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나혼자 산다' 꽁꽁 언 취준생들의 연말나기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본디 시간의 변화는 사람보다 거리의 풍경이 먼저 아는 법. 겨울 내 앙상해진 거리의 나무들은 이미 반짝이는 LED전구로 온몸을 감쌌고, 대형 건물들은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장식들로 한껏 치장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른바 길보드(노점 음반판매)는 사라졌지만 카페나 식당 문을 열면 간간히 들리는 캐럴이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들기 충분하다. “따랑따랑” 울리는 구세군 냄비의 종소리와 그 옆에서 모락모락 김을 뿜는 군고구마 장수들의 모습도 매해 반복되는 연말의 풍경이다.


무엇보다 연말의 완성은 그동안 만나지 못한 가족, 친구들과의 따뜻한 모임일 것이다. 치열했던 한 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만큼 완벽한 치유가 또 있을까. 그러나 따뜻한 사람의 온기가 필요한 이 시기, 나홀로족(族)을 자처해야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특히, 취업에 번번이 실패하면서 사기저하, 자존감 상실에 몸서리치는 취업준비생들이 대표적이다. ‘N포세대’ ‘헬조선’으로 비하되는 심각한 취업난 속에 취준생에게 가족 연인과 함께 연말을 보내는 것은 사치로 전락한지 오래다.


올 연말에도 언론사 취업준비에 몰두할 예정인 대학원생 서모씨(30·여)는 “그나마 학부를 졸업하고 1, 2년간은 연말에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보러 갔는데 몇 년 전부터는 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장 크기도 하지만 부모님보다 주변에서 내 취업, 결혼여부를 꼬치꼬치 묻는 어른들을 마주하기가 싫고 부담된다”고 토로했다. 서 씨는 이번 연말에 이른바 ‘밥터디’라고 불리는 스터디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올 초 3수 끝에 국내 대형제약회사에 들어간 김모씨(29)도 “취업에 줄줄이 낙방했던 지난 2년 동안 그야말로 ‘히키코모리’처럼 혼자 지냈다. 자존감 하락이 대인기피증으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만나기는커녕 부모님께 전화 한 통 제대로 걸어보지 않았다”면서 “불효 아닌 불효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말에는 처음으로 받은 연말보너스와 함께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갈 계획이다. 김 씨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처럼 취준생들이 짊어지는 연말의 괴로움은 너무 크다”면서 “주변에서 들려오는 합격소식 속에 나 혼자 도태되는 것은 아닌지, 나를 걱정하는 가족들의 슬픔을 생각하면 연말의 즐거움은 정말 남의 얘기다. 그 무거움을 견뎌내야 하는 취준생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취준생 10명 중 8명은 설 명절에도 쉬지 않고 구직활동을 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 취업포털 사람인이 구직자 581명을 대상으로 ‘설 연휴 기간 동안 구직활동 여부’를 물어본 결과, 76.1%가 ‘구직활동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세부적으로는 ‘연휴 중간에 잠시라도 할 계획’이 40.5%, ‘연휴 내내 할 계획’은 35.6%였다.


또 이들 중 26.2%는 지난해에도 구직활동을 하느라 명절 친지모임에 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명절 연휴임에도 구직활동을 하려는 이유로는 ‘취업이 가장 급해서’(70.4%)를 첫 번째로 꼽을 정도로 취준생들의 연말은 각박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혼자 있기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야외로 나가는 것이 좋다. 특히, 일조량이 짧은 겨울에는 뇌에서 정서를 관장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을 적게 생산해 우울해진다. 우울증 완화를 위해서는 일부러라도 햇볕을 맞는 게 좋다. 집에 혼자 있기보다는 간단한 산책이나 야외활동을 통해 우울한 생각을 줄이는 것이 방법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취준생들과의 정기적인 만남도 적극 추천한다. 취준생 마음은 취준생이 제일 잘 아는 법. 같은 고민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만큼 위안과 격려가 되는 것도 없다. 이럴 때일수록 움츠리지 말고 내년 상반기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생활형 스터디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공법이다. 주변 사람들을 피하기보다는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때로는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가족, 친구, 은사들에게 먼저 연락을 해보거나 만남을 통해 본인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것도 힐링의 방식이다. 물론,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소통이 한번 단절되면 그 고립감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응답하라 1988’의 ‘내 끝사랑은 가족입니다’이라는 문구처럼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힘들었던 올 한해를 마무리 해보자.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