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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것, 왜 문제가 되나?

- 여성혐오의 시작부터 대학가 여성혐오 세태,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까지



온라인-대학가-도심, '여혐'의 현실화



오늘의 강남대로도 여전히 붐볐다. 서로의 손을 잡고 걷는 커플들, 토트백을 메고 퇴근길 걸음이 바쁜 여자, 서류가방을 들고 황급히 뛰어가는 남자. 평소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 포스트잇과 사람이 한데 엉켜 있는 모습이었다. 흐느끼는 사람들과 비아냥거리는 사람들, 포스트잇을 작성하고 헌화하는 사람들 그리고 셔터를 누르는 기자들. 그 안에서 이질감과 공포가 느껴졌다. “변함없는 일상에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는구나.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Greek mythology - Pandora nad her box
Greek mythology - Pandora nad her box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자 '판도라'. 그녀는 '악한 것'이라 묘사된다.



여성혐오의 시작

여성혐오(misogyny) 또는 염녀주의는 여성에 대한 혐오감과 공격성을 의미한다. 이는 성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과 폭력,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포함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러나며, 고대 세계에 관한 신화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 설화 속에서도 발견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리스 신화 최초의 여성 판도라’다. 올림포스의 주인인 제우스가 인간을 벌하기 위해 ‘악한 것’을 선사하기로 한다. 이때 ‘악한 것’이란 최초의 여자, ‘판도라’다. 지상에 내려온 판도라가 절대 열지 말아야 할 단지를 열면서 인류는 온갖 악에 시달리게 됐다. 인류에게 고난을 준 판도라의 존재는 기독교 문화권에서 뱀에게 속아 에덴동산의 사과를 먹은 화와(이브)로 치환해 등장한다. 이처럼 고대 신화부터 여성을 ‘무지와 악’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온라인-대학가-도심, '여혐'의 현실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메갈리아의 등장.

메르스 사태로 전국이 시끄러웠던 작년, 디시 인사이드(온라인 커뮤니티)에 메르스 갤러리가 생겨났다. 처음 이 갤러리는 메르스 사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였다. 그런데 갑자기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이들의 거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르스 갤러리 이용자들을 ‘메갈리아의 딸들’(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과 ‘메르스 갤러리’의 합성어, 이 소설은 남성과 여성이 바뀐 사회를 서술하며 여성 차별적 사회의 모습을 풍자했다) 즉, ‘메갈리안’으로 부르게 됐다.



시작은 “메르스 의심 여대생 두 명이 홍콩에 여행을 갔다.”는 기사였다. 메르스 최초 전파자는 남성이었으며, 메르스를 중국에 퍼뜨린 주체도 남성이었음에도 이 여대생 두 명에게 모든 비난이 쏟아졌다. 심지어 “두 여대생이 ‘원정녀’가 아니냐”, “한국 여자들이 외국에 간다는 건 몸을 팔려 가는 것이다”등 도를 넘어서는 여성혐오 발언들이 나왔다. 이 현상에 대해 많은 여성이 분노하였고, 그동안 ‘김치녀’·‘보적보’ 등 여성 비하 단어들을 그대로 성별만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김치남’·‘한남충’(한국 남자+충)·‘자적자’ 등의 단어사용에 남성들은 비난하기 시작했고, 디시 인사이드 측도 ‘김치남’을 금지어로 지정하고, 메르스 갤러리에 글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로그인해야 하는 등 제재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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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메갈리아와 같이 여권운동을 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3'



이에 대해 메르스 갤러리 사용자들은 분노했다. ‘김치남’은 금지어로 지정했지만, 여전히 ‘김치녀’는 사용가능했고, 여성비하를 일삼는 갤러리의 사용자들에게는 제재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이들은 자발적으로 커뮤니티 사이트 ‘메갈리아’(www.megalian.com)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현재 메갈리안들은 그동안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씌워왔던 ‘남성이 허락하는 페미니즘’을 벗어나 진정한 여권운동을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전파하고 있다.



