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응전’은 비단 인류의 역사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금세기 최고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박사의 명제는 자동차업계에서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적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신흥국 중심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 자동차업체 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급변하는 업계 상황을 정면돌파하고, 세계 5대 완성차회사에서 글로벌 넘버 원으로 도약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공격경영 강화로 올해 역대 최대 판매실적 예상

지난달 세계 양대 자동차시장인 중국과 미국 판매량이 크게 증가하면서 현대·기아차의 올해 연간 실적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현대·기아차는 지난달 중국에서 18만195대를 판매했다고 2일 발표했다. 지난해 11월보다 11.5% 늘어난 수치다. 이는 역대 최대치였던 지난해 12월(18만2876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판매량이다.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지난달 미국 판매량은 10만5560대로, 지난해 11월보다 7.1% 증가했다. 이는 지난달 미국 내 전체 자동차 판매량 증가율(1.6%)의 네 배를 웃돈 수치로, 미국 내 10위권 완성차업체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올 들어 10월까지 현대·기아차의 누적판매대수는 645만3780대다. 이런 속도라면 역대 최대치인 지난해 판매량 80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현대·기아차는 내다보고 있다.


어려운 세계경제 환경 속에서 이처럼 돋보이는 영업실적을 거둔 이면에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공격경영 방침이 주효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정 회장은 ‘미래 경쟁력 강화’를 올해 경영화두로 제시했다. 연간 800만 대 판매를 넘어 새로운 성장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 회장은 지난 1월 2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올해 글로벌 선도업체로 도약하려면 제품경쟁력과 고객만족도 향상을 위한 집중적 노력이 더욱 요구되는 상황에 부닥쳤다”며 “이를 위해서는 완성차 품질경쟁력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미래 성장동력을 강화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커버스토리] 글로벌 질주 이제부터가 진짜..현대자동차그룹의 비전

11월 24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정주영 탄생 100주년 사진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가운데)과 이명박 전 대통령(맨 왼쪽).



‘제네시스’ 고급차 브랜드로 독립…새로운 도전 시작

현대차는 지난달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제네시스를 고급차 브랜드로 독립시켜 글로벌 고급차시장 점령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현대차는 1967년 창립 이후 48년간 ‘현대’라는 단일 브랜드를 사용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현대’라는 대중차 브랜드와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함께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제네시스는 일본 도요타의 렉서스, 닛산의 인피니티처럼 독립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제네시스 모델은 초대형 럭셔리 세단인 G90(국내 EQ900, 9일 출시), 대형 럭셔리 세단 G80, 중형 럭셔리 세단 G70 등으로 나뉘게 된다. 제네시스는 2020년까지 대형 럭셔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고급 스포츠형 쿠페 등 모두 6가지 모델을 갖출 계획이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지난달 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 출범 행사에서 “상품과 디자인 모두 사람에게 집중해 최첨단 기술보다 ‘최적의 기술’을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가 별도의 고급차 브랜드 전략을 내놓은 것은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고급차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세계 고급차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10.5% 성장했다. 이는 대중차시장 성장률(연평균 6.0%)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고급차 브랜드를 통해 대중차를 포함한 완성차업체 전체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도 기대되는 효과다. 도요타가 고급차 브랜드인 렉서스를 출범하면서 소형차에 국한됐던 영역을 중·대형차로 확대한 게 대표적 사례다.


현대차는 또 제네시스에 자체개발한 첨단 기술을 먼저 적용한 뒤 현대 브랜드 모든 차량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연구개발(R&D)전략을 체계화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R&D 관련 비용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같은 방침은 600여 곳에 달하는 현대·기아차 협력업체들의 기술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커버스토리] 글로벌 질주 이제부터가 진짜..현대자동차그룹의 비전

12월 9일 공식 출시된 에쿠스 후속 모델‘제네시스 EQ900’.



2022년 105층 신사옥 건립 목표

현대·기아차는 지난 40여 년간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세계 5대 완성차회사로 성장했다. 국경을 뛰어넘은 생산체제와 판매 네트워크로 세계시장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생산공장은 10개국 34개에 달한다. R&D센터는 6개국 13거점, 판매법인은 26개국 40개에 이른다. 국내외 누적생산량은 9300만 대로, 2009년 이후 5년 연속 글로벌 판매 5위를 기록했다.


