업이다. 기자에게 면접 제의를 하며 보낸 문자에는 ‘주5일 근무, 사업지원금 180만원+@(인센티브)+프로모션 수당’이 적혀있었다.


역삼역 부근에 위치한 사무실에는 20여명의 직원들이 콜센터 직원들이 사용하는 헤드셋을 착용하고 근무 중이었다. 작은 회의실에서 만난 면접관은 30대 중반의 남자 직원. 그는 먼저 ‘우리 회사에 대해 알고 있느냐’며 회사와 업무에 대한 설명을 진행했다.


기자가 입사해 하게 되는 업무는 사업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도메인을 판매하는 것. 도메인 계약은 보통 5년 단위로 하게 되는데, 10년, 20년 계약 기간을 길게 잡을수록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는 높아졌다.

“원래 이쪽 업계에서는 기본급을 주지 않아요. 그런데 저희는 특별히 드리는 거예요. 계약이 없는 직원은 100만원, 계약을 한 직원은 180만원이요. 하루에 한 건만 계약해도 1000만원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는 칠판에 숫자를 가득 적으며, 건당 계약비에 계약연수를 곱하고, 프로모션 수당을 더하는 등 복잡한 계산을 순식간에 해내며 ‘하루에 계약 한 건만 해도 월 1천만원’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눈 몇 번 꿈벅하니 나온 계산은 잘 이해가 않았고, 되물을 잠깐의 타이밍도 주지 않고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결국 뇌리에 남는 것은 ‘1천만원’이라는 숫자뿐.


취업포털에 이력서 올렸더니 면접 제의만 9곳? 기자가 직접 면접 보러 갔다①


절묘한 타이밍에 터진 박수소리는 기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전화만 하면 억대 연봉이 된다”는 그의 말에 기자의 눈동자는 흔들렸다. 그 순간 회의실 밖에서는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는데, 그는 “방금 계약이 성사돼 수당을 받아 박수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절묘한 타이밍에 들려온 박수소리는 기자의 마음을 더욱 흔들었다. 사직서를 던지고 당장 헤드셋을 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여자의 경우, 사장님들이 전화도 친절하게 받는다”라며 “남자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전화를 불쾌해하고 화를 내는 사업주들을 상대할 멘탈만 갖는다면 견딜 수 있다. 그런 부분이 힘들어 일을 그만두는 직원들이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면접관은 ‘하루 한 건만’이라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슬쩍 들었을 때는 쉬워보였는데, 곱씹어 생각하니 도전 의지가 사라졌다. 도메인이 뭔지도 잘 모를 어른들을 상대로 오직 통화로만 5년, 10년짜리 계약을 성사해야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을 하겠냐”는 그의 질문에 일단 선택은 차후로 미루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