대학교에도 만연한 ‘여성혐오’

메갈리아를 시작으로 ‘여성혐오’에 대해 세간의 이목이 쏠리면서, 대학가에서도 ‘여성혐오’ 현상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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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한양대 HELP 수업에 쓰인 첫 번째 사진 자료

(출처: 한양대학교 총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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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한양대 HELP 수업에 쓰인 두 번째 사진 자료

(출처: 한양대학교 총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



1. 반지 주면 다리 벌리는 것이 여자? 한양대학교 HELP 수업자료

지난 5월 9일 ‘한양대학교 총학생회’는 리더십센터에서 진행하는 ‘HELP’ 강연에 대해 사과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제출했다. 문제가 된 것은 강연에 사용된 사진이었다. 총학생회는 2장의 사진을 성명서와 함께 게재했는데 첫 번째 사진은 닫힌 반지함 앞에서는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여성이 있고, 반지함이 열려 있는 장면에서는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는 여성이 찍혀 있다. 두 번째는 몸매가 좋지 않은 남성과 몸매가 좋은 남성을 함께 배치하면서 후자의 경우에만 반지함이 열려 있는 사진이었다.


HELP는 2007년부터 도입된 한양대학교 전체 학생들을 위한 ‘리더십’ 관련 필수과목이다. 수업 중 이 사진들은 ‘상대의 마음과 욕망을 자극할 아이디어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제의 근거 자료로 사용되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여성혐오 조장하는 수업은 폐지되어야 한다” 등 해당 수업에 대해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10일, HELP 수업을 운영하는 한양인재개발원 리더십센터는 “교육콘텐츠 관리 방식에 부족함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수강생 여러분께 큰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비판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한 학생은 “사과가 아니다. 고작 교육적으로 부적절했던 정도가 아니라 사회에 보편적인 여성혐오 문제들을 직접 보여준 사례”라 규탄했다.



2. “여자는 남성 재력에 끌리게 돼 있어.” 교수의 여성비하 발언 실은 고려대 교지.

지난 3월 서울 성북구에 있는 고려대학교 곳곳에는 ‘강의실 속 흔한 여성혐오 발언들’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남성의 재력에 끌리게 돼 있어.” “대한민국 여편네들은 드세서 안 돼.” “넌 여자애가 애교도 좀 부리고 다소곳하게 해라.” 등 대자보에는 학생들이 강의를 받으며 교수들에게 들은 ‘여성혐오 발언’들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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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도 많은 대학생들은 교내 '여성혐오 발언'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다.

(출처: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




이 대자보를 쓴 것은 여성주의에 관한 글을 싣는 교지 ‘석순’이었다. 이들은 ‘강의실 안 여성혐오 발언’을 제보받았고, 3일 만에 41개가 모일 정도로 많은 피해사례를 알리기 위해 대자보를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의 행동에 대해 몇몇 학생들은 “나도 들은 적이 있는 발언들이다. 응원한다”는 글을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다.



3. 설현 대 수지 담배꽁초 인기투표 성 상품화 논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는 연세대학교에서는 설현과 수지의 실제 크기 입간판을 세워둔 뒤, 더 좋아하는 사람에게 담배꽁초를 버리라는 캠페인을 벌여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시민사회와 자원봉사’라는 강의과제의 일환인 것으로 드러났다. 쓰레기통 앞에 인기투표 형식으로 입간판을 설치해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캠페인이었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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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연세대에 설치된 수지와 설현 입간판과 인기투표 형식으로 진행된 캠페인의 모습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연예인 실물 크기 판넬을 세워놓고, 담배꽁초로 얼굴이랑 몸매를 비교해가며 투표하는 것은 여성의 성 상품화에 일조하는 캠페인이라 생각한다.” “끔찍하다” “어린 여자 연예인을 세워놓고 외모 품평하며 담배꽁초를 던지는 모습이 정말 재밌고 아름답기만 한가?”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논란이 커지자, 과제에 참여한 학생들은 입간판을 철거하고 캠페인의 취지를 설명하는 글과 함께 사과문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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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추모현장.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추모를 표하고 있다.