2015년 ‘인터브랜드’가 선정한 글로벌 브랜드 가치 평가에서 현대차는 39위, 기아차는 74위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선택을 통해 현대·기아차는 물론 제네시스의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


현대차는 이런 사세에 걸맞게 2022년을 목표로 서울 삼성동 옛 한전 부지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조성할 계획이다. GBC에는 105층짜리 그룹 통합사옥, 51층짜리 호텔·업무시설, 전시시설 두 곳, 공연장 한 곳, 쇼핑몰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커버스토리] 글로벌 질주 이제부터가 진짜..현대자동차그룹의 비전

1985년 포니 엑셀 신차발표회장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도전의 서막 올린 아산 “실패해도 좋으니 마음껏 해봐”

“자동차는 달리는 국기(國旗)다. 만약 내가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내 후대들에게 자동차산업 발전을 위한 디딤돌을 놓을 것이다.”


고 정주영(호 아산·峨山)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자동차를 바퀴 달린 국기로 생각했다. 우수한 자동차를 수출하면 우리나라의 기술과 공업수준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리나라가 자동차산업이 후발주자에서 세계 5위 자동차강국으로 도약한 데는 아산의 예지와 뚝심이 큰 역할을 했다. 아산은 1967년 12월 현대자동차㈜를 설립했고, 이듬해 연간 5만8000대 정도를 조립할 수 있는 공장을 준공하며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었다. 아산은 현대차 설립 당시 사업 파트너로 포드를 택했고, 공장 건설 6개월 만에 첫차 ‘코티나’를 조립·생산해냈다.


하지만 코티나는 성능이나 부품 면에서 당시 우리나라 도로 사정에는 부적합한 차였다. 미국 도로에 맞춰 설계된 차였기 때문에 고장이 잦았고, 국내 판매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홍수로 공장까지 침수되면서 아산은 실패를 맛봐야 했다.


그는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1973년 포드와 결별하고, 기술자립 및 독자생산을 목표로 고유 자동차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처음부터 모든 걸 혼자 할 수는 없었다. 엔진은 일본 미쓰비시의 기술을 빌렸고, 디자인은 이탈리어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의뢰했다. 자동차공장 건설은 영국 전문가 조지 턴블에게 맡겼다.


현대차는 1974년 6월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인 포니 개발에 성공했고, 생산라인 준공 1년 반 만인 1976년 1월 포니를 본격 출시했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 세계 16번째 고유 모델 자동차 생산국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미국의 반격이 시작됐다.


“1977년 5월 리처드 스나이더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조선호텔에서 만나 자동차 개발을 포기하면 모든 힘을 다해 현대를 지원하겠다며 포니 자동차의 개발을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만일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현대는 앞으로 미국과 한국 양국에서 모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협박’도 더해졌다. 정 명예회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제안은 무척 고맙지만 사양하겠다. 자동차산업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정 명예회장이 전경련 부회장으로 있던 1974년부터 회장직을 그만둔 1987년까지 전경련 국제업무를 담당하며 정 명예회장의 통역을 담당했던 박정웅 전 전경련 상무가 쓴 <이봐 해봤어? 시련을 사랑한 정주영>에 소개된 일화다.


현대차는 이후 선진업체의 온갖 견제와 회유에도 과감한 기술자립 행보를 이어왔다. 1985년 국산 최초 전륜구동 자동차인 포니엑셀을 출시했고, 이듬해에는 자동차산업 본고장인 미국시장에 진출했다. 1991년에는 국산 엔진인 ‘알파엔진’ 독자개발에 성공했고, 1995년 ‘베타엔진’, 1997년 ‘입실론엔진’, 1998년 ‘델타엔진’을 잇따라 개발했다. 아산은 1998년 IMF 위기 속에서도 기아자동차 인수를 결정, 대한민국 자동차산업 신화의 제2막을 열었다.


최은석 기자 choies@hankyung.com

사진=한국경제 DB