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코난’을 즐겨보고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본방사수하는 기자에게 드라마 ‘시그널’은 손에 꼽히는 명작으로 남았다. 드라마에 빠져 지내는 동안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로 명성이 자자한 배상훈 교수와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터뷰 후 프로파일러에 대한 꿈은 살포시 접어 두었다. 탐정놀이의 현실판이라 생각했던 프로파일러는 상상 이상의 극한 직업이었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 배상훈 "사명감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극한 직업이죠"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배상훈 학과장


배상훈 교수는 국내 1호 프로파일러다. 2005년 경찰청 범죄분석 1기 범죄심리분석관으로 근무를 시작해 서울서남부 연쇄살인범 정남규 사건, 경기서남부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 안양 초등학생 살인범 정성현 사건, 마포발바리 사건, 광진발바리 사건, 시흥발바리 사건 수사 등에 참여했다. 현재는 퇴임 후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재학생이 500명 정도 되죠. 그중에는 현직 경찰이 절반 이상입니다. 수업을 통해 실제 미제 사건을 분석하고 추적합니다. 드라마 ‘시그널’의 메인작가인 김은희 씨도 수업을 청강했고, 보조작가인 김윤희 씨와는 함께 일을 했었죠. 그 친구가 프로파일러 출신이거든요.”



남산 CJ본사...
/허문찬기자 sweat@  20130527
남산 CJ본사... /허문찬기자 sweat@ 20130527

tvN 드라마 <시그널> 방송 캡처



프로파일러vs형사, 멱살잡이는 일상

범죄사건의 단서를 분석해 용의자의 성격, 행동유형 등을 추론하고 수사방향 설정에 도움을 주는 ‘프로파일러’. 국내에 정식 프로파일러가 선발된 것은 지난 2005년이다. 이전까지는 몇몇 형사들이 개인적으로 살인사건을 모아 자료를 만들거나 독학으로 프로파일링을 공부하는 수준이었다.


“당시 검찰과 경찰 사이에 수사권 다툼이 있었죠. 경찰에서는 수사권을 가져오기 위해 보여주기식의 프로파일러를 내세웠습니다. ‘경찰이 이만큼 실력있고 과학적 수사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거죠. 하지만 수사권 조정은 실패했어요. 이후 제대로 된 프로파일러를 영입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2005년 정식으로 10여명의 프로파일러를 선발했습니다.”


하지만 함께 근무하는 형사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프로파일러에 대한 신뢰도가 낮았고, 사건을 뺏긴다고 생각해 수사 자료도 공유해주지 않았다. 부탁하고 부탁하다가 멱살잡이를 하는 경우도 잦았다.


“당시 프로파일러의 80%가 여자였습니다. 여자들이 많다보니 커피 타오라는 심부름만 몇 달 동안 시키기도 했죠. 지금도 환경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어요. 나아질 것 같은 시점에 프로파일러들이 다 도망갔거든요.(웃음) 현재는 형사들과 프로파일러가 따로 업무를 해 부딪치는 상황이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프로파일러가 신입 교육에 참여해 프로파일링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어요. 그 직원들이 핵심 인력으로 성장하며 프로파일러를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거죠.”



국내 1호 프로파일러 배상훈 &quot;사명감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극한 직업이죠&quot;

배 교수의 뒤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에 대한 메모가 보인다.



말을 하지 않는 범인보다 말하는 범인이 더 어렵다

흔히 사람들은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라는 생각을 한다. 심리학을 기본적으로 공부해야만 프로파일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한 것이다. 하지만 프로파일러가 되기 위해 반드시 심리학을 공부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프로파일러 중에는 사회학 전공자도 있고 통계학을 공부한 사람도 있다. 현업에서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역할을 구분한다. 범죄통계학을 통해 지리적 프로파일링을 하거나, 혈흔 패턴을 통해 현장을 재구성하는 프로파일러도 있다.


“저는 대학시절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 사회학을 전공하며 가족 인류학, 생애사 연구를 했습니다. 프로파일러 활동 당시에는 전공을 살려 가족생애사를 통해 범인의 범죄동기를 찾는 작업을 담당했습니다.”


취조를 통해 범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프로파일러의 주된 업무 중 한다. 말하기 싫어하는 범인을 말하게 만들고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범인의 말 속에서는 거짓말을 거둬내는 일을 한다. 배 교수는 “강호순이 그렇게 거짓말을 많이 했다”라며 “말을 하지 않는 범인보다 말이 많은 범인을 상대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 배상훈 &quot;사명감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극한 직업이죠&quot;

▲ 인터뷰 함께 한 안선영(단국대 문예창작) 대학생기자와 한 컷.



사명감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극한 직업

언제부턴가 뉴스에서는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보도가 사라졌다. 연쇄살인사건의 발생률이 눈에 띄게 낮아진 것이다. 그 이면에는 프로파일러의 남모를 노력이 숨어있다.


“서울에서 발생하는 변사사건, 강간사건을 매일 검토하고 추가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 차단하는 작업도 하고 있죠. 어느 날 갑자기 연쇄 살인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거든요. 작은 범죄부터 시작합니다. 그들을 주시하다가 범죄를 시작할 조짐이 보이면 직접 만나 면담을 하거나 제지하죠. 연쇄살인같은 끔찍한 범죄가 줄어드는 것을 볼 때면 프로파일러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하지만 직업적 보람만큼이나 남모를 고충도 크다. 연쇄살인범을 만나고 토막 시체 등을 자주 보다보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신경성질환 발병률이 높은 것. 프로파일러 중 기혼자가 적다는 것도 그들의 고된 업무를 방증해준다. 미혼자가 많은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에 대한 경계심이 큰 이유를 차지할 것이라 보는 이들이 많다.


“예전에 맞선을 봤어요. 한 시간 정도는 즐겁게 대화를 나눴죠. 그런데 상대방이 점점 말이 없어지더라고요. ‘이 사람이 나도 분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며 경계를 한 것 같아요. 프로파일러라고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분석하고 관찰하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업무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는 부분도 프로파일러의 어려움 중 하나다. 프로파일러의 채용 조건은 학사 이상이지만 실제 업무에서는 박사급 지식수준을 요한다. 그러나 채용되는 직급은 경장급이다. 프로파일러가 가진 능력보다 직급이 낮게 설정되다보니 능력 있는 교수급 지원자들이 프로파일러 지원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배 교수는 “프로파일러가 되겠다는 학생들을 만나면 이러한 고충에 대해 먼저 솔직하게 얘기해준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겠다면 ‘사명감’을 갖고 모든 일에 ‘호기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프로파일러는 사명감이 없다면 단 한 달도 할 수 없는 직업입니다. 수사드라마를 보면 범인을 잘 잡는 캐릭터는 흔히 말하는 ‘똘끼’라는 것이 있죠. 정말 이 일은 미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도전하고 싶다면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하세요.”


글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