“여자에게 무시당해서 죽였다”고 말하는 가해자, ‘여성 혐오 살인(femicide)’ 발생

지난 5월 17일 오전 1시, 서울 서초구 강남역의 ‘秀 노래방’ 화장실에서 한 여성(23세)이 수차례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남성이었으며, 범죄를 저지른 이유에 대해 “여자에게 무시당해서”라 발언했다. 이에 대해 많은 여성은 분노했고, 이를 ‘여성 혐오 살인(femicide)’ 라 주장했다.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를 추모현장으로 꾸며 포스트잇과 꽃, 인형 등이 놓였다.



지난 19일 촛불 문화제가 열린 저녁, 많은 추모객과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들을 사진 찍는 셔터 소리로 현장은 가득했다. 현장은 붐볐지만 누구 하나 통행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이 떨어지는 포스트잇을 다시 붙이고, 잠시 묵념을 하고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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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붙여놓은 포스트잇에는 “나는 여기 추모현장에 와서도 몰카가 두려워 마스크를 끼고 있다”와 같은 두려움의 목소리, “당신도 어머니 배에서 태어났습니다”라는 분노의 목소리, “미안해요. 우리 다음 생에는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만나요” 라는 안타까움의 목소리가 절절하게 드러났다.



추모 현장에서 만난 21세 김현주 씨는 “아침에 일어나서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됐다. 여자란 이유로 떠나셨는데 다른 남성들은 ‘여자의 잘못’으로 몰고 갔다. 그런 댓글을 보고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라 말했다.



또한, 커플이 함께 온 경우도 있었다. 28세 박규영 씨와 30세 권혁도 씨는 “기사를 보고 유독 집에 오는 길이 무서웠다. 잠자기 전에 남자친구와 이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했는데 아침에 남자친구가 먼저 추모현장에 가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매우 고마웠다. 동시에 내가 먼저 가자고 이야기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평소에 연인 사이에 ‘조심히 들어가’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런데 어제 문득 그 말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 불편함이 ‘왜 ‘여성’들이 더 조심해야 하는 사회가 됐나’라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작은 행동이라도 하기 위해 이곳에 여자친구와 오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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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추모의 분위기 속에 인터넷은 여전히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에 대한 논쟁으로 뜨겁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살인자로 몰아가지 마라”는 목소리와 “여성 혐오 살인이 아닌 ‘묻지마 살인’이다. 젠더차별적 프레임으로 끌고 가지 마라” 등 비판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일간 베스트’(일베)에서는 추모현장에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들을 잊지 맙시다”라는 문구를 넣은 근조 화환을 보냈다. 이는 추모를 조롱하는 행위로, 시민들은 이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며, 문구가 적힌 리본을 잘랐다. 이후 화환은 일베를 비판하고 살인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을 게시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갑자기 왜 그러느냐, 단지 한 미치광이의 범죄일 뿐이지 않느냐.” 그러나 지금 시민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이번 사건만을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혐오를 방치한 사회에 대한 분노가 이번 사건을 신호탄으로 폭발한 것이다. 통계청의 ‘한국 강력범죄와 여성 피해자’ 자료에 따르면, 강력범죄에서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평균 83.8%였다. 또한, 유엔 산하 기구 범죄사무소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살인사건 피해자의 여성 비율이 G20 국가 중 가장 높다.



온라인-대학가-도심, &#39;여혐&#39;의 현실화



이러한 가운데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조현증 환자의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그대로 방치하자는 것과 같다. 이 사건의 원인을 ‘정신병’인지 ‘여성혐오’인지에 대한 의미 없는 논쟁을 이어가기보다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여성혐오·차별’의 의식을 뽑아내야 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성별의 잣대로 평가받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지연주 인턴기자 sta